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5시간씩 4일 10시간 운전연수를 받고 나서야 장류진 작가의 단편소설 (연수)가 생각났다.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 수록되어 있는 줄 알고 뒤죽박죽인 책장을 마구 뒤져 책을 찾아냈다. 차례를 살펴보았다.
잘 살겠습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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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페레 공항
내가 찾는 (연수)는 없었다. 그래도 제목들을 다시 천천히 읽고 들여다보았다. 8 개 수록 작품 중 내용이 어렴풋이 생각나는 작품이 겨우 네다섯 개...
씁쓸해하며 책장을 후루룩 넘겨본다. 밑줄 그은 곳이 거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은유나 묘사의 표현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집중적으로 밑줄이 그어진 부분이 있어서 펼쳐본다. 다름 아닌 (해설ㅡ인아영)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국문학이 오랫동안 수호해 왔던 내면의 진정성이나 비대한 자아가 없다. 깊은 우울과 서정이 있었던 자리에는 대신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기 인식, 신속하고 경쾌한 실천, 삶의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있다. 감정에 침잠해 있기보다는 가볍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이 개인들은 특별하게 빼어나지도 눈에 띄게 뒤처지지도 않는다. 이들은 대단한 환상을 품게 하는 커리어우먼이나 거대한 구조와 싸우는 정의로운 투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극단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인물도 아니다. 다만 노동과 일상의 경계를 명민하게 알고 일의 기쁨과 슬픔을 조화롭게 이해하는, 이 시대 가장 보통의 우리들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정확한 이해, 생존과 생활에 대한 탁월한 감각, 삶의 질과 행복을 지키는 센스를 겸비한 장류진 소설의 산뜻하고 담백한 개인이야말로 오늘날 한국문학의 새로운 얼굴이다
맞아 맞아...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처음 책을 읽은 그때도 그랬을 것이다. 작품을 다 읽고 나면 그 작품에 대한 뭔가가 머릿속에 희미하게 부유하고 있는데 말로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 답답하고 간지러울 때가 종종 있다. 이 젊은 작가의 작품들도 그랬다. 예전에 나를 끌어들이던 소설들과 다르다... 좀 가볍다고나 할까... 더 현실적이라고 할까...
그렇게 애매모호한 생각과 느낌들을 (작품해설)에서 읽고는 맞아 바로 이거야 하며 기뻐하면서 한편 절망한다.
이런 설명들이 내 머릿속에서 부유하고 있던 표현들이었다고 나는 해설을 읽으면서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연수)는 2020년 제11회 젊은 작가상수상작품집에 실려 있다. 처음 (연수)란 제목을 보고 사람 이름인 줄 알았다. (연수)란 이름은 영화배우도 있고 소설가도 있고 우리 회사직원도 있다. (연수)가 (운전연수)인 것을 알고 어쩐지 실망스러워 거의 마지막으로 대충 읽었던 거 같다. 그때는 운전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까.
내가 (운전연수)를 직접 받고 다시 읽어보니 운전연수를 받기 전에 다시 읽어보았다면 다소 도움이 되었을 거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예를 들어 (연수봉)이라는 것이 나온다. 뗐다 붙였다 하는 휴대용 보조브레이크라고 한다. 나는 이틀은 연수차로 이틀은 자차로 하겠다고 했다. 이 작품을 기억해 냈다면 연수차로 이틀 연수 후 아 어떡하죠 보조브레이크도 없이 운전하다가... 하며 강사에게 불안하게 물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강사는 소설 속 강사처럼 본인 연수차의 연수봉을 떼어와 자차에 설치했다.
ㅡ사이드미러의 각도는 지평선이 아래위를 정확히 반으로 가르게끔 조정. 절대 사이드미러에 시선을 오래 두지 말 것. 딱 일 초만 볼 것. 이 초까지는 허용. 힐끗, 봤을 때 뒤차의 차체가 지붕부터 바퀴까지 온전히 다 보인다면 충분한 거리가 확보되어 있다는 뜻. 그때 액셀을 세게 밟아 속도를 높이면서 핸들을 쓱 꺾어 들어가면 차선변경 끝.ㅡ
차선변경에 대한 설명이다. 소설에는 이렇게 나의 운전연수 강사 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설명도 있다.
소설 속 운전 연수 강사는 50대 여자다. 잘 나가는 회계사 커리어우먼 주인공 주연은 연수가 끝난 후 그녀가 유능한 강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게 되어 다섯 시간 추가 연수를 신청한다. 하지만 강사가 거절한다.
ㅡ주연 씨는 이제 곧잘 해. 더 받을 필요 없어. 충분히 혼자 할 수 있어
ㅡ아니에요 좀 더 하고 싶어요. 딱 다섯 시간만 더 하고 나면 그땐 진짜로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ㅡ언제까지 연수만 할 거예요? 결국은 혼자 다녀야 하는데...
이후 강사는 주연을 혼자 운전석에 두고 자기 차로 주연의 차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오면서 스피커폰으로 조언을 해 주었다. 이른바 원격연수.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바로 뒤에서 날 주시하고 있었고 그 사실에 의지해 어느새 꽤 긴 길을 혼자 달려왔다
그러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우측 사이드미러를 들여다봤다. 차들이 끝도 없이 줄지어 서 있었다. 지금 차선을 바꾸지 않으면 한참을 다른 길로 가야 한다. 그 길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었고 혼자 주행하기에는 당연히 무리였다. 현기증이 일었다. 핸들이 금세 축축해졌다.
ㅡ내가 뒤에서 막아줄 테니까 그때 오른쪽으로 차선 하나 옮겨요. 알겠지?
그녀가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옆 차선으로 파고들어 갔다. 신호 대기 중이던 차 여러 대가 동시에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그 차갑고 신경질적인 경적은 내가 아니라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었다. 스피커폰에서 그녀의 긴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ㅡ지금이야 지금!ㅡ
....
ㅡ고마워요 선생님
스피커폰에서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ㅡ계속 직진.... 그렇지ㅡ
ㅡ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ㅡ
운전연수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이 마지막은 긴박하고도 가슴 뭉클하고 뜨겁게 다가왔다. 서로 필요에 의해서 만난 일시적인 관계라 해도 이렇게 뭉클하고 뜨거운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소설이기에, 소설에서만 가능할까.
아무튼 나는 열 시간의 운전연수를 받았다. 이 연수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이틀이나 삼일 더 받는 게 좋을 듯하다는 것이 강사의 의견이면서 나의 생각이기도 했다. 나는 생각을 좀 더 해보고 연락드리겠다고 말해 놓았지만 다시 연수를 받더라도 이번 강사에게는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강사의 연수 방법이 썩 맘에 들지 않았다. 뭐랄까... 열심히 가르쳐 주려고는 했다. 쉬지 않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런데 내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주차에 대해 배울 때 그랬다. 시키는 대로 하면 주차가 됐다. 그러나 나는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이해를 하고 싶었다. 그래야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몇 번을 다시 묻다가 나중에는 미안해져서 그냥 이해하는 척해야 했다. 자꾸 나보고 머리가 너무 복잡하며 생각을 너무 한다고 했다. 운전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오른쪽 다리로 하는 거라 했다. 다 맞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길치 방향치 기계치인 내 이해력에 더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연수를 받더라도 다른 강사에게 받고 싶었다. 그러려면 또 알아봐야 하고... 또 내 기대와 다르면...
소설 (연수)와 너무 다른, 나의 (연수)...
잇몸이 붓고 입안이 헐었다. 피곤하고 긴장의 연속일 때면 나타나는 몸의 증상이다. 이렇게 늦은 나이에 이렇게 힘들어하면서 꼭 운전을 해야 하나... 회의가 몇 차례 왔다.
일단은 아들의 도움과 완전 운전 고수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다. 운전 고수 친구는 다행히 나를 잘 아는 오래되고 성격 좋은 친구여서 행여 운전으로 잘못될 관계는 절대 아니다. 그리고 친구는 몇 번 이웃의 운전연수를 해 준 경험도 있다. 모두들 잘 가르친다고 칭찬했다 한다. 남편은 몇 번 시도해 본 결과 도저히 안 되겠어서 재껴놓았다.
나, 과연, 언제쯤, 한쪽 팔을 창문틀에 놓고 한 손으로 유연하게 핸들을 돌리며 혼자, 여유 있게, 바람을 가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