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흰색 승용차가 들어온다. 부드럽게 커브를 돌아 노란 산수유꽃 만개한 화단 앞 직사각형 주차라인 안에 한 번에 정확하게 주차한다. 그 모습이 오늘따라 멋지고 훌륭하고 부럽다. 차에서 내려 어색하게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나를 향해 벙긋 웃으며 봄보다 더 환하고 따뜻하게 다가오는,
내 친 구...
친구는 2년 전 유방암 2.5기 선고를 받았고 괴로운 항암과 지루한 요양원 생활을 씩씩하게 견디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 3개월이 지났다. 친구가 먼저 몇 번 연수를 도와준다고 했지만 나의 망설이는 시간은 길었다. 가까운 사람끼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운전연수, 혹시 가르침을 주고받다가 맘을 상해 불편한 사이가 될까 하는 염려는 전혀 없었다. 조금이라도 친구의 몸에 가장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스트레스가 될까 봐 쉽게 손을 내밀수가 없었다. 그러나 암만 생각해도 이 친구밖에는 없었다.
아들을 옆에 태우고 집 근처를 운전해 나갈 때마다 조수석에 앉은 아들은 운전석의 나보다 더 안절부절못했다. 나를 그렇게 못 미더워했다.
남편과는 고속도로에 잠깐 나갔다가 진짜로 싸웠다. 나눈 눈물 콧물 범벅이 돼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왜 초보운전자인 나에 대한 배려가 그렇게 없냐고 항의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운전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르느냐고 배려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큰소리쳤다.
와...운전연습 시키다가 이혼한다더니 그 말이 맞네 맞아...
그런 말까지 오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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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도 가자!"
내 친구는 조수석에 앉더니 바로 결정해 버렸다.
"뭐? 내가 운전해서?"
"그럼! 연수받았다며? "
" 너 미쳤니? 돌았니? 목숨 내놨어? 날 어떻게 믿고... 보조브레이크도 없이... 못해 나 못해..."
"그래야 늘어... 출발해..."
이런 겁 없는 친구를 봤나...
친구의 흔들림 없는 단호함이 나에게 용기를 내보게 했다.
그래, 일단 믿자, 너를 믿고 나를 믿고, 가보자...
안산 대부도 일대는 나에게도 친구에게도 익숙한 곳이었다. 특히 친구는 십 년도 넘게 운전해서 자주 다닌 곳이라 손금 보듯 환하다고 했다. 내비게이션 도움 없이도 길안내를 척척 했다.
"저기서 좌회전... 차선 바꾸고... 속도 좀 내야지... 직진... 우회전... 천천히... 힘 빼고.. 앞차를 봐... 멀리 봐야지... 그래... 잘하고 있어..."
어느새 도심을 벗어났다. 칼국수집과 횟집이 즐비한 상가도 지나고 양쪽에 바다를 둔 해안도로를 달렸다.
"이런... 바닷물이 다 빠졌네... 양귀비가 벌써 폈네.. 하... 꽃 봐라... 날씨 좋다...."
하다가도
"좌회전 좌회전... 좀 빨리 돌아줘야지 뒷사람들 생각해서...."
하면서 본연의 임무로 바로 돌아왔다.
"나 초보야 그런 거 신경 쓰지 말랬어..."
"사고도 초보라고 봐줄까? 다른 사람과 흐름을 맞춰야지... 이럴 때 달리는 거야 70까지 달려... 좀 천천히 줄이고..... 달려..."
"줄이고... 오... 잘하는데? 여기 알지? "
"몰라..."
"시화방조제... 시화나래전망대... 우리 왔었잖아...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지 아마? 바닥이 투명한 유리전망대여서 촌스럽게 무서워서 벌벌 떨었잖아..."
"맞다... 와... 그때가 언제냐... 까마득하다...
이 길을 내가 운전해서 달리다니... 운전하면서 이렇게 대화도 나누다니... 맨날 네가 운전하는 차에 탔었는데.... 이런 날이 이 생에선 없을 줄 알았는데....."
"나도 없을 줄 알았다.... 장하다 장해..."
평일의 서해안 해안도로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친김에 목적지 대부도를 지나 영흥대교를 넘어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까지 달렸다.
차문을 닫고 있음에도 멀리서부터 달려온 바람이 내 귓가를 스치듯 부딪쳤다가 다시 멀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런 게 말로만 듣던 질주본능이라는 것인가... 속도를 낼수록 나는 땅에 닿은 네 개의 바퀴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타고 공중을 달리는 듯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그 아찔한 속도에 겁쟁이 찌질한 나란 존재는 날아가버리고 내가 아닌 한층 고양된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와우.... 나 어때? 멋져? "
나는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질렀다.
"멋져 아주 멋져...."
친구가 흔쾌하게 응수해주었다.
십리포 해변 앞 주차장에서는 엄청 버벅거렸다. 주차는 아직 감도 잡지 못했다. 답답해하는 것도 같았다. 욱! 내지르고 싶은 성질을 참는 듯도 했다. 아무려나 나는 거기까지 운전해 간 게 어디냐고 그저 나 자신이 놀랍고 감탄스러워 화를 내도 욕을 해도 그래 그래 웃으며 받아들일 것 같았다. 뺨따귀를 때려도 무릎을 꿇려도 용서될 것만 같았다.
바닷가를 좀 거닐려고 차에서 내렸더니 의외로 바닷바람이 거칠고 차가웠다. 더구나 꽃피는 4월 봄날이라고 옷을 너무 얇게 입고 왔다. 가지가 밑동에서부터 사방팔방 구불구불하게 자라 수많은 뱀들이 서로 엉켜 있는 듯하여 해변의 괴수목이라 불리는 소사나무 군락지(박학다식한 친구가 알려줬음)가 장관인 십리포 해변도 언젠가 우리가 왔던 곳. 추억을 더듬으며 걷다가 바람에 쫓겨 다시 차로 돌아와 차 안에서 커피를 마셨다.
돌아오는 길에 해물칼국수로 배를 채우고 지난주 연수강사와 주차연습을 하기 위해 왔던 유원지의 넓은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갈 때보다 훨씬 좋아졌어. 운전이 훨씬 안정되고 부드러워..."
"난 잘 모르겠는데..."
"아니야 많이 달라졌어..."
"진짜? 정말? "
"그래.... 진짜... 정말..."
우리 외에도 주차 연습을 하는 듯 느릿느릿 움직이는 차들이 더러 보였다. 한쪽에서는 싸움을 하는 듯한 큰 소리가 오갔다.
친구의 저녁약속 때문에 연습은 아쉽게도 일찍 끝냈다. 돌아오는 길에 브레이크 밟는다는 것이 액셀을 밟아 간이 떨어지는 듯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앞으로 이런 순간 수도 없이 경험할 거야 "
"괜찮아 괜찮아...."
벌렁거리는 가슴이 가라앉지를 않아서 집 앞 주차는 친구에게 미련 없이 냉큼 맡겼다.
친구는 올 때처럼 신속하고 정확하게 주차라인을 벗어나 부드럽게 커브길을 돌아 멀어져 갔다. 오후 다섯 시가 넘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몸을 던졌다. 갑옷을 입고 전쟁터를 누비다가 겨우겨우 살아 무사히 귀환한 것처럼 탈진조차도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그 감격의 순간은 짧게 끝났다. 묵직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다시 또 나서야 할 전쟁터가 아닌가... 곧... 친구도 없이.,. 혼자...
오전 11시부터, 칼국수 먹고 잠깐 쉰한 시간 정도를 빼면 거의 다섯 시간을 운전한 것이다.
내가, 내가, 내가 말이다.
믿어져?
그러고 보니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다. 얼마나 몰두하고 긴장했으면.
다음날 출근길에 깜짝 놀랐다. 아파트 단지 안과 도로옆 학교 앞 곳곳에 꽃들이 활짝 활짝 피어 있었다. 나뭇가지도 어느새 연둣빛 새잎들로 오밀조밀 고왔다. 어제는 보지 못했는데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나 꽃들이 피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