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행운
나에게 싸이 흠뻑쇼에 갈 수 있는 행운은 좀 복잡한 경로를 통해서 왔다. 내 친구인 A와 A의 친구인 B와 C가 있다. B와 C에 대해서는 A를 통해 얘기만 들었을 뿐 한 번도 만나지는 못했다. A로 인해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낯가림이 심한 내가 거절했다. 누구와도 금방 잘 어울리는 완전 외향인인 A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병원에 근무하는 B에게 싸이 흠뻑쇼 티켓이 세 개 생겼고 당연히 A와 B와 C가 함께 가려고 했다. 그런데 C에게 일이 생겨 못 가게 되면서 그 기회가 나에게 온 것이었다. 낯가림이 심하지만 싸이 흠뻑쇼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가수 싸이도 좋아하고 싸이의 노래도 좋아하는 싸이 팬이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오케이를 했다. 싸이 흠뻑쇼가 낯가림을 이겼다. 좀 얄미운 행동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장소는 대전 목원대학교 대운동장, 일시는 7월 13일 일요일 저녁 6시. 교통편은 B의 차로 정해졌다.
A는 금방 A와 B와 나 셋 단톡방을 만들었다.
A : 서로 인사 나눠요... 친구니깐...
나 : B 씨 반가워... 이렇게 만나게 되네... 나 싸이 팬... 이런 행운을 가져다줘서 고마워... 몇 번 만남 기회 거절한 건 내가... 첫 만남에 약해서...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는 일단 피하고 보는... 그저 익숙한 사람 익숙한 환경만 좋아하는 편협한 인간이라... 이해해 주길...
B: 난 아주 그냥 친해지는 스퇄... 적응력 짱이야 걱정하지 말어... 내가 잘해줄게...
나 : 정말이지? 그럼 B 씨만 믿을게 ㅎㅎ
A : 크크크 맞아... B는 성격 최고야!!!
작년에 한번 갔다 온 A의 경험담을 참고하면서 공연에 갈 준비를 했다. 드레스코드는 파랑, 갈아입을 여벌 옷, 수건. 신발은 크록스가 짱, 핸드폰 방수팩 등이었다.
좋아하는 유명 톱스타를 직접 보고 노래를 직접 듣는 것과 함께 나날이 화려하고 놀랍게 발전하는 무대 연출과 기술을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었다. 그리고 또 나는 몇만 명의 관객들이 콘서트가 끝나고 모두 어떻게 귀가하는지가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이 풀릴 것이라는 기대도 했다.
파란 모자는 집에 있고 파란색 티는 좀 길고 크지만 남편의 디스커버리 아웃도어를 입기로 했다. 핸드폰을 넣을 방수팩은 쿠팡에서 구매했다. A도 쿠팡에서 구매한 모자와 티셔츠를 찍어 단톡에 올리기도 했다. 소지품은 차 안에 두고 공연 후 젖은 옷은 차 안에서 갈아입으면 된다고 했다. 모든 게 완벽했다.
우리가 가장 노땅들 아닐까? 라는 내 말에 A는 작년에 보니까 우리보다 노땅도 꽤 있더라...라고 했다. 틈만 나면 싸이 노래를 듣고 흥얼거렸다. 싸이 노래 중 따라 부를 수 있는 애정곡은 뜨거운 안녕, 어땠을까, 낙원, 예술이야, 챔피언, 강남스타일, 아버지, 연예인 정도이다. 전날에는 파란 모자 파란 티 검은색 반바지 방수팩까지 착장한 모습을 찍어 단톡에 올리기도 했다. 드디어 나도 싸이 흠뻑쇼에 가보는구나...설레는 밤이 지났다.
물 건너간 행운
드디어 당일. B의 집 앞에서 오후 두 시에 만나기로 했다. 비가 올 듯 말 듯한 흐리고 후텁지근한 날씨였다. B의 집 까지는 아들이 차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일찌감치 완벽한 복장을 하고 앉아서 싸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오후 한 시가 넘은 시간 B가 단톡에 오고들 있냐고 물었다. 나는 10분 후에 출발하기로 하고 소파에 앉아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A가 대답 대신 여러 장의 사진을 보냈다. 진료비 내역서와 병원 이름과 자신의 이름이 쓰인 환자식별팔찌를 찬 팔목과 시퍼렇게 멍든 퉁퉁 부은 발....
A : 지금 병원 응급실...
B : 뭐야 뭐야? 어찌 된 거야?
나 : 엥?
A : 차 안에서 먹을 옥수수와 과일과 물까지 챙겨 나왔는데 시간이 이른 것 같아서 잠깐 운동이나 하고 가자 싶어서 운동 좀 하다가... 오른쪽 발가락 발등뼈 골절.., ㅠㅠㅠㅠㅠ
나 : 많이 다친 거 같은데...
B : 수술해야 해?
A : 수술은 두고 보재...
B : 그럼 어쩌나...
A : 둘이 다녀와...
B : 미치겠네... 운동은 왜???
A : 나도 미칠 지경... 잠깐 하고 가려고 했지... 둘이 가...
싸이는 이렇게 바이바이 해야겠네... 나는 오케이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별 갈등 없이 이렇게 보냈다. 둘이 가는 건 아닐 듯... B 씨 우린 아직 인연이 아닌가 봐 ㅠㅠㅠ 이렇게도 덧붙였다.
B는 둘이라도 가자고 했다. 나는 B씨 아직 시간 있으니 다른 사람 얼른 섭외해 봐... B씨 성격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듯... 하고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한 번 더 표현했다. 왜 안 가? 둘이 재미나게 가... A가 이렇게 써서 올렸지만 나는 발 큰일 났네... 오래갈 것 같은데... 시겁했겠구나... 답답하고 불편하겠지만 아무 생각 말고 쉬어... 그렇게 화제를 돌리며 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로부터 세 시간 후쯤 B가 딸과 함께 갔다고, 대전에는 비가 온다고, 게스트로는 잔나비가 나왔다고 대전 싸이 흠뻑쇼 공연 소식을 사진과 함께 톡에 올렸다. 나에게 왔던 행운은 그렇게 가버렸다. 좀 아쉽기는 했지만 후회는 되지 않았다.
다시 돌아온 행운
목요일에 친구 D가 금요일 날(7월 18일) 과천대공원에서 하는 오후 6시 싸이 흠뻑쑈 티켓이 생겼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뭐? 웬일 웬일!!!!
나는 A와 B와 싸이 흠뻑쇼에 가려다가 못 간 사연을 얘기하면서 당연히 간다고 했다. 과천대공원이면 집에서도 가깝잖아... 웬일 웬일... 싸이가 나를 버리지 않았구먼... 호들갑을 떨었다. 친구 D는 나만의 친구며 A와 B에 대해서는 나와 B 사이와 같다.
공연장이 가까워서 좋은데 안 좋은 점은 지하철을 이용할 것이므로 소지품 보관할 곳과 공연 후 젖은 옷을 갈아입을 곳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지하철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어쩌면 탈의실이 따로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방수 기능이 있는 백팩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드디어 금요일. 몹시도 더운 날씨였다. 파란 모자 파란 티를 입고 갈아입을 옷이 들어 있는 방수백팩을 메고 오후 5시 무렵 지하철을 탔다. 여기저기 나처럼 파란색 복장을 한 젊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특별한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이라는 표식 같았다. 나도 초대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과천대공원역에 내리자 파란 복장의 사람들이 더 많았고 지상으로 올라 가자 파란색 복장의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어 한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주변에는 콘서트 관련 옷과 모자와 스카프와 방수팩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즐비했고 기념사진을 찍는 조형물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먹거리 포장마차도 많았다. 그중에서 ‘리본머리 원조맛집’이라고 쓰인 파라솔 밑에서 파란 리본으로 긴 머리를 땋아주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긴 머리의 여자들에게 물벼락을 맞아도 예쁘게 유지될 리본 머리를 땋아주는 곳이었다. 기발하고 재미있고 특이한 발상이었다. 실제로 긴 머리 고객의 머리를 땋아 주고 있었다.
우리의 티켓은 스텐딩 R석. 두 시간이 넘게 서 있어야 하므로 들어가기 전 떡볶이와 순대로 배를 채웠다. 조형물 앞에서 사진도 찍고 사람들 구경도 하면서 파란 물결에 실려 서서히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간이 화장실마다 줄이 길었다.
어리바리한 노땅 관객
입구를 앞에 두고 친구가 화장실에 다녀오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었고, 아이스박스 얼음 속에 파묻혀 있는 세 개에 만 원 하는 캔맥주를 살 때는 계산을 자동이체로 하느라 좀 지체되었다.
입구는 여러 개였다. 우리는 ‘스탠딩 R FLOOR 다구역’이었다. 줄을 서서 들어가 안내원에게 표를 내밀었더니 이 줄이 아니라 저쪽 줄이라고 했다. 줄을 잘못 선 바람에 또 지체되었다.
제대로 찾은 입구에서는 안내원이 우비와 500 ml 생수가 든 파란색 비닐 쌕과 한 손에 쏙 들어가는 동그란 발광 너클밴드를 나눠 주었다. 처음엔 뭔지 몰라서 이것이 무엇이냐고 안내원에게 물어보았다. 안내원이 뭐라고 짧게 말해주는데 뒷사람들이 몰려 들어오는 소란스러움에 묻혀버렸다. 요리조리 살펴보고 스위치를 올려 보았더니 빛이 반짝거렸다. 아하 그거로구나... 관객석에서 가수의 노래에 따라 일제히 흔들던 수많은 불빛들의 실체구나... 각자 준비하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나눠 주는 거구나... 걸어가면서 손목에 끼워 보았다. 잘 끼워지지가 않았다. 내 손목이 좀 굵은 편이니까...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끼우고 싶어서 걸어가면서 계속 끼우다가 동그란 발광체가 밴드에서 떨어져 버렸다. 떨어진 발광체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발 사이로 굴러 들어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밴드만 팔목에 끼우고 입장했다.
무대 앞은 벌써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이래저래 지체되는 바람에 무대 가까운 자리를 다 놓쳐 버렸다. 겨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나아가다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에서 멈춰 자리를 잡았다. 무대가 너무 멀었다. 앞의 주무대는 포기하더라도 가수가 노래하는 중에 마구 뛰어나오는 관객들 사이의 무대는 그나마 가까웠는데 어쩌다 보니 우리 앞에는 키와 등치가 큰 남자들이 우뚝 서 있었다. 까치발을 하고 목을 아무리 길게 빼도 무대는 잡히지 않는 꿈처럼 멀고 아득하기만 했다. 온갖 그래픽 기술로 현란하고 노래 가사와 가수의 무대를 그대로 비춰주는 대형 스크린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비를 입은 사람도 있고 입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우비을 입었을 때의 후텁지근함이 싫다고 입지 않았다. 여벌 옷도 갖고 왔으니까... 그런데 돌아보니 나눠준 파란색 비닐쌕 외에 나처럼 개인용 백팩을 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 자차를 갖고 오진 않았을 터인데... 젖은 채로 귀가하려나... 열대야에 가까운 날씨라 빨리 마르기는 하겠지만... 궁금증은 막 시작되는 음악과 함성에 묻혀 버렸다.
연인사이도 있고 친구사이도 있고 10대로 보이는 여자아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하늘로 튀어오를 수도 있을 것처럼 가볍고 발랄하고 팽팽하고 탄력 있었다. 간혹 드물게 나이 지긋한 사람도 눈에 띄었다. 음악이 터져 나오고 싸이가 격렬한 동작으로 댄스팀과 함께 등장하고 노래가 시작되고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뿌려졌다. 모두들 뛰고 따라 부르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귀가 멍멍할 정도로 소리들을 질러댔다. 온몸이 흠뻑 젖기까지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이래서 흠뻑쇼구나 싶었다.
나도 뛰었다. 뛰어 올랐다. 젊은이들 못지 않게 높이 뛰어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친구들 중 내가 가장 건강하니까. 내 다리가 가장 튼튼하니까... 한강까지 7시간도 걸었던 다리니까...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발이 지상에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주위를 둘러 보았다. 모두 나눠준 비닐쌕과 손에 든 방수팩 안 핸드폰이 소지품의 전부였다. 그러고보니 나만 백팩을 매고 있었다. 그리고 캔맥주와 물이 든 검은 비닐봉지까지 팔목에 걸려 있었다.
캔맥주를 산 것이 후회되었다. 남들이 사 가는 것 같아서 공연 도중 마셔도 되나 보다 마실 수 있나 보다 해서 샀는데 끝까지 마시지 못했다. 마시는 사람이 눈에 띄지도 않았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흠뻑쇼 후기를 읽고 나서 짐작한 바로는 오후 4시 무렵부터 입장하여 일찌감치 무대 앞 자리를 선점해 놓은 후 캔맥주를 미리 마시지 않았을까 싶었다).
바닥에 내려놓자니 다른 사람들 발에 치여 민폐가 될 것 같았고 내 다리 사이에 내려놓자니 그것 또한 불편하였다.
팔에 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저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대형스크린을 제대로 보는 데도 까치발을 들어야 했다. 다리와 어깨가 아파 잠시 쉬고 싶으면 젊은 사람들 노는 모습을 흘끗거렸다. 예쁘게 살이 찐 여자친구와 함께 온 남자애는 여자친구가 무아지경으로 뛰다가 비틀거릴 때마다 잡아주었다. 이마에 덮이는 젖은 머리카락도 쓸어 넘겨주었다. 남자애는 쇼보다 여자친구에게 더 집중해 있멌다. 여자애는 아예 남자애를 기둥처럼 붙잡고 내리누르며 뛰기도 했다. 십대로 보이는 여자애 세 명은 싸이의 모든 곡 특히 랩부분까지도 따라했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가늘게 쭉 뻗은 몸매며 랩퍼 특유의 몸짓이 미래 가수를 꿈꾸고 있는 듯 했다. 두 다리를 어깨넓이로 벌리고 서서 무대쪽만 보며 공연을 즐기는 근육질의 남자는 아마도 혼자온 듯 했다.
젊고 탄력 있고 날렵한 몸들이 한꺼번에 소리를 지르며 가볍게 공중으로 솟구치는 모습이 나에겐 또 하나의 볼거리였다. 젊음은 힘차구나 가볍구나 예쁘구나 멋있구나 좋구나... 온몸으로 즐길 줄 아는 니가 니가 니가 챔피언 챔피언.... 그래... 나는... 늙었구나...
우리가 갈 곳은 7080 콘서트야
공연은 두 시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내 다리는 아예 마비된 듯 뻗뻗해졌다. 노래는 계속 이어지고 물은 계속 뿌려졌다. 물폭탄을 정면으로 맞아서 귓속에 물이 들어간 것도 같았다. 젖은 옷이 아래로 축축 쳐지면서 몸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잠시 앉고 싶었으나 앉을 공간도 없고 나이 든 티를 내고 싶지도 않고 다리가 뻣뻣해져서 잘 접혀 지지도 않았다.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도 이젠 나오지 않았다.
어둠이 몰려오면서 공연장은 음악과 함께 화려한 빛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레이저가 머리 위 허공을 가로지르고 폭죽이 터지고 물벼락이 쏟아졌다. 뒤쪽의 넓은 지정석에서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발광 너클밴드의 빛들만이 춤을 추었다.
싸이와 함께 게스트로 나온 이영지와 태양도... 작게나마 실물을 잠깐잠깐 볼 수 있었다. 멋있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한번 되어보고 싶었다 연예인... 특히 가수... 싸이 같은... 그런 생각을 했다.
두 시간의 본 공연이 다 끝났는데도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고 앙코르를 외쳤다. 싸이가 다시 등장했다. 바람났어, 티얼스, 뱅뱅뱅 등 앙코르곡이 이어졌다. 한두 곡으로 끝날 줄 알았던 앙코르 공연은 한 시간 가까이 계속되었다. 다행히 낭만고양이, 흰수염고래, 나는 나비, 여행을 떠나요 등 아는 노래가 메들리로 불렀다. 노땅인 나는 남아 있는 힘을 쥐어짰다. 다시 올 것 같지 않은 한여름 밤의 꿈같은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세 시간 공연의 마지막은 공연장의 하늘을 찢은 화려한 불꽃놀이였다.
싸이의 마지막 인사 맨트는 인상적이었다. 자신을 비롯하여 이 무대를 설치하고 이 공연을 준비하는 일에 종사하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직업을 잃지 않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물에 빠졌다 나온 늙은 생쥐 같은 몰골로 공연장을 천천히 빠져나왔다. 입장할 때 보다 많은 경찰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한 편에는 포장마차가 줄지어 마련되어 있고 천막 같은 거도 있었다. 옷을 갈아입는 곳인가 싶기도 했지만 확인하지 않고 지나쳤다. 달라붙은 옷이 쉽게 벗겨질 것 같지도 않았고 옷을 갈아입을 기력도 없었다. 이렇게 젖은 채로 지하철을 타야 하나 고심하면서 빠져나오다가 치킨 노점상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래 캔맥주가 있었지... 일단 어디든 앉아서 좀 쉬고 싶었다. 치킨을 사서 눈에 보이는 빈 벤치에 앉았다. 캔맥주는 미지근해져 있었지만 부드럽게 잘도 넘어갔다. 이상하게도 너무 묵직한 방수백팩을 열어보니 가져온 여벌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이런... 천은 방수천이 맞는데 지퍼로 물이 들어간 건가 싶었다. 이렇게 물에 흠뻑 젖은 옷을 매고 있었으니 무거울 수밖에...
지하철로 이동하는 사람과 자차로 이동하는 사람들과 포장마차에 자리 잡은 사람들과 복잡한 시간을 피하기 위해 공연장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로 분산되어서 인지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위험한 사태는 연출되지 않았다. 사당역까지 가는 셔틀버스도 있었다.
벤치에 앉아 한참을 있자니 경찰들이 나오는 사람들을 일제히 막아섰다. 지하철 역사의 혼잡을 방지하려고 진입 자체를 통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하 지하철 역사 관계자들과 소통하면서 협조하면서 저런 식으로 통제를 하는구나...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책무가 있는 것이지... 그러니 이태원 참사는 누가 책임져야 하냐고!!!
남편이 차로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아웃도어 티셔츠는 물이 거의 빠졌는데 면바지는 아직 물을 머금은 채 묵직했다. 어기적어기적 남편이 알려 준 지하철 출구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출구 쪽 도로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택시나 승용차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도로엔 차들이 뒤엉켜 있는 듯했지만 경찰의 통제 하에 한 대 한 대 차례로 다가와 기다리는 사람들을 싣고 떠났다.
싸이 흠뻑쇼는 젊은이들을 위한 공연이야... 너무 늦었어 우린... 신났지만 힘에 부쳤어... 벅찼어... 우리가 갈 곳은 7080 콘서트야...
소감을 묻는 남편의 말에 이렇게 대답하고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젖은 옷의 물기가 의자를 적시는 것 같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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