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작고 얇은 치즈 피자와 커피로 브런치를 즐긴 친구는 이른 저녁으로 감자옹심이를 먹자고 했다. 먹는 것에 특별한 호불호가 없는 나는 늘 그랬듯이 그러자고 했다. 감자옹심이는 일주일 전쯤 고향에 갔다가 도착한 늦은 밤 오빠 부부와 먹었다. 시골과 휴게소에서 먹은 온갖 음식이 소화되기도 전이어서 망설였더니 오빠는 자신의 오랜 단골집이고 부부가 직접 감자를 갈아서 만들어 늦은 밤 먹어도 부담 없고 오히려 속이 편안하다고 적극 추천했었다.
그럼 다른 거 먹을까? 친구가 말했지만 그냥 옹심이 먹자고 했다. 친구는 유명한 맛집이라고 가끔 혼자 와서도 먹는다고 나를 데리고 갔다. 저녁 시간으로는 좀 이르지만 건강을 위해서 일찍 먹고 속을 비우고 잠자리에 드는 방식을 길들이는 중이라고도 했다.
브레이크타임을 걱정하고 도착했더니 역시나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는 다섯 시 까지는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놓여 있었다. 친구는 근처 코오롱상설할인매장으로 안내했다. 한 시간 금방 갈걸... 하면서. 과연 한 시간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흘러갔다. 친구는 아들 옷을 사주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서 아들에게 전송하고 답을 기다렸는데 끝내 답이 오지 않아 빈손이었고 나는 조만간 남편과 함께 와야겠다고 하고 쇼핑을 끝냈다.
5시 10분쯤 다시 식당에 가니 벌써 식당 안은 손님들로 만석이었다. 한두 테이블을 제외한 모든 테이블의 고객들이 중년도 넘어선 듯 보이는 여자 노인들이었다. 과연 향토음식이구나 싶었다.
다행히 카운터 바로 옆 한 개 남은 이인용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친구는 완전 옹심이를 나는 메밀칼국수옹심이를 주문했다. 우리 테이블과 붙어 있는 4인용 테이블에서는 한껏 성장을 한 여자 노인들 네 명이 가운데 전병과 만두까지 시켜 놓고 느릿느릿 식사 중이었다.
주방에서는 직원들이 뿌옇게 피어오르는 김 속에 분주하고 카운터 옆에는 강원도 감자라고 쓰인 상자가 쌓여 있고 '매일 아침 직접 갈아서 만듭니다'라는 홍보용 글귀가 붙어 있었다.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식당의 맨 끝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하는 좌식 테이블 자리도 만석이었다.
보리밥과 무생채와 열무가 먼저 나왔다. 보리밥 양은 두 세 숟가락 정도였다. 무생채와 열무가 너무 맛있어서 보리밥을 더 달라고 해볼까 하는 맘이 생겼지만 주매뉴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 참았다. 무생채와 열무로 비빈 보리밥을 다 먹고도 우리는 주매뉴가 나오기까지 쉬지 않고 무생채와 열무를 집어먹었다. 이거 이러다가 밤새 물 찾는 거 아니야? 하면서도 젓가락을 멈출 수가 없었다.
친구 말대로 역시 옹심이는 맛있었다. 생감자의 식감이 그대로 살아 있는 옹심이는 살캉살캉하게 씹히고 국물은 감자수프처럼 따뜻하고 뭉근하고 담백하고 구수했다. 감자옹심이와 함께 넣은 메밀칼국수도 괜찮았지만 다음에 오게 된다면 친구처럼 감자옹심이만을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먹고 있는 우리 테이블 옆으로 카운터와 서빙을 함께 보던 직원이 한 할머니를 부축하듯이 안내하면서 지나가다가 멈춰 섰다. 자리가 없었다. 할머니는 어딘가 약간 불편한 듯 구부정하고 힘이 없어 보였고 입성도 좀 추레했다. 할머니를 부축한 직원이 식당을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혼자 앉아서 식사 중인 남자 손님 앞으로 다가갔다. 남자손님은 우리에게 등을 보이고 앉아 있었고 뒷모습으로 보아 30대에서 40대 정도로 보였다. 와글와글한 소음 때문에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직원이 남자에게 정중히 뭐라고 말했고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직원은 다시 한번 식당을 둘러보다가 할머니를 좌식테이블로 올라서는 맨 끝쪽으로 데리고 갔다. 할머니 모습은 손님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고 직원은 다시 카운터로 돌아왔다. 고개를 빼서 할머니를 찾아보니 할머니는 구석진 자리에 구부정하게 앉아 계셨다. 안쓰러워 보였다. 늙기도 서러운데...라는 시조의 한 구절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리고 할머니와의 합석을 거부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평범한 감정의 소유자라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그에게도 늙은 노모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젊은 사람과의 합석이었다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을까. 나라면 어땠을까. 썩 내키지는 않겠지만 허락을 하고는 그 어색함과 불편함에 급하게 식사를 마쳤을 것 같다. 나이 든 여자 특유의 거침없는 친밀감이 있는 성격이라면 할머니 맛있게 드세요... 어떻게 혼자 오셨어요? 여기서 댁이 가까우신가요? 자제분은요? 하면서 흉허물 없는 수다를 떨겠지...
노인 인구는 앞으로 꾸준히 늘어날 것이다. 우리 모두 늙는다... 늙음은 죄가 아니다... 노인은 우리의 미래 모습이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나이를 잊고 살듯이 늙어가는 것 또한 잊고 산다. 노인은 태어날 때부터 노인이었던 것 같고 본인은 늙지 않을 듯이 산다. 늙음에 다가가는 나이에도 쉽게 수용되지 않는다. 의술의 힘을 빌어 주름살을 펴고 운동과 식생활로 더 이상 늙지 않게 신체를 옭아 매도 끝내 늙음을 멈출 수는 없다. 어느 정도 늦출 수 있을 뿐이다.
젊은이도 늙은이도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식당도 카페도 혼밥족들을 위한 테이블이 몇 개씩은 마련되어 있다. 노인들이 즐겨 찾는 향토음식점에는 특히 몸이 조금 불편한 노인들이 맘 편히 식사를 하고 갈 수 있는 테이블을 한 두 개쯤 마련해 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감자옹심이 맛에 다시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옆 테이블에서 옹심이 한 그릇을 다 먹지 못하고 반쯤을 남겨 두고 직원을 불러 포장해 달라고 하는 또 다른 할머니의 모습을 흘끗거리고 있었다. 그러느라 그 할머니가 얼마나 기다려 어디에 앉아 식사를 하셨는지는 끝내 확인하지 못하고 포만감만을 안고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