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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Nov 21. 2024

내가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에 선정되었단다...

내가? 설마? 브런치팀에서 잘못 보낸 오류일 거야...

빨래를 개키다가 쿠팡에 주문할 식재료가 갑자기 생각났다. 바로 핸드폰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생각났을 때 바로 들어가서 장바구니에 담아 두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엉덩이를 들고 손을 뻗어 티브이 옆 충전기에 꽂혀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브런치스토리에서 알림이 와 있었다. 음... 또 구독 중인 어느 작가님이 새 연재를 시작한 모양이군... 나는 한번 시도했다가 포기하고 거둬들인 후 다시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연재를... 생각하면서 엄지손가락으로 알림 표시등을 내려보았다.


'스토리 크리에이터 선정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대표 창작 분야로 좋은 활동을 이어나가 주시길 바랍니다. 자세히 보기 > '


어?


뭐지?


내가?


에이... 설마...


잘못 봤나? 잘못 온 건가? 싶어서 다시 엄지손가락을 위로 쓸어 올려 알림 내용을 닫았다가 다시 내려 보았다. 알림 내용은 그대로 있었다. 두세 번 올렸다 내렸다 했다. 여전히 알림 내용은 사라지지도 바뀌지도 않고 그대로 있었다. 이번엔 브런치 스토리 앱에 들어가 보았다. 프로필 바로 아래에 소문자 s 가 들어간 동그란 연두색 배지와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란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오래도록, 어쩌면 끝까지 내 것이 될 것 같지 않은,  그것이...

그렇게 눈으로 확인하고도 나는 또다시 내가? 설마...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거기다가 덧붙여 혹시 브런치팀에서 잘못 보냈을 수도 있겠다는,  어쩌면 잠시 거둬 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오류는 언제든 발생할 있는 일이 아닌가.

정말 그렇더라도 당연히 잘못 들어온 알림인 줄 알았다고 덤덤하게 받아들일 것 같았다. 물론 씁쓸한 웃음 한 번쯤 흘리겠지만.


쿠팡에 들어가 생각난 식재료를 찾아 몇 가지 비교해 보다가 장바구니에 담고 다른 것도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쿠팡을 나와서 다시 브런치스토리 앱에 들어가 보았다. 연두색 배지가 그대로 있었다. 오류를 바로 잡는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 핸드폰을 던져 놓고 다시 빨래를 개켰다.


나는 그날 평소보다 자주 브런치스토리 앱에 들어가 보았고 그때마다 연두색 배지를 확인했다. 그날 밤이 되어서야 나는 내가 받은 알림이 오류가 아님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니 사실은 지금도 앱에 들어갈 때마다 혹시 사라졌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특히 스토리 크리에이터는 전문성, 영향력, 활동성, 공신력 등 네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하는데  이 중 내가 충족시킨 요소는 단 한 가지라도 있는가? 자문해 보면 더욱 그렇다.


전문성? 특별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특정 분야가 나에겐 없다. 그렇다고 내 살아온 생 또한 특별한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영향력? 구독자 겨우 104명이다.  그것도 108명까지 올라갔었는데 줄어들었고 지금 몇 달째 답보 상태다. 공감이나 댓글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활동성? 단 한 번 연재를 시도했다가 포기했고 가끔 <글 발행 안내> 알림을 받을 만큼 드물게 글을 올리고 있다.

공신력? 공적인 신뢰를 받을 만한 능력? 이건 뭐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민망할 정도이고...


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 무슨 이유로?


내 모르는 그들만의 이유가 있겠지... 선정된 이유가... 나의 글도...  말이야... 하는 긍정적인 생각이 조금씩 들면서 기쁨이라는 것도 조금씩 차올랐다.


사실은 요즘 자주 또다시 글 쓰는 일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응모한 몇 개의 공모전에서는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버렸고 얼마 전 브런치에서 올려 준 '202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을 읽으면서도 한껏 주눅이 들었다.  

혹시 내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꿈으로 포장된 허영에 사로잡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건강한 인생을 어두운 골방에서 낭비하고 있는 거 아니야? 차라리 환한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돌아다니며 인생을 그렇게 즐기라고... 무슨 작가 흉내를 아니 작가 지망생 흉내를 내고 있느냐고...  니 주제에... 평가가 두려워 글쓰기 모임에도 못 나가는 주제에...


이런 생각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지금 정오부터 두 시간 가까이 저물어가는 찬란한 가을을 뒤로한 채 환한 거실과 베란다와 큰방을 놔두고 스탠드 라이트를 켜 놓아야 하는 좁고 어둑한 작은 방 나의 책상 위에서 이러고 있다.


그러니까 '에세이분야 크리에이터 선정' 소식은 나에게 메말라 쩍쩍 갈라진 땅의 단비 같은 소식임을 부인하지 않겠다. 아니 단비는 단비인데 아주 실낱같은 단비다. 죽지 않을 만큼, 아주 포기하지 않을 만큼의 단비.


이렇게 또 나를 살려 놓으시는군요... 겨우 겨우 숨만 쉴 수 있도록...   


#에세이 #크리에이터 #브런치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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