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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Oct 20. 2023

아픈 남편 두고 일박이일 동창모임에 갔다 왔다

  10월 14일 토요일 남편은 몸살기가 조금 있다면서 지인들과의 약속된 주말 산행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대부도 펜션에서 하는 일박이일 중학교 동창모임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오후 5시에 같이 갈 동창들 몇 명과  가까운 전철역에서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몇 년 동안 동창모임 참석을 피했는데 이번에는 친밀한 몇몇 동창들과의 조금 남아 있는 의리로라도 참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날씨도 비가 올 듯 으슬으슬하고 해서 얼큰한 소고기뭇국을 끓였다. 정오가 가까워오는 늦은 아침으로 한 그릇을 다 비운 남편은  한숨 자겠다고 침실로 들어가고 나는 설거지를 하고 집안을 치우면서 동창모임에 갈 준비를 했다.  


   화장실에 들어간 남편이 한 참을 나오지 않았다.  남편은 일주일 전에도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심한 복통이 있었는데 약국의 약을 먹고 괜찮아졌다. 그 후 등산도 이틀이나 연이어 다녀오고  평소처럼 일주일에 하룬가 이틀 빼고 거의 술을 마셨다. 그래서 그 복통은 일시적인  현상이었거니 하고 잊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남편의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괜찮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복통을 호소하며 주저앉아 일어나지를 못했다. 입고 있던 티셔츠가  물에서 건져낸 것처럼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는데 턱과 손이 오한이 든 듯 파들파들 떨렸다. 곧장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갔고 병원진료가 끝난 시간이라 응급실로 들어갔다. 한 시간 정도 검사를 받고 나온 남편에게 의사가 뭐라더냐고 물었더니 기억이 안 난다고 말도 못 하고 집에 가자면서 떨기만 했다. 나는 응급실 의사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나의 요청으로 응급실을 나온 의사는 환자분에게 설명 다 해 드렸는데....라고 했고 나는 환자가 말을 잘 못해서 그러니 다시 한번 환자의 상태를 설명해 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


  평소에 술을 많이 드시지요?


  의사의 첫마디였다.


  씨티상으로 간 수치가 많이 올라가 있고 담낭 쪽에도 뭐가 조금 보이는데 응급실 씨티상으로 안 보이는 것이 있을 수 있으니 월요일에 내과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응급처치를 받고  주사를 맞고 약을 타서 집에 돌아온 남편은 샤워를 한 후 다시 누웠다.


   나 동창모임 어떡하지? 가지 말까? 가지 말아야겠다....


  그냥 가... 안 가고 집에 있다고 뭐 할 거나 있어?


  그건 그렇지만.... 간다고 해놨는데 안 가기도 그렇고....


  가고 싶다는 거네... 괜찮으니까 가...


  먹는 건 어떡하지? 뭘 해놓아야 하나.... 죽 먹는 게 좋을 텐데....


  결국 나는 동창회에 가기로 했다. 가기 전에 따뜻한 보릿물을 끓여 보온병에 넣어 머리맡에 놓아주었을 뿐이다. 가라고는 해도 진짜 가니까 좀 섭섭했으려나.... 그것까진 모르겠다. 30년을 넘게 산 부부라 해도  말이 별로 없는  성격이어서  속을 모르겠는 남편이니까... 나 또한 굳이 동창모임에 간 것은.... 약속도 약속이지만... 뭐랄까... 좀 겁이 났다고나 할까.... 큰 병이면 어떡할까... 아직은  드러누우면 안 되는데... 직장 다녀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는데... 온갖 고약한 상상들이 머리를 휘젓고 다녀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내가 동창모임에 가지 않고 옆에 있어서 나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온갖 고약한 상상들이 멈춰질 수만 있다면 그리 하겠으나 옆에 있다고 무슨 도움이 되랴 싶었다. 괜히 걱정하다가 작은 의견충돌로 짜증을 낼 수도 있으니까... 나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특히 이런 불안한 일 앞에서는 감정조절이 잘 안 되니까...


  안산 대부도의 펜션에 서울과 지방, 멀리 울산에서 올라온 동창 서른여 명이 모였다. 단체로 모여 노는 모습이야 다 거기서 거기. 남자동창들 몇은 연기를 마셔가며 고기를 굽고 여자 동창들은 쌈을 씻고 부침개를 부치고 상을 차린다. 또 몇 명은 손에 물 하나 묻히지 않고 끝자리를 일찌감치 차지하고 앉아 먹기 시작하고... 회장 부회장 총무 등 임원들과 동창회에 열성인 몇몇 동창들이 장만해 온 김치 오이지 각종 장아찌 마른반찬에 부침개에 된장찌개까지 푸짐한 상이 차려지고 떠들썩하게 술잔이 돌아간다. 가끔씩 생각난 듯 건배제의를 하고 다 함께 힘차게 건배를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는 끼리끼리 머리를 맞대고 심각한 얘기를 나누며 머리를 끄덕이거나 한 편에서는 음담패설에 가까운 우스운 얘기로 화르르 웃기도 하고.... 마지막은 모두 지하에 있는 노래방으로 옮겨가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뭐 그런.....


  아들놈이 죽을 사 왔네...  당신보다 낫구먼....


  중간에 남편의 톡이 왔다. 남편과 아들은 좀 걱정스러울 정도로 데면데면한 사이인데 이번에 그렇게나마 정을 나누었다니 내가 동창회에 참석한 것이 잘한 일이구나 싶었다. 아픈 남편을 두고 놀러 왔다는 죄책감과 합리화가 좀 지나친 건가??


 2년 전쯤에 스물몇 살 아들을 갑자기 잃은 동창이 이번에 참석했다. 겉으로 보기에 아들의 죽음에서 완전히 벗어나 옛날로 돌아간 듯 조금의 티도 나지 않았다.  표 나지 않는다고 하룻밤 어울려서 웃고 떠든다고 그 참척의  고통이 지워지랴....


  한 깐깐한 동창이 술김에 아들이 죽었는데 저렇게 술 먹고 노래 부르고 잘 논다고 지나가듯이 말을 한 모양이었다. 그 말이 어떻게 어떻게 해서 당사자 귀에까지 들어가서 당사자가 울었다는 얘기를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입을 삐죽이며  고자질하듯이 속살거렸다.  


  잊고 살아야지 별 수 있나... 모든 걸 무화시키며 도도하게 흐르는 시간의 잔인함 앞에서는 그 어떤 고통도 결국에는 무뎌지고 마는 것을.. 아니 어쩌면  아직  무뎌지지  않은 그 고통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이런 모임에 온  건지도 모르는데... 아무리 술김에라도 왜 그런 말을 했대... 그리고 그런 말을 또 당사자에게 전해줄 건 또 뭐야... 그런 말을 한 동창도 나쁘지만 전해준 동창이 더 나쁜 거 아닌가? 암튼 나이가 들어도 동창모임에 오면 아직 학생들인 것처럼 유치해진다니까.... 이런저런 뒷담화가 얼마나 무성한지...


  다음날은 대부 구봉도 해솔길을 산책하고 사진을 찍고  점심으로 바지락칼국수와 해물파전을  먹고 다음에 또 건강하게 만나자는 떠들썩한 작별인사 후 헤어졌다. 


  아들을 잃은 동창에게 술김에라도 못할 말을 한 동창은 오늘 아침 진심에서 우러난 사과의 말을 했다는 얘기를 나는 또 누군가에게서 전해 들었다.   사과를  하고 사과를 받아줌에 인색하지 않을 만큼 우린 나이를 잘 먹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오후 늦게 집에 돌아왔더니 남편은 핼쑥해 보였지만 더 이상 아프진 않다고 했다.


 월요일 오전 9시에 병원에 같이 갔다. 내과의는 응급실에서 진단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진단을 내렸다. 특히 담낭에 출혈은 있어 보이는데 담석은 보이지 않는 것 같고....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가 하면 간에도 염증이 보여서 엠알아이를 찍어 보기를 권했다. 일단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5일 치 약을 처방받고 수요일에 엠알아이를 찍기로 예약했다. 결과에 따라서 이 삼일 입원을 해서 집중치료를 받을 필요성이 있을 것도 같다는 말도 했다. 병원의 진료에선 항상  어디까지가 환자를 위한 진단이고  어디까지가 병원의 이윤을 위한 과잉진단인지는 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인듯하여 답답하다.   암튼 엠알아이를 찍어보기 전까지는 불안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았다.  하기 싫어도 자꾸자꾸 떠오르는 고약한 상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호들갑 떨지 말고 덤덤하게 받아들이자고, 이제 그럴 때라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신의 섭리라고....  고약한 상상이 현실이 되더라도 왜 하필 우리냐고 쓸데없이 대들지 말고 덤덤하게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받아들이자고....


  남편은 약을 챙겨서 출근했다. 동창모임에 다녀온 피로까지 쌓여서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고 기운이 없었다. 책도 읽히지 않고 글도 써지지 않았다. 모든 게 정지되었다. 자주 졸리고  졸리면 그대로 엎드려 잤다.  잠으로의 도피다.  고작 요만한 일로 말이다. 나는 얼마나 정신상태가 약해빠졌는가.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까지  그리 험한 일을 당해 보지 않아서 험한 일에 대한 면역기능이 완전 제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고통만을 허락하신다고 했지 아마...

 

  나는 그 어떤 고통도 감당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걸 아실 테니까.....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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