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한 시간 전인 12시 10분쯤 학원 뒤 공원 벤치에서 물약으로 된 우황청심원을 마셨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말로만 듣던 우황청심원, 신경안정제였다. 어제 퇴근길 들린 약국에서는 청심환은 없고 물약인 청심원이 있다 해서 구매한 것이다. 전 날 언니와의 통화애서 언니도 두 번인가 세 번 떨어진 후 우황청심환 먹고 합격했다고 했다. 언니의 실제 경험 얘기는 평소에도 약에 대한 의존도가 극히 낮을 뿐더러 타인에게까지 위험할 수 있는 부작용을 염려하여 망설이던 나를 약국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현재 운전 고수인 언니에게도 지금의 나 같은 시간이 있었구나 싶어 많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언니는 도로주행 때 먹었다고는 했지만.
이번에는 20여 명의 응시생 중 순서 1번을 받아 들었다.
나이 순인가? 삼수생이어서 1번을 준 건가? 유리한 건가 불리한 건가...
긴장 속에서도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시험 전 긴장으로 인한 가슴 두근거림은 여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황청심원의 효과는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직각주차에서 탈선으로 10점 감점 됐고 교차로 좌회전쯤에서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았는지 잘못 켰는지 또 감점을 당했다. 그때부터 또 불안 초조해졌다. 시간초과로 감점받거나 남은 가속코스에서 실수하면 또 불합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종료코스가 눈앞에 보이는데 '실격입니다, 불합격입니다'라는 멘트가 들리지 않았다.
겨우 겨우 종료코스에 들어와 차를 세웠는데도 다른 합격생들에게는 나오던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라는 경쾌한 멘트가 들리지 않았다.
다가온 진행요원에게 안전벨트를 풀며 합격인가요? 합격인가요? 물었다. 진행요원은 대답 대신 그렇게 밟으면 어떡해요... 나무란 후
사무실 가서 도로연수 신청하세요... 했다.
내가 그렇게 밟았다고? 혹시 시간초과로 불합격할까 봐 속력을 낸 건가? 명확하게 기억나지가 않았다. 그럼 이건 우황청심원의 효과인가?
어쨌거나 합격했다. 겨우 관문 하나 통과 했다.
알려주지 말까? 지금쯤 엄청 궁금할 텐데... 아무 말 없으니 또 떨어졌군... 짐작할지도 모르지... 아예 말하지 말아??
그러나 참을 수가 없었다. 이 기쁜 소식을 나 혼자만 간직하기엔 가슴이 너무 벅찼다.
먼저 절친 4명 단톡에 알렸다.
ㅡ합격!!
그런데 친구들 반응이 참... 실망스럽고 어이없었다.
ㅡ안 그래도 어찌 됐나 기다리고 있었지
이 친구 반응은 그래도 낫다.
ㅡ와우 축하축하.., 이제 면허증 보유한 여자 됐네...
또 한 친구의 반응이었다. 벌써 면허증이라고?
ㅡ축하축하.... 다음은 멋진 차 구입!!
또 다른 친구의 반응은 한 술 더 떴다.
불과 일주일 전에,
ㅡ장내기능시험 두 번째 떨어졌다... 왜 시작했는지 후회막급이다... 들어간 돈 아까워 그만둘 수도 없고... 도로주행은 어찌할지.... 진퇴양난이다 흑흑...
그렇게 참담함을 전했건만 다 잊어먹고 최종 합격해서 면허증 취득한 줄 아는 이 무심한 친구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ㅡ잘했다....면허증 나오면 시내연수받아!!
참 나...
ㅡ이 무심한 남편아... 도로연수 교육받고 또 도로 시험 보고 합격해야 면허증이 나온다고!! 내가 설명해 줬을 텐데... 마누라가 뒤늦게 생전 안 먹은 우황청심원까지 먹어가며 이 고생인데....
기분 좋은 축하를 받기는커녕 실망스러운 반응에 맥이 풀리면서 피곤이 몰려왔다. 아무리 자기들은 면허증 딴 지 오래되었다 해도...
그 말이 맞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그다지 관심 없다. 가족조차도.
결국에는 오로지 자기 자신을 향할 뿐이다. 나 또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는 것도 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는, 행동의 목적을 타인의 행복에 둔다는 이타심도 결국은 타인을 위하는 자신의 행복과 만족에 귀결되지 않을까.....
그래서 인간이란 아무리 어울려 함께 울고 웃어도 결국은 바다 위 하나의 섬처럼 외롭고 쓸쓸한 존재들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