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유감 1

by 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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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선정 도서 ‘윌리엄 포그너’의 ‘소리와 분노’ ... 너무 어려워요 으으으...”

맞은편 자리의 최 회원이 책상 위에 펼쳐 놓았던 천명관 작가의 ‘고래’ 책을 덮으며 엄살을 섞어 말했다. 혼잣말인 것 같기도 하고 바로 옆자리의 김 회원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고 모두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책상과 책상 사이는 200cm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쪽으로 귀가 활짝 열렸다.

“저도 그래서 먼저 좀 훑어 봤거든요... 제목도 출판사도 여럿이라... 번역한 것도 비교도 해 봤는데... 제 생각으로는 ‘열린책들’ 에서 최근에 ‘고함과 분노’라는 제목으로 나온 번역이 좀 읽기에 낫더라구요...”

김 회원은 그렇게 말하며 ‘고래’ 책을 가방에 넣고 ‘고함과 분노’ 책을 꺼내 휘리릭 펼쳐 보였다.

“벌써 읽으신 거예요?”

최 회원이 다소 과장되게 놀라는 시늉을 하며 물었고 김은 “오래전에 어렵게 한번 읽었던 거라...” 라고 대답했다.

“나는 몇 번인가 시도했다가 포기했어요 ... 이번엔 완독 하겠죠? ”

웬만해서는 남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는 내가 그렇게 나도 모르게 끼어들었다. 공감을 그토록이나 표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직은 끼어들기가 좀 조심스러운 위치라 생각하면서도. 나를 제외한 회원들 모두 이 독서모임에서 길게는 십 년 짧게는 오 년이 넘게 유지해 온 인연들이다. 나는 겨우 여섯 달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의 모임을 갖고 있으니 겨우 여섯 번 만났을 뿐이다. 아직 적응 중인 셈이다.

“제가 정말 억지로 겨우 읽긴 읽었는데... 정말 읽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책의 차례는 벤지편, 퀜틴편, 제이슨편, 그리고 하녀 딜지편 이렇게 되어 있는데 ... 팁을 드리자면... 조금이라도 쉽게 읽고 싶으면 퀜틴 편을 먼저 읽는 게 낫더라구요... ”

라고 김 회원이 말했다. 두 명이 빠진 열 명의 회원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한 달 후의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돌아가는 길에 전 회원이 ‘고래부동산’ 이란 간판을 찍어 단톡에 올렸다. 몇 시간 전에 토론한 ‘고래’ 책의 여운이 남아 있다는 뜻 같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래 좋네여~~~’

‘고래 독토(독서토론) 휴유증 인가요 ~~’

이라는 회원들의 답글들이 올라왔다. 나도 ㅋㅋㅋㅋ 정도의 답글을 올릴까 하다가 번뜩 무언가가 떠올라 걸음을 늦추어 걸으며 길가 간판들을 둘러보았다. ‘고래’ 간판을 찾아 찍어 올리면 재밌을 것 같아서였다. 한참 만에 ‘고래’ 간판이 아닌 ‘용 한의원’이란 간판을 발견했다. 나는 그 간판을 찍어 올렸다. ‘고래는 못 찾고 용 찾았어요 용 ㅎㅎㅎㅎ’ 이라는 글과 함께.

‘ㅎㅎㅎ’ ‘ 용도 좋아요’ 라는 답글이 올라왔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잠깐 괜한 짓을 했구만, 하고 생각했다.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2


김 회원의 말대로 나는 ‘열린 책들’에서 나온 ‘고함과 분노’ 책을 구입해서 퀜틴 편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책장이 넘어 가지가 않았다. 몇 장을 읽어 나가다가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야 했다. 나는 흥미 위주의 술술 넘어가는 책보다 읽다가 뭔가 걸리고 멈추고 생각하게 하는 책을 선호한다. 그런데 이 책은 읽다가 멈추면 다시 이어 읽기가 힘들었다. 별다른 단서도 없이 과거와 현재가 이성과 감정이 시간과 공간이 막 뒤섞여 있다. 몇 번이나 처음으로 돌아가다가 혹시나 싶어 책의 차례대로 맨 처음 등장하는 벤지 편을 읽어보았다. 웬걸... 느리기는 하지만 책장이 넘어갔다.

벤지는 이 집안의 막내로 세 살 지능을 가진 서른 세 살 남자이다. 퀜틴 편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인식이 뒤섞여 있지만 주석을 꼼꼼히 읽으니 책장이 넘어갔다. 가끔은 되돌아 가 읽기도 했지만 퀜틴 편처럼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다. 좀 오래 걸렸지만 벤지를 읽고 퀜틴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벤지와 퀸틴편은 힘들게 천천히 올라가야 하는 오르막길이었다면 제이슨 편과 하녀 딜지편은 속도를 좀 내도 되는 내리막길 같았다. 어쨌든 완독했다. 독서모임 토론을 위해서 해설 편도 꼼꼼히 읽고 읽으면서 밑줄 그은 곳은 다시 찾아 읽었다. 독서모임이 아니면 과거의 언제처럼 또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이다.


11월 넷째 주 금요일 오후 6시 ㅇㅇ도서관 3층 세미나실에 회원이 모였다. 두 명이 빠진 열 명이었다. 가장 늦게 도착한 가장 연장자인 장 회원이 단팥빵과 크림빵이 든 비닐봉지를 문 가장 가까운 책상 위에 놓아 두고 자신이 늘 앉던 맨 앞자리로 가서 앉았다. 와 빵이다... 배고팠는데... 맛있겠다... 모두들 앉은 채로 한 마디씩 했다. 의자에서 일어나려는 회원도 있었다. 나는 그 회원보다 더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빵이 놓인 책상으로 갔다. 둥글게 앉아 있는 회원 각자의 책상 위에 빵을 하나씩 놓아주었다. 크림빵이요 단팥빵이요... 하고 선택권도 주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모임이 시작되었다.


발제자가 프린트물을 나눠주었다.


1. 읽은 소감을 자유롭게 나눠 봅시다.

2. 가장 인상깊었던 문장 또는 문단을 공유해 주세요

3.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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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 작품의 제목 ‘고함과 분노’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3



“나는 솔직히 다 못 읽었어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더라구 ... 그러니까 눈도 더 아프고 글자는 더 가물거리고... 그래서 오늘은 열심히 듣겠습니다...”

장 회원이 프린트물을 읽어 내려가며 말했다. 지난 달 천명관 작가의 ‘고래’ 때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토론에 임하던 장 회원이었다.

“정말 읽기가 쉽지는 않더라구요. 그러나... ”

첫 발표자가 된 최 회원이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낭낭한 목소리로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최는 목소리 뿐만 아니라 말이 조리 있고 감상 포인트가 비슷해서 누구보다 집중해서 듣는 회원이다.

“지난번에 김 회원이 힌트 주신 대로 제이슨 먼저 읽었거든요... 확실히 좀 쉽더라구요... 퀜틴과 딜지는 의식의 흐름이어서 .... ”

어? 제이슨을 먼저 읽어보라 했다고? 퀜틴이라고 했는데...

몹쓸 의문의 시작이었다. 최의 다소 긴 발표가 끝나고 다음 발표자로 넘어가기 전에 자유토론이 시작되었다. 토론이 시작되면 끊고 들어가기 쉽지 않을 것 같기에 내가 가장 먼저 최 회원을 향해 말했다.

“지난 달에 김 회원님이 퀜틴 편 먼저 읽으라고 하지 않았나요? 제이슨이 아니라...저는 그렇게 들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는 뜻으로 말끝을 흐렸다.

“무슨 말이에요... 제이슨 먼저 읽으라 했어요... 퀜틴이 제일 어렵잖아요... ”

최가 온화하게 미소 지은 얼굴로 한 치의 의심도 주저도 없이 대답했다.

“어 이상하네... 나는 틀림없이 퀜틴 먼저 읽으라고 들었는데... ”

나는 또다시 말끝을 흐리면서도 동의를 구하듯이 둥글게 앉은 회원들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책을 뒤적이거나 프린트물을 보거나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김도 책을 뒤적이며 약간 미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저도 제이슨 먼저 읽었는데... 다 읽고 나니 정상적인 인물은 제이슨 밖에 없더라구요... 엄마 아버지도 이상하고... 그러니 애들도 다 불행하고... 퀜틴의 자살은 좀 이해가 안갔고요...”채 회원이 이렇게 말했다. 아 예... 제가 착각 했나 보네요... 나는 금방 꼬리를 내렸다.


토론은 다시 시작되었고 나의 의문은 그렇게 아홉 명의 회원들에 의해 묻혔다. 나도 그냥 묻어버리고 싶었지만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내 기억을 백 프로 신뢰하지는 않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퀜틴이라고 한 것 같았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소감을 말하기에 앞서 다시 한번 말했다.

저기... 나는 틀림없이 그 때 퀜틴이라고 들었는데... 나만 그렇게 들었나요? 내가... 잘못 들은 건가요? 나 혼자... 그렇게 들었을까요... ?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김 회원님 틀림없이 제이슨이라고 그러셨어요?”

나는 혹시라도 도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조심하느라 한껏 미소를 짓고 부드럽게 맞은편에 앉아 있는 김을 향해 물었다. 김 회원도 약간 미소를 지은 얼굴로 한 손으로는 볼펜을 돌리며 책에서 잠깐 시선을 들어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기억이 잘못되었나보네요... 세상에... 나 혼자... 어쩜 좋아요... 내 기억을... 아무튼 저는 김 회원님 말대로 퀜틴을 먼저 읽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처음부터 차례대로 그냥 읽었거든요. 다행히 읽히더라구요... 벤지... 세 살 지능이잖아요... 제 지능이 세 살에 가장 가까워서인지... 음... 다시 생각해보니 제이슨 먼저가 맞는 것 같네요. 제이슨이 가장 정상에 가까운 현실적인 인물이잖아요... 그래서 가장 읽기 쉽고 이해가 되고...


그렇게 그날도 두 시간을 가득 채우고 독서모임은 끝났다. 더 이상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독서모임 #독서토론 # 고함과 분노 #소리와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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