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유감 2

by 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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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났다. 독서모임 단톡방에 회장이 북한산 원효봉에서 찍은 풍경 사진과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면서 쓰다듬는 사진 여러 장을 올렸다. 고양이와 떨어진 곳에 개 한 마리도 보였다.

‘북한산 정상에 웬 개와 고양이?’

‘물아일체 분위기이십니다...’

‘와, 산속에서 고양이랑 노시는 중이신가요? ’

라는 톡들이 올라왔다.

고양이를 확대해 보았다. 지난해 겨울 북한산 산행 때 내가 만난 고양이인 것만 같았다.

‘고양이가 나 잘 지내냐고, 요즘 왜 산에 오지 않는냐고 묻지 않던가요? 하하...’

나는 이렇게 써서 올렸다. 산에 가고 싶은 마음과 산에 간 지 오래 되었다는 나름의 표현이었다. 두 명이 활짝 웃는 얼굴 이모티콘을 달아 주었다.


갑자기, 불현듯 생각나서 톡방을 위로 올려 보았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하면서.


있었다. 내가 혹시나 하고 찾던 바로 그것이.


<고함과 분노

어렵습니다...

스토리 파악이 쉬운 읽기 추천 순서

1. 퀜틴 편(1910) - 가족 몰락의 기점과 누이 캐디에 대한 집착 이해

2. 제이슨 편 (1928) - 몰락 이후 남은 가족의 현실적 모습

3. 벤지 편 (1928) - 이미 무너지 가족의 잔재, 시간 뒤섞이지만 배경 이해 쉬워짐

4. 딜시 편 (1928) - 하녀 딜시 시선에서 전체 몰락을 객관적으로 정리

이 순서로 읽으면 콤슨 가문의 몰락사 전체 구조를 잡기에 가장 편합니다..>



김 회원이 ‘고함과 분노’ 독서토론을 앞두고 올린 글이었다.

나는 바로 이 글을 캡쳐 해서 1. 퀜틴 편, 에 크게 동그라미까지 그려서 톡방에 올렸다.

그리고

“이것 보세요... 저 위에 김 회원님이 올린 내용이에요. ‘고함과 분노’ 틀림없이 쉽게 읽으려면 퀜틴 먼저 읽으라고 했죠? 했죠?”

하고 조금 흥분한 듯한 글도 올렸다. 이어서 또

“근데 독서토론 날 회원님들 모두 제이슨 편 먼저 읽으라 그랬다고 했죠? 그렇게 들었다고 했죠? 모두... 모두요... 심지어! 저 글을 직접 올린 김 ㅇ ㅇ 씨마저!!!”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톡에 올라 올 반응들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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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후 김의 글이 올라왔다.

“정말 그렇네요. 저도 어찌 그렇게 올렸나 모르겠네요”

의기양양해진 나는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다고 다들 그랬죠? 그랬죠? 나 바보된 줄 알았잖아요.. ㅎ ㅎ 갑자기 생각나서 찾아봤네요... 그런데 나 외에 어쩜 모두 제이슨이 먼저라고 들었을까요? 괜히 내 머리만 마구마구 원망하고 쥐어박았잖아요 ~~~ ”

여기까지 올리고 빨간 리본에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퍼져 앉아 머리를 마구 쥐어뜯는 귀엽고 코믹한 이모티콘을 찾아서 함께 올렸다. 그 밑에 마지막으로 “아 억울해” 라는 글도 올렸다.


10분 정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이거 뭐지... 9명 중 한 명도 자신의 기억이 잘못 되었다고 인정하지 않는거야? 좀 당황스러웠다.

“ㅋㅋㅋㅋㅋ 억울함 풀리신 거 축하드려요. 김 회원이 아마 말로는 제이슨이라고 하고 글로는 퀜틴이라고 올렸나 봐요! 회원님은 글로 읽으셨고 나머지 회원들은 말로 들은 게 된 거네요 ! ”

채 회원이 이렇게 올렸다. 그래도 제이슨이라고 말한 게 맞다는 것이었다.

“제 기억으로는 말로도 퀜틴이라고 했어요. 말과 글이 달랐다면 제가 그냥 넘어가진 않았을 거란 말이에요 ~~~ 나는 퀜틴으로 확실히 들었으니까요~~~ 그치만 말로 한 건 증거가 없네요 ~~~ 누구 녹음하신 분... 없나요?? ㅎㅎ”

나는 내가 별일도 아닌 지나간 일을 가지고 나 혼자 흥분해서 집요하게 군 듯 보일까 봐 ‘ ! ’를 ‘ ~~ ’ 로 바꾸고 마지막엔 농담도 한마디 쓰고 ㅎㅎ 도 넣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아까 머리를 쥐어뜯던 그 귀여운 여자애가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고민에 빠진 듯한 이모티콘도 첨부해서 올렸다.

뒤늦게 유치하게 너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보인 듯 하여 민망해졌다. 그래서 “그래도 덕분에 다른 책들보다 더 기억에 오래 남아 있을 듯 하네요 ㅎㅎㅎ ” 라고도 올렸다. 나의 글 밑에 회장 단 한 명만이 활짝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을 붙여 주었다. 다른 사람의 반응은 끝까지 없었다.

그렇게 난데없이 되살아난 ‘퀜틴 제이슨 건’ 은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은 나의 승리로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나의 머리는 그 기억을 쉽게 몰아내지 않았다. 참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불쑥불쑥 떠올랐다. 나 같으면 어머 제 기억이 잘못되었었군요... 정도의 답은 했을 것 같은 것이다. 단 한 명도 그렇게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인정하는 글을 올리지 않았다 약속이나 한 듯이. 혹시 자신들이 ‘틀린’ 게 아니라 자신들과 ‘다르다’ 는 것에 대한 거부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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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한 남편에게 얘기를 했다. ‘고함가 분노’도 ‘윌리엄 포그너’도 ‘퀜틴과 제이슨’도 모르는 남편에게 이야기 하기가 쉽지 않았다. 되물음이 많았기 때문에 참을성을 가지고 얘기를 해야만 했다.

“너 뭐 잘못했냐? 다 같이 따돌린 것 같은데... ”

길고 장황한 얘기를 다 들은 남편의 말이었다.

나는 펄쩍 뛰다시피 말했다.

“에이 아니야... 그럴 이유 없어... 그럴 사람들도 아니고... 내가 튀지 않으려 얼마나 조심하는데... ”

그리고 덧붙혔다. “내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왕따 당할 사람이야? 내가 왕따를 시키면 모를까... 나 혼자서 여러 명 왕따시키는 거 내 주특기잖아... 백수가 어떤 사람인 줄 알아? 조직을 아예 왕따시킨 사람이야 ㅋㅋㅋㅋ ”

그렇게 큰소리 쳤지만 나는 어느 새 독서모임에서의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도서관이 내년 1월부터 10월까지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간다고 해서 지금 모임 장소를 알아보고 있다. 지난 달 모임 때 그와 관련된 얘기 도중에 잠깐 장 회원이 홀로 된 노모와 단 둘이 40평대 넓은 아파트에 산다는 사적인 얘기가 나왔었다. 그때 내가 독서모임을 장 회원님 집으로 하면 어때요? 하는 의견을 농담 삼아 내놓았었다. 장 회원이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약간 당황스러워하면서 대답을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의견은 찬반으로 나뉘어 시끌시끌했었다.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어서 그 말을 한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토론 도중 누군가 소환하고 싶은 책의 제목이나 작가가 기억나지 않아 할 때 내가 말해 준 적도 몇 번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나도 모르게 나섰던 게 또 있었나... 기억을 헤집어 보았다. 단 한번 회원 서너명과 모임이 끝난 후 호프집에 갔을 때... 결국 내가 호프를 가장 많이 마셨고 가장 많이 떠들어댔었지... 결국... 말을 많이 한 후엔 늘 후회하면서...

모두의 맘에 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고 그렇게 애쓰지도 않는다. 특히 이 독서모임은 개인적인 친분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독서를 위한 모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도 내가 어쩌면 거슬리는 존재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불확실하게나마 확인하는 일은 결코 유쾌할 수 없는 일이다.


12월 독서모임이 다가오고 있다.


왜 아무도 자신의 잘못된, 혹은 잘못되었을 수도 있는 기억을 인정하지 않냐고... 아니 인정하는 글을 올리지 않았냐고... 물어볼까? 웃으면서... 절대 심각하지 않게...

그러면 모두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 달이나 지난 일을... 참 집요한 성격이시네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뒤끝 있으시네...


나와 다른 인간을, 하나의 우주에도 비유하는 인간이란 존재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어서, 남들보다 한 번 더 의문을 가지고 물어보면 이런 말들이 되돌아왔다. 이젠 그런 말을 들어도 감정적으로 미성숙하고 유치하던 예전처럼 상처받고 전전긍긍하지는 않겠지만 될 수 있으면 듣고 싶지 않은 말인 것은 분명하다.


그냥 넘어가는 게 낫겠지...


그러나 어쩌면 나는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나도 나를 잘 모르니까... 자기 자신도 모르면서 남들의 마음을 굳이 알고 싶어 하는 건 무슨 마음인지... 아무튼... 왜 자신의 기억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고 인정하지 않는거죠? 묻는다면... 그들은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을 할까... 궁금하고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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