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차로 한 시간 거리의
ㅇㅇ군에서 공장을 운영하면서 주말이면 와서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부석에는 홀로 된 팔순이 넘은 노모가 계시는데 요즘 거동이 불편해져서 더욱 자주 온다고 했다.
전날 풍기읍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혹시 부석에 있는지 전화해 보았었다. 친구는 ㅇㅇ군에 있지만 다음 날 사과밭에 약 치러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부석사 밑 카페에서 잠깐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약속이 아니었으면 부석사에 좀 더 오래 머물렀을 것이다.
다시 108 계단과 이제 완만한 내리막길이 된 은행나무길을 걸어 내려갔다. 저녁이 되면서 하늘은 더욱 낮게 잿빛으로 가라앉았다. 친구는 처진 눈꼬리와 올라간 입꼬리 사이에 잔주름이 겹겹이 생기는 하회탈같이 웃는 얼굴로 차에서 내리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닌 혼자 부석사에는 또 왜 왔노?
투박한 사투리에 반가움이 묻어났다. 식구들과 함께 왔을 때 들리곤 하던 청국장과 고등어구이와 나물반찬이 맛있는 식당 앞을 지나다가 저녁 먹을래? 물었더니 엄마랑 먹어야지... 기다리고 있을 텐데... 했다. 효자일세... 진심을 장난스럽게 말했더니 요즘 잘 걷지도 못하고... 쨘허다... 전화도 부쩍 자주 하고... 했다.
미술관처럼 잘 지어진 카페에 들어서면서는 와... 이 촌구석에 이런 곳도 있네... 지난번 왔을 때는 못 본 것 같은데... 했고 야 이제 여기 무시하지 마라... 했다.
카페 테이블은 텅 비어 있고 카운터에는 이런 농촌에서는 보기 드문 젊은이가 나른한 표정에 미소를 띠며 우리를 맞이했다. 냉커피와 빵 몇 조각을 앞에 놓고 친구들 안부 얘기를 하다가 자식들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늙은 노모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졌다.
대화 도중 친구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알았어 들어가... 먼저 먹든가... 알았어 알았어... 금방 갈게...말하고 폰을 내려놓으며 먼저 드시랬더니 같이 먹게 얼른 오란다... 라며 웃었다. 그렇게 기다리는 엄마가 있어서 기쁘다는 얼굴로 보였다.
나도 엄마 전화를 받았다. 나도 알았어 좀 이따 들어갈 거야...라고 대답했다. 아마도 내얼굴은 나도 날 기다려 주는 엄마 있지롱 하는 표정이었을 것이다. 우린 잠깐 마주 보고 피식 웃었다. 각자에게 온 엄마의 전화가 우리를 골목길에서 해 지는 줄 모르고 뛰어놀다가 엄마의 부름을 받고서야 집으로 돌아가던 어린 시절로 잠깐 돌아가게 했다. 우리 나이가 이만큼인데 아직도 저녁밥을 해놓고 우리의 귀가를 기다리는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뭉클했다.
외할머니는 아흔 무렵 나이에
치매를 앓았다. 외동딸인 엄마는 외할머니를 여기 집으로 모시고 왔다. 외할머니는 2년 여를 치매를 앓으며 엄마와 아버지와 함께 이 집에서 지내다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화장해서 외할머니와 엄마의 고향인 봉화군 오그래미 뒷산에 뿌렸다. 그 후 엄마는 외할머니 기일 때마다 혼자 버스를 타고 봉화 오그래미 동네에 가서 외할머니를 뿌린 뒷산에 올라갔다. 외할머니를 뿌린 산등성이에 가서 준비해 온 제물을 차려놓고 어매 나 왔네... 하고는 한참을 앉아 있다가 온다고 했다.
나이가 자꾸 들어 더 이상 산의 외할머니 있는 곳까지 올라가지 못하게 됐을 때는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만 올라가 앉아 제물을 차렸다. 그런 후 산을 향해 말했단다.
어매... 어매... 나 왔어... 이제 다리가 아파서 더 이상 못 올라가겠네... 어매를 어디 뿌렸는지도 모르겠네... 그러니까 어매... 어매가 날 찾아오게... 내 여기 있으니까 어매가 날 찾아와...
그럼 외할매가 진짜 찾아와?
눈물이 그렁그렁한 내가 물었을 때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찾아오지... 그래 말해놓고 눈 감고 있으면 어디서 휘이... 바람이 불어와... 그러면 그 바람이 꼭 어매 손길이야... 한 날(어떤 날)은 그렇게 앉아 있다가 잠이 들어서... 얼마나 잠이 들어 있었는지 동네 사람들이 횃불 들고 찾아 나섰잖에...
엄마 요즘엔 외할매 어떻게
만나? 봉화 오그래미 산에도 못 가잖아...
문득 엄마가 언젠가 들려준 이 이야기가 생각나서 물어보았다. 엄마는 틀니를 빼고 누워 막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 듯 보였다. 엄마의 얼굴에 편안하고 희미한 미소가 번지며 입이 조금씩 움직였다.
곧 진짜로 만날 건데 뭐 하러 불러... 죽으면 곧 만날 건데...
그토록 외면하고 싶은 ‘죽음’을 엄마가 얘기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또 물었다.
죽는 거... 안 무서워 엄마?
엄마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안 무서워... 죽으면 좋제 어매도 만나고... 어맴 (시어머니)도 만나고... 아뱀(시아버지)도 만나고... 영감도 만날건데...
엄마는 눈을 감고 몽롱하고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표정도 목소리도 편안했다. 마음이 놓인 내가 또 물었다.
아부지 만나고 싶어? 별로 사이도 좋지 않았으면서...
엄마가 눈을 감은 채로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만나야지... 만나고싶어...
점쟁이가 말했단다. 아버지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좁쌀 세 톨 겨우 들어올 상인 반면 엄마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쌀이 가마니로 들어올 상이라고...
좁쌀 세 톨과 쌀 가마니처럼 엄마와 어버지는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많은 식구 가난한 살림살이 힘든 농사일에 성격까지 좁쌀 세 톨과 쌀 가마니처럼 다르니 매사에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집안 살림을 때려 부순 날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나와 동생이 엄마 아버지와 함께 안방에서 함께 잘 때였다. 분명 잘 때는 엄마와 아버지 사이에 동생과 내가 누워 있었는데 잠결이나 잠에서 깨고 보면 엄마는 아버지 옆에 누워 있었다. 거기다가 아침상에서 동생이 곧잘 그랬다. 잠결에 엄마 젖 만지려고 엄마 앞섶을 헤치고 손을 넣었다가 아버지 손이 잡혀서 깜짝 놀랐다고... 그렇게 동생은 엄한 아버지를 밥상머리에서 무안하게 했었다.
늙고 병든 아버지를 엄마는 그리 잘 보살피지 않고 퉁퉁거리며 구박까지 했던 걸로 기억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는 섧디 섧게 울었다. 새신랑을 잃어버린 새색시처럼 울었다. 보다 못한 언니가 아버지 살아 계실 때 구박하더니 왜 그렇게 우냐고 핀잔을 줬었다. 엄마는 아버지를 어쩌면 구박하는 척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부부란 정말 부부만이 아는, 부부 외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얄궂은 마음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또 엄마는 말했다.
어매(외할머니)가 아흔두 살에 죽었거든... 나도 아흔두 살까지 살다 가야지...
외할매가 아흔두 살에 돌아가셨으니까 엄마는 백 살까지 살아야 돼 엄마... 그 사이에 평균 수명이 길어졌거든...
나는 문장에 밑줄을 긋듯이 크고 강력하게 말했다.
에이... 시래(싫어)... 그쿠(그렇게) 오래는...
그게 뭐 원한다고 되나? 건강하면 오래 사는 거지... 엄마 아픈 데 없이 건강하잖어...
그래도... 니들이 그만 죽었으면... 하기 전에 죽어야지... 언제 올라갈래?
언제 갈까? 내일이나 모레?
내일 가... 여자가 집 오래 비우면 안 돼... 강서방한테 잘해...
엄마는 낮게 코를 골며 잠들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부엌으로 가서 가지고 온 책을 읽었다. 금요일 독서모임에 읽고 가야 할 ‘파리대왕’ 책이었다. 산골의 검은 밤이 깊어갔다. 잠깐 밖에 나가 마당에 섰다. 깊은 밤의 어둠 속에 잠겨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높고 광활한 하늘 어디쯤에 지상을 내려다보는 존재가 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잠든 어미 곁에서 잠 못 들고 꼬물거리는 한 마리 눈 뜬 벌레 같으려나...
작은 방 건너 엄마가 잠든 방에서 쏴아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요강에 오줌 누는 소리였다. 이어서 열린 문으로 내다보며 뭐하노? 물었다.
잠이 안 와서... 잠 오면 잘 거야... 얼른 또 자 엄마...
내가 돌아보며 말했고
닌 아직도 책을 그쿠 읽나... 고만 읽고 자...
엄마가 가볍게 나무라듯 말했다.
고만 읽고 자... 고만 읽고 자... 닌 책을 왜 그쿠 읽노... 고만 읽고 자... 참 많이도 들은, 엄마만이 나에게 해 주는 걱정어린 잔소리... 참 오랜만에 들었다.
밭에서 일하고 있는 오빠에게
폐가 될 것 같아서 행정복지센터 앞에 엄마와 같이 나가 버스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버스보다 오빠의 차가 먼저 왔다.
엄마 나 가... 잘 있어 엄마... 밥 잘 먹고 조심해서 댕기고...
나는 사이드미러 안에서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는 엄마의 모습이 작아지다가 작아지다가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눈을 뗐다.
오빠는 올케가 가져가라고 주더라면서 밭에서 막 딴 오이와 마늘종과 고추와 호박을 가지고 왔다. 나는 오빠가 가지고 온 채소들을 배낭에 넣었다. 배낭이 터질 듯이 빵빵해졌다.
날씨는 여전히 흐리고 후덥지근했으며 도로도 여전히 한적했다. 도로가에 바싹 붙어 있던, 중학교 고등학교 때 자주 놀러 가던 친구집도 지나갔다. 회색의 슬레이트 지붕엔 주황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마루에는 알루미늄 새시를 달아 전혀 다른 집이 되어 있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저녁밥을 할 때 엄마처럼 감자를 함께 넣었다. 엄마처럼 내솥의 테두리에 동그랗게 넣었다. 밥과 함께 포실포실 익은 감자를 꺼내 먹으면서 산 밑 집에 틀니를 빼고 혼자 누워 있을 엄마를 생각하며 나직히 말했다.
엄마... 잘 자 ...
ㅡ끝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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