이 글은 내가 드디어 시작하게 된 '글쓰기 수업'에서 두 번째로 써서 올린 글이다. 이번 글의 첫 문장으로 주어진 주제가 '순간 나는 기쁨으로/분노로/불안으로 온몸이 떨렸다'였다. 이 주제를 미끼로 기억의 바다에 그물을 던져 놓았더니 그물에 걸려 올라온 것이 다름 아닌 이 '분노'의 기억이었다. 이왕이면 기쁨으로 온몸이 떨렸던 기억이면 더 좋았을 것을...
순간, 나는 분노로 온몸이 떨렸다. 부글부글 끓던 분노의 감정이 임계점에 다다랐음이 느껴졌다. 무겁다고 믿었던 이성의 솥뚜껑이 저만치 공중으로 날아갔고 동시에 분노의 감정이 용암처럼 폭발했다. 나는 한 손을 쳐들고 순식간에 술 취해 흔들거리는 남편의 뺨을 향해 날렸다.
이 글을 쓰기 전 나는 기억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네이버에 '택시요금 카드 결제 일반화는 언제부터인가'를 입력해 보았다. 2008년의 신문 칼럼에 '모양뿐인 택시 요금 카드 결제 아쉬워... 일부 택시만 카드 결제 기능이 가능한데 그마저도 운전자가 카드결제를 꺼리고 현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일생에 처음으로 사람, 그것도 남편의 뺨을 후려친 것은 택시 요금 방식과 관련이 있다. 물론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지만.
때는 1990년도 후반이었다. 나는 서너 살의 아들을 키우는 전업주부였고 남편은 회사원이었고 우리는 서울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경기도의 소형 아파트 14증에 살고 있었다. 남편의 잦은 음주와 자정을 넘기는 늦은 귀가로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는 날들이었지만 가정은 그런대로 순탄하게 유지되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남편의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남편의 음주와 늦은 귀가는 더욱 잦아졌다. 나는 어린 아들을 껴안고 무력하고 불안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오로지 남편의 월급에만 기대던 가정경제가 휘청이기 시작하면서 나의 하루하루는 살얼음 위를 걷는 듯 위태롭게 느껴졌다. 어쩌다 대화라도 하게 되면 걱정하지 말라고만 했다. 나의 걱정에 짜증과 분노와 원망이 섞일 때면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더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남편은 자주 대중교통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셨고 그런 날이면 택시를 타고 서울에서 집까지 왔다. 그리고 아파트 안에 도착해서는 택시비를 가지고 내려오라고 전화를 했다. 한 번에 2 - 3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되는 그 택시요금으로 나가는 지출이 너무 컸다. 집에 절대로 택시비로 나가는 비상금은 준비해 놓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쳤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새벽이 가까운 시간에 택시를 타고 왔는데 택시비가 없을 때 치러야 하는 곤혹스러움은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나는 그런 모험을 감행할 만큼 배포가 크지 않았다. 택시 기사와 실랑이를 벌일만큼 그악스럽지도 못했다. 다시는 절대로 절대로 택시비를 준비해 놓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고 큰소리쳐도 단 한 번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남편은 그런 나의 약한 구석을 간파한 것인지도 몰랐다. 물론 후회하고 자책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도 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허물어졌다. 그 시기가 아이엠에프 전후였었다. 남편도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한 걱정과 불안의 시간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도 새벽 두세 시 무렵 전화가 왔다. "여기 집 앞인데... 택시비 갖고 내려와..." 하는 남편의 목소리는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불과 이삼일 전의 일이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애써 누르고 책갈피에서 돈을 꺼내 들고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꼿꼿하게 택시에 기대 선 기사 옆에 서 있는 남편은 앞뒤로 넘어질 듯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애써 외면하면서 다가갔다. 발 밑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택시비를 받아든 기사가 님편분이 술을 많이 드셨어요...밀하며 싱긋 웃었다. 나는 나의 치부를 드러내 보인듯 수치스러웠다. 그 사이 남편은 앞장서서 현관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저 남자를 어떻게 하나... 시궁창에 발을 담그고 사는 듯 모든 게 역겹고 구질구질했다. 남편에 대한 일말의 연민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이만 아니라면 그대로 그 밤길을 달려 도망치고 싶었다. 당시 가끔 마주치던 복도 끝집의 여자는 아이를 두고 집을 나갔는데...나는 그렇게 모질지도 못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내가 먼저 탔다. 남편은 벽에 기대서서 고개를 꺾고 흔들리면서 서 있을 뿐 타지를 않았다. 그냥 닫힘 버튼을 눌러버렸다. 문이 막 닫히려고 하자 남편이 깜짝 놀란 듯 급하게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남편은 문에 끼였고 엘리베이터 문은 다시 열렸다가 닫혔다. 에이 씨.. 왜 그래... 중얼거리면서 남편은 엘리베이터 모서리에 기대고 섰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흔들리고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다리가 자꾸 꺾였다. 한심하고 한심하고 너무나 보기가 싫었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오물 덩어리 같았다. 부글부글 끓던 분노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왜 이렇게 사는 거야 왜 왜 왜....
내가 소리를 질렀던가... 남편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림과 동시에 나의 한쪽 팔이 올라갔다. 그리고 남편의 뺨을, 말 그대로, 후려쳤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무방비한 남편의 뺨과 분노 가득한 나의 손바닥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철썩,이었나 찰싹,이었나... 그 비슷한 소리였겠지...
순간 나는 내 행동에 너무 놀라 그대로 굳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가...
남편은 그제서야 힘없이 흔들리던 상체를 세우고 꺾이던 다리에 힘을 주면서 섰다. 남편의 안경 한쪽이 벗겨져 떨어질 듯 대롱거렸다. 남편이 천천히 안경을 바로잡아 쓰고 나를 건너다보았다. 허술하게 풀려있던 창백한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게슴츠레 하던 두 눈을 부릅떴다. 뭐야 너.... 남편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는데 오히려 나는 죄인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어쩐지 미안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섰고 나는 남편의 손에 끌려 나왔다. 나의 팔을 움켜 쥔 남편의 손아귀에 힘이 느껴졌다. 이상했다. 남편의 잘못은 온데간데없고 내 행동의 잘못만 남아 있었다. 집에 들어와서 남편은 나를 구석에 내동댕이쳤다. 나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다. 오히려 흠씬 두들겨 맞고도 싶었다. 그러면 소위 '가정폭력'으로 끝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기다리던 남편의 주먹은 날아오지 않았다. 슬며시 눈을 떠 올려다보니 남편은 분명 나를 때릴 목적으로 들이올린 듯한 팔을 허공에 그대로 멈춘 채 나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그 눈엔 분노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슬픔도 있었고 연민도 있었고... 무력감도 있었다. 그러더니 들이올린 팔을 띨어뜨리고 그냥 휘청휘청 방으로 들어가 문을 꽝 소리 나게 닫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다음 날은 물론 그날 이후로 남편은 한 번도 그날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
난 지금도 그날의 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분노의 감정에 정신을 온통 잠식당했다 해도 ... 왜 하필 뺨이었을까...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묘멸감을 안겨줄 수 있는 뺨을...더구나 남편을...
옷깃을 잡아 흔들 수도 있고 등짝을 후려칠 수도 있고 울먹이면서 가슴팍을 콩콩 때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당시 나의 분노는 그렇게 귀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응징을 넘어섰던 거겠지.... 아니면 그 당시 아침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았거나...
그리고 남편은 그 모멸감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날 이후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최소한 한달은 넘은듯) 한 집에서 서로를 외면하고 살았었다. 어떤 시기에 어떻게 화해를 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렇게 기억이 떠오른 김에 오늘 밤 남편에게 물어볼까... 혹시 오래전에 내가 당신 뺨 때린 거 기억나냐고...
잊어버렸을지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제 옛말 하 듯 웃으며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