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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 없이 불쑥 엄마에게 갔었다 1회

꿈이라? 꿈 아니라?

by 찌니


풍기읍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

부석면으로 들어가는 저녁 7시 30분 마지막 버스를 탔다. 가는 비가 내리다 말다 하는 흐린 날씨였다. 승객은 나와 베트남인으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전부였다. 키와 얼굴이 자매인가 싶을 만큼 비슷한 그들은 챙이 넓고 정수리가 뚫린 똑같은 모자를 한 명은 머리에 쓰고 한 명은 벗어서 손에 들고 있었다. 납작한 운동화와 편해 보이는 긴바지와 반소매 윗도리에 얇은 남방을 걸치고 배낭을 메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돌아가는 듯한 표정이고 복장이었다. 그들에게선 약간의 피로가 느껴질 뿐 이방인이어서 풍기는 어색함이나 쓸쓸함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나보다 더 내지인 같았다.


세 명의 승객을 태운 버스는

잘 포장된 한적한 도로를 거침없이 달렸다. 차창 밖은 점검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혼자 특히 이런 시간에 버스로 귀향하는 것이 처음인 나는 행여 내가 내려야 할 부석면을 지나칠까 염려되어 창유리에 코를 박고 밖을 내다보았다. 차창 밖의 산과 들과 가로수와 유실수와 마을들이 점점 지워지고 도로는 점점 좁아졌다. 소수서원 희방사 선비의 고장 순흥면 단산면 등 헤드라이트에 비친 이정표의 지명은 익숙했지만, 마을과 건물들은 어쩐지 낯설었다. 오래되어 낡고 바랜 건물들 사이에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반듯하고 각진 건물이 박힌 돌을 타박하는 굴러 들어온 돌처럼 위압적으로 보였다.


엄마가 있는 고향에 간다는

설렘과 점점 짙어지는 어둠이 주는 불안으로 불안정한 나와는 달리 바로 앞자리의 그들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웃기도 하며 낮은 목소리로 대화도 나누었다. 차창 밖의 어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높은 의자 등받이 너머로 언뜻언뜻 옅은 향신료 냄새가 건너왔다. 그 냄새는 잠깐이지만 내가 베트남의 오지를 여행하는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감정을 느끼게 했다.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아간 우리의 빈자리에 그들이 들어와 자리 잡고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차례차례로 나보다 먼저 내려 어둠에 싸인 산 아래 마을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갔다. 혼자 남겨지니 어둠이 더 짙어지는 것만 같았다.

결국 운전기사에게 안내를

요청하여 부석면의 행정복지센터 앞에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겨우 저녁 8시가 좀 넘은 시간일 뿐인데 면내는 어둠과 깊은 적막에 잠겨 있었다. 수몰이 확정되어 사람이 모두 떠난 텅 빈 마을 같았다. 오래전 단 한 번 집안 행사 때 식구들과 갔던 면내의 유일한 노래방인 '활주로 노래방'은 간판이 금방 떨어질 듯 비스듬하게 겨우 붙어 있었다. 나는 한 밤의 침입자처럼 발소리를 죽여 걸었다. 약국, 사진관, 정육점, 중국집, 미용실 앞을 지나 부석수퍼와 순정다방 사잇길로 접어들었다. 구순의 노모가 잠들어 있을 내가 걸어 들어갈 마을은 더욱 깊은 어둠과 적막에 잠겨 있었다.

사잇길로 들어선 바로 왼쪽은 그 옛날엔 면장 집이었다. 그때는 마을에서 가장 넓고 큰 으리으리한 기와집이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으로 퇴락해 있다. 시멘트 블록담과 슬레이트 지붕이 바싹 붙어 더욱 낮고 깊어 보이는 그 옆집도 지금은 비어 있을 것이었다. 혼자된 팔순 노모가 다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해지자 도시의 자녀가 모시고 간 지 몇 달이 되었다고 들었다. 오른쪽의 유일한 현대식 이층 집은 사업에 성공한 남자 동창이 부모님의 낡은 집을 허물고 지어준 집이다. 고급 팬션 같은 그 집에는 현재 노모 혼자 살고 있다고 들었다.


또다시 갈림길이 나왔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걸어 들어가 모퉁이를 돌면 엄마 집이다.

한밤의 침입자처럼 발소리를 죽여 걷던 나는 그 갈림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가리는 높은 건물이 없는 산골의 하늘은 높고 광활했다. 달도 별도 보이지 않아 어둡고 높고 광활한 하늘이었다. 저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존재가 있다면 지금 나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어미 찾아 꼬물거리는 눈먼 한 마리 벌레 같지 않을까... 생각하니 문득 내가 한없이 작고 연약한 어린 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다시 걸음을 옮겨 좁고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섰다. 골목길은 내 발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다. 문득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이란 시가 떠오른 것은 그 깜깜한 어둠 속에 홀로 잠든, 이제는 아주 늙어버린 내 엄마 때문이었을 것이다.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지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느닷없이 떠오른 시로 인해 먹먹해진 마음으로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 마을의 맨 끝 야트막한 산 아래 담도 대문도 없는 깜깜한 엄마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당을 나서야 있던 화장실과 땔감이 쌓여 있던 깊고 어두운 부엌을 안으로 들이는 공사를 했을 뿐 마루에 새시문도 달지 못했고 에어컨도 설치하지 못했다. 여름이면 개미와 벌레가 출몰하는 삭은 시멘트 바닥도 수리하지 못했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돈을 쓰냐고, 옛날에 살던 거 생각하면 지금 이 정도는 천국 중에 천국이라고, 얼마나 편하고 좋은 세상이냐고 고집을 부리셨다. 아무도 엄마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엄마가 그런 말을 한 지 족히 십 년은 지난 것 같다. 특히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라는 엄마 말에는 이구동성으로 10년 아니 20년은 거뜬할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이젠 그렇게 큰소리 칠 수 없게 되었다.

방문에 어른거리고 있을 줄 알았던

티브이 불빛이 없었다. 엄마는 항상 티브이를 켜 놓고 잠이 들었었다. 어디가 아파서 첫째 오빠 집에 가 계시는가 싶은 불안한 마음으로 미닫이문을 조심스럽게 열며 낮은 목소리로 엄마... 하고 불러 보았다. 연락 없이 온 터이므로 너무 놀라지 않게 해야 했다. 어둠 속에서 벽을 향해 누운 엄마의 실루엣이 보였다. 얇은 여름 이불을 덮고 모로 누워 있는 엄마의 몸피는 몇 달 사이 또 조금 더 작아진 것 같았다. 갑자기 켜지는 불빛에 놀랄 것 같아 엄마 가까이 다가가 다시 한번 불렀다. 엄마아...

엄마는 미동도 없었다. 엄마 귀가 좀 어두워졌다는 뒤늦은 자각에 나는 엄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엄마의 귀 가까이 몸을 숙여 좀 더 크게 불렀다. 엄마아....

엄마가 나를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누구로(누구니?)...

뭔가에 눌린 듯한 불분명하고 몽롱한 목소리였다.

엄마... 나야... ㅇㅇ 나 ㅇㅇ... 불 켤게...

나는 엄마를 다독인 후 스위치를

올렸다. 불빛에 드러난 엄마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아주 잠깐 얼음땡이 되었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솜처럼 새하얀 머리에 떴는지 감았는지 알 수 없는 작고 흐리고 처진 눈과 무엇보다 틀니를 빼서 함몰된 구멍 같은 엄마의 입... 그 모습은 나를 낳아준 나와 가장 닮은 내 엄마의 얼굴이기보다 엄마를 낳아준 외할머니의 얼굴이었다. 치아가 있고 없음이 얼굴 모양을 그토록이나 바꾸어 놓을 줄을 나는 엄마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틀니를 뺀 엄마의 얼굴은... 뭐랄까... 공기가 빠진 풍선 같다고나 할까... 물론 누구나 나이가 들어가면 팽팽하던 풍선에서 공기가 조금씩 빠져나가듯 서서히 탄력을 잃어간다. 하지만 전체 틀니를 하고 있던 사람이 틀니를 빼면 팽팽하던 풍선에서 공기가 한꺼번에 빠져나가 갑자기, 확, 푹, 쪼그라들어버린 모습 같았다. 아직도 적응하는 데 한 참이 걸리는 얼굴이었다.

내 기억 속의 외할머니는 내가

외할머니를 인식하게 된 그 순간부터 치아가 한 개도 없었다. 엄마가 나를 서른에 낳았고 외할머니가 엄마를 스무 살 정도에 낳았다고 보면 외할머니는 최소한 거의 50대부터 치아가 한 개도 없었던 셈이 된다. 음식을 씹을 때마다 유난히 긴 턱이 부지런히 오르내렸다. 단단한 사과를 드실 때는 반으로 잘라 씨를 파내고 숟가락으로 긁어 드셨다. 외할머니는 열여덟 살에 시집 가서 스무 살에 엄마를 낳았고 스물 한 두 살에 미망인이 되셨다. 그래서 우린 외할머니를 자주 보고 살았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얼굴이 작고 동글동글했던 친할머니도 치아가 없었다. 치아가 있는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녀들보다 한 세대를 앞선 내 엄마는 틀니를 사용하고 나는 지금 임플란트 치료 중이다.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세대가 잇몸 세대이고 엄마가 틀니 세대라면 나는 임플란트 세대가 되는 건가... 가히 눈부신 의술의 발달이다.

우하하하.... 엄마... 완전 외할매(외할머니의 경상도 사투리)네 외할매...

놀라움과 반가움과 먹먹한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든 나는 소리치듯 말해 놓고는 크게 웃었다. 잠시 멍하게 쳐다보던 엄마의 얼굴에서 잠기운이 달아나면서 화색이 돌았다. 엄마는 내 웃음소리에 살짝 웃다가 나처럼 크게 웃었다. 크게 웃으니 더욱 외할머니 얼굴이 되었다.

우리 엄마 어디 간 거야? 우리 엄마 맞아?

손으로 엄마의 검버섯이 피고 주름진 얼굴을 쓸어내렸다. 엄마와 나는 마주 보며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한참을 웃은 후 엄마가 손을 들어 내 얼굴을 만지며 나직이 말했다.

꿈이라(꿈이냐?)... 꿈 아니라(꿈 아니냐?).,.

지난해 겨울에도 이렇게 혼자 불쑥

내려왔었으니 엄마에게 연락하지 않고 불쑥 내려온 게 두 번째였다. 갑자기 내려온 나를 대하는 엄마의 반응이 좋았다. 물론 집에 무슨 일이 있어서 마음이 복잡해서 혹은 가출처럼 내려온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확실히 거두어들인 후였다. 기다리는 시간 없이 갑자기 느닷없이 맞닥뜨리는 놀라움과 반가움을 엄마는 마다하지 않았다. 가끔 연락 없이 불쑥 내려와도 괜찮냐는 나의 물음에 엄마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그러고 보니 스무 살에 집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던 때에도 이렇게 불쑥 고향집에 내려왔었다. 농촌의 밤은 도시의 밤과 달리 일찍 오므로 나는 거의 엄마 아버지가 잠자리에 든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엄마아... 하고 바로 나의 귀향을 알린 적도 있었지만 또 가끔은 막내마저 떠난 후 사용하지 않게 된 빈방의 쿰쿰한 이불속에 그대로 들어가 잠들기도 했다. 푹 자고 일어난 아침에 들리던 수선스러운 목소리.

하이고 ㅇㅇ가 왔네 ㅇㅇ가... 야야... 언제 왔노... 배 안 고프나? 일나서 밥 먹고 자라...


던 젊은 엄마의 목소리와

뭐? 누가 왔다고?

하던 젊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비몽사몽 들으며 누워 있던... 내 고단한 20대의 따뜻한 기억이 여기 있었다.


물론 내 가족이나 형제들과

함께 움직일 땐 몇 날 몇 시에 출발하고 몇 시에 도착 예정이라고 알려주지만 혼자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 내려올 땐 미리 연락을 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나의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행동임을 인정한다. 아무튼 가끔 불쑥 쳐(?)내려오는 나의 귀향은 다른 형제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 엄마에게 해주는 나만의 서프라이즈가 되었다. (2화에서 계속됩니다)


#엄마 #틀니 #귀향 #안도현 #스며드는 것 #서프라이즈 #풍기읍 부석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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