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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Jun 10. 2024

아들의 직장 상사 스트레스

힘들면 그만둬, 말해주기가 그토록이나 어려웠다


맛있었던. 가지덮밥... 본문에서 언급한 볶음밥 사진을 안 찍어서...


  5월 마지막 주의 목요일 이른 아침 아들은 일박 이일로 입사 일주년 워크숍을 갔다. 금요일  저녁 워크샆에서 돌아와  다시 회사에  도착했다는 톡이 온 후 토요일 새벽 귀가했다. 워크숍에 챙겨갔던 옷가지며 세면도구와 신발까지 그대로 던져둔 어지러운 방에서 정신없이 곯아떨어져 잠을 자더니  저녁에 다시 나갔다가  일요일 점심 무렵 들어와 또 잠만 잤다.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같이 식탁에 앉았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들은 월요일인 다음 날 연차를 내서 출근을 안 할 것이며 병원에  갈 거라고 했다.

  "뭐, 병원에? 왜? 어디가 아파?"

  나는 밥 먹기를 멈추고 질문을 해댔고 남편의 숟가락질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머리가 아파서... 계속... 회사에서도 가보라 하고..."

 아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가 모처럼 함께 하는 집에서의 저녁이라고 신경 써서 준비한 소불고기와 된장찌개와 막 무쳐 낸 오이무침을 고루고루  잘 먹었다.

  가끔 머리가 아프다고 두통약을 먹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자주 머리맡에 두통약이 눈에 띄었고 또 가끔은 병원 진료기록도 발견되었었다. 그때마다 걱정스럽게 많이 자주 아프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때마다 아들은 괜찮다고 대답했다. 아들은 나의 지나친 관심을 부담스러워하고 가끔은 무안할 정도로 짜증을 내기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물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아들의 식욕은 여전히 왕성함에 안심했다. 머리 아픈 거 외에 다른 증상은 전혀 없어 보였고 아들도 그렇다고 했으므로. 그런데 회사에서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는 사실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회사에서 알 정도야? 어떻게 알아?"

 "내가 자주 머리 아프다고 회식도 빠지고... 약도 자꾸 먹으니까... 병원 신경과 가서 진료받아보라고.."

 "그렇게 자주 아팠어? 다른 데 어디 아픈 데는..."

 "없어... 괜찮아..."

 나는 너무 심각하게 걱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최대한 애쓰면서 띄엄띄엄 조심스럽게 물었고 아들은 짧게 성의 없이 대답했다.

"실적에 대한 부담 때문이야? 실적 가지고 압박하는 거야?"

"그건 아니야..."

"그럼... 업무 때문이야 사람 때문이야?"

"사람 때문이지..."

"동료? 아니면 상사?"

"상사... 팀장이 새로 왔는데...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나를 갈궈... 그런 쪽으로 악명이 높은 팀장이야..."

.....

"동료들이랑은? 팀장 외에 동료들이랑은 어때?"

"동료들하고는 좋아..."

"나도 직장 다닐 때 상사 때문에 힘든 적 많아서... 좀 알지... 그래도 동료들하고 괜찮으면... 그럭저럭 다닐 수 있던데... 술 마시면서 상사 씹으면서...  그렇게 풀면서..."

아들은 내가 묻는 말에만 겨우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만 했고 남편은 굳은 얼굴로 천천히 식사를 할 뿐이었다.

더 이상 깊게 물으면 짜증을 낼 듯하여 나는 내가 겪은 못된 상사 얘기를 주섬주섬 끄집어내서 얘기했다.

 아들은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밥을 한 그릇 다 비우고 물을 마셨다.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밥 잘 먹는 거 보면... 괜찮은 건데... 밥 맛 떨어지는 게 가장 심각하거든..."

아들이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굳은 얼굴로 식사를 끝냈다.

식탁을 정리하며 나는 다시 중얼거렸다.

"아니다... 스트레스성 식욕도 있지... 그런 건가? 그런데 억지로 먹는 거 같진 않았어... 그렇지?  아니겠지... 원래 잘 먹는 애니까... 아니... 먹는 거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잘 안 먹다가 갑자기 마구 잘 먹는 거... 느닷없는 폭식은  아니니까... 심각한 거는 아니겠지... 아닐 거야... 스트레스 없는 직장생활이 어디 있어... 내 경우만 봐도... 그래도...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출근하기 싫을까... 어쩌면 좋아..."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듣는 이 없는 혼잣말을 안타까이 중얼거렸다.


  아들은 월요일 아침 일찍 일어났다. 9시 예약을 해 두었다고 했다. 같이 가자는 나를 마다하고 혼자 병원에 갔다. 출근한 남편이 전화를 해서 같이 가지 혼자 보냈냐고 나를 나무랐다. 애가 싫다고 했다니까... 어린애도 아니고... 괜히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청소를 하고 빨랫감을 모아 세탁기에 넣었다.

 괜찮겠지... 별일 없겠지... 나 그렇게 사나운 팔자 아니야... 그렇지?... 같이 갈걸 그랬나... 보호자로 같이 갔어야 했나 혼자 가겠다고 해도...

  시계를 보니 아들이 병원에 간 지 한 시간 반이 훨씬 지나 있었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의사와 상담하고 진단받고 약이나 기타 뭐 처방받고 돌아올 시간이 한참 지난 것 같았다.

  같이 갔어야 하는데... 얼마나 무서웠겠어... 외로웠을 텐데... 내가 왜... 바보같이 같이 가주지 않았을까... 싫아해도 억지로라도 따라나섰어야 하는데... 바보같이 바보같이...

  나는 갑자기 불안하고 다급해져서 거울을 보고 엉망인 몰골에 모자를 눌러쓰고 택시를 부르려 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수습하고 일단 아들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지금 약국이야... 약 타서 갈 거야...

 목소리가... 나쁘지 않았다. 아들의 목소리에 흡, 하고 목이 메었다.

 "조심해서 와..."

 겨우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들은 일주일치 복용할 약을 받아 왔다. 시티를 찍어보자는데 일단 약 먹어보고 차도가 없으면 생각해 보겠노라고 했고 의사는 그렇게 해도 괜찮다  했다고 말했다.





  

  6월 6일 현충일에 모처럼 친구들을 만났다. 아들과 동갑인 아들을 둔 A와 공공기업 국장으로 있는 미혼의 친구 B와 '원더랜드' 영화를 보고 나와서 소고기샤브샤브로 점심을 먹고 넓은 호수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호숫가 야외무대에서는 태권도복을 입은 한 무리의 아이들이 왁자하게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있었고 햇볕에 그대로 노출된 무대 앞 관중석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감성적인 친구 A가 열기만 뿜어내는 뿌연 하늘을 보며 하얀 뭉게구름 몽실몽실 피어나던 며칠 전의 맑은 하늘이 아님을 아쉬워했다.

  한참을 내려다보며 아들 어릴 때 태권도 시범이나 겨루기 할 때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다가

 "참, 너 아들 다시 취직 했어?"

 다니던 회사를 나와 쉬고 있다는 A의 아들에 대한 근황을 물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A의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광고회사에 취직이 되었고 벌써 두세 번 직장을 옮겼고 지난번 만났을 때 또 퇴사하여 쉬면서 다른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었다.

"어... 또 들어갔는데... 이번엔 스타트업 회산 가봐... 아직은 엄청 맘에 들어하는데 또 모르지... 이번엔 4 개월이나 쉬었어..."

A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아니, 나처럼 아들의 퇴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A의 아들은 취준생 기간이 없었다.

  내 아들은 취준생 생활이 길었다. 2년 가까이 수없이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시험을 보고 하다가  겨우, 기술학원을 알아봐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할 즈음 취직이 되었다. 그것도 이름을 대면 거의 알만한 중견기업이었다. 기약없는 취준생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건 아들도 나도 마찬가지이다. 아들이 회사생활을 힘들어할 때면 내가 물어보았었다.

  그래도...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 아들은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었다. 그리고 남편은 적어도 2년은 다녀야 경력직 입사에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힘들어도 2년은 참고 다니라는 무언의 희망사항이었을 것이다. 입사 동기가 하나 둘 퇴사하는 중에도 아들은 그렇게 일 년을 다녔고, 이제 좀 마음을 놓아도 되려나 했는데..

  "나는 두려워... 또 아들이 취준생 될까 봐...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고..."

 나의 말에

 "너나 니 아들은 크고 안정된 기업만 찾으니까 그래..."

 A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건 나나 내 남편이 이직이 잦고 긴 실직을 경험하는 등 불안한 직장생활을 오래 해 봤기 때문인지도 몰라... 우리 아들만큼은 우리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B는 전문직장인답게 자신이 겪은 젊은 직원들을 예로 들어가며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요즘은 부하직원이라고 절대 함부로 하지 못한다고... 자신이 좀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한다 싶으면 메모하고 녹음해 뒀다가 여차하면 까발려서 역습당하기 쉽다고... 내 아들도 그 정도면 부당한 처사를 증거로 모아 두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동종업계에 계속 다니려면 아주 신중해야 할 일이고... 누구는 퇴사하면서 자기가 겪은 걸 죄다 까발려서 상사 옷 벗게 만들기도 했고...

  나도 그 비슷한 생각 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함부로 부하직원을 다루겠냐고... 설사 부당하게 갈구더라도  우리 아들은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맞설  성격도 아니고... 나한테 A의 아들처럼 뭐든지 시시콜콜 얘기하는 성격도 아니니까... 내 모르는, 나한테 말하지 못한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고...


 B가 말했다.

"좀 쉬라고 말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스트레스 그거 무시하면 안 돼..."

A도 말했다.

"그래... 그렇게 말해 줘... 많은 위로가 될 거야... "

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야 되는데...  그 말하기가 왜 이렇게 어렵니 나는..."






  남편이 아침 일찍 등산을 나간 지난 토요일에도  새벽에 들어온 아들은  정오가 되도록 한밤인 듯 잠들어 있었다.  나는 주방을 서성였다. 아들이 일어나면 라면을 끓여 먹으려 하겠지만 나는  라면과 함께 먹을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메뉴는 볶음밥이었다.

 식은 밥이 많이 남아 있고 또 전날 저녁 남편과 중국집에서  오랜만에 먹은 볶음밥이 기대 이상 맛있었음이 떠올라서였다. 그동안 티브이 편스토랑이나 유튜브 요리 숏폼을 본 기억을 되살려 아주 맛있는 볶음밥을 하기로 했다. 재료도 조미료도 비슷한데 약간의 순서나 약간의 방법의 차이로 맛이 달라짐을 퇴사를 하고 집에서 요리하는 시간이 늘어나 요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알게 되었다.


  깊은 팬에 식용유에 다진 마늘과 다진파를 넣고 볶다가  햄 당근 양파를 넣고 볶는다. 그리고 식은 밥을 넣어 섞어 볶은 후 그 모든 재료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식용유를 조금 더 첨가한 후 풀어둔 계란물을 부어 스크램불을 만든다. 또다시 모든 재료를 섞어 볶아준 후 다시 한쪽으로 밀어둔다. 그런 다음 팬을 기울여 간장을 넣어 그  간장이 바글바글 끓어오를 때까지 잠시 기다려 준 후 다시 모든  재료를 함께 섞어 볶는다. 굴소스로 감칠맛을 더해주고 아주 조금 눌어붙을 때까지 볶아주어야  꼬들꼬들하고 고소한 중국집 볶음밥과 비슷한 맛이 난다.  약간 졸이듯이 끓여 준 간장의 풍미가 신의  한 수이다.

똑같은 방법으로  해도 기대한 맛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는데 오늘은 간장 끓이는 시간을 조금 더 신경 쓰고 정성을 기울였더니 어제 중국집에서 먹었던 볶음밥과 거의 비슷한 아주 흡족한 맛이 되었다.


  부스스한 몰골로 일어나자마자 주방에 들어가 가스레인지 위에 있는  냄비나 팬의 뚜껑을 먼저 열어보는 아들.

  나는 아들을 부리나케 따라 들어갔다. 아들은 볶음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볶음밥이야... 먹어  봐...   어제 아빠랑 중국집  가서 시켜 먹었는데 너무 맛있더라고... 그래서 해봤는데 맛이 비슷해... 먹어 봐..."

  나의 재촉에 아들은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고 음미하듯 천천히 우물거리더니 으음... 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라면 끓여서 같이 먹어..."

  했더니 볶음밥 있으니까 짬뽕이 먹고 싶은데... 했다.

  짬뽕? 좋지... 내가 사줄게...


 볶음밥과 짬뽕으로 차려진 식탁에 마주 앉았다.  아들은 늘 그렇듯 잘 먹었다. 볶음밥... 진짜 중국집 볶음밥 같지 않냐고 나는 몇 번이나 물었고 아들은 그때마다 입안 가득 퍼넣은 음식을 부지런히 씹어 삼키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 식탁을 치우는 아들에게 물었다.

"머리는... 어때? 괜찮아? 약은 잘 먹고 있어? 잊어버리지 말고 먹어..."

 괜찮아... 아들은 무성의하게   툭 던지듯 대답을 해주고는 거실 소파에 가서 벌렁 누웠다. 나는 식탁과 주방 정리를 대충 마무리하고 아들이 누워있는 소파로 가서 앉았다. 아들은 핸드폰으로 축구경기를 보고 있었다.

나는 리모컨을 들고 티브이를 켠 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아주 심상한 척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 힘들면... 그만둬... 회사... 그렇게 머리 아파서 약을 먹을 정도로 힘들면... 그만둬도 돼... 직장보다 너가 중요해... 너가 먼저야... "

 아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일어나 세면장에 들어가 긴 시간 씻고 나온 아들의 모습은 아주 조금 가벼워 보였다. 백팩을 메고 집을 나서길래 어디 가냐고 물으니 카페에 가서 뭐 좀 하다가 저녁에  친구 만날 거라고 했다. 너무 늦지 말라는 말에도 알았다고 대답했다. 나가려다 말고 엄마는 뭐 할 거냐고 물었다.  집에 있을 거야.  했더니 문을 닫기 전 돌아보지 않고  일찍 올게. 하고 말했다.  어디 가냐 일찍 와라 같은  말에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가 많았는데 스스로 일찍 올 거라고, 거기다가 엄마는 뭐 할 거냐고까지 물었다.

 

 힘들면 그만둬도 돼...


그 말을 아들은 어쩌면 바라고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멀어지는 아들의 발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간장을 조리듯 끓여 은 것이  볶음밥의 맛을 도와주었듯이 나의 그 말 한마디가 아들의 지금 힘든 생활에 그리고 힘들 어떤 결정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나는 그저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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