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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Mar 11. 2024

불량품들의 사계

길은 어디로 갔을까77

길은 어디로 갔을까



         

잠실에 일을 보러 갔다 온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

“나비 한 마리가 갑자기 떨더니 죽어서 골짜기에 버렸어요.”

성길씨가 긴 문장을 한 번에 말했다.

“아니 고양이를 버렸다고요?”

나는 상황파악이 안 됐다.

“아 아니. 밭에 묻어줬다고요.”

성길씨는 결과만 말했다. 그렇게 얼버무리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뭐라는 거여?”

나는 혼자서 정황을 따져보았다.

“옴매, 새끼가 죽었다고?”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텃밭으로 뛰어갔다. 삽질한 흔적은 없었다.

“여기가 아닌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흙을 파낸 흔적은 없었다.

“저기다 던졌구나.”

나는 텃밭 가의 계곡을 바라보았다. 물살이 거세게 흘러가고 있었다.

성길씨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사료 좀 먹어 보겠다고 눈칫밥 먹으며 드나들던 고양이를 그토록 구박하더니.

“아저씨! 그렇다고 계곡에 버리요?”

나는 따졌다.

“그럼 어떻게 해요?”

성길씨는 되물었다.

“묻어야 지라이, 그 불쌍헌 새끼를.”

“불쌍하긴 뭐?”

성길씨는 말끝을 흐렸다.

으이구. 내가 말을 말자. 따져봐야 책임회피만 할 뿐이다.

‘그 잘난 추리닝 새것 입으면 다요?’

나는 갑자기 잘 차려입은 그가 얄미워 속으로 말했다.     


고양이가 죽든 말든 사람이 추리닝 한 벌 사 입는 것과 무슨 관계람. 나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에 꼬투리를 잡고 쏴 붙였다. 계속 추궁을 하고 싶었다.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 거만하게 걷는 그의 걸음이 오늘은 보기 싫었다. 얄미웠다. 성길씨는 내 친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추리닝을 사 입고 저렇게 폼 잡고 돌아다닌다. 나는 그의 속내를 알고 있다. 그래서 평상시 같으면

“아따! 뭐 좋은 일 있나 보요.”하고 말을 붙였을 것을.

그러나 그가 고양이 새끼의 사후처리를 멋대로 한 것에 대한 분노가 솟았다.  

    

한동안 밥을 먹겠다고 알짱알짱 보일러실을 드나들던 삼색이 새끼가 눈에 밟혔다. 텃밭에서 작물 사이를 드나들던 모습도 생각나고. 곤충들 잡겠다고 뛰쳐 오르던 모습도 생각나고. 나는 그 어디에도 시선을 둘 수 없었다. 계곡 아래쪽으로는 정말 한동안 눈길도 주지 않았다.   

    

새끼를 잃은 어미 삼색이는 집을 나갔다. 기어이 길이 되고야 말았다. 아마 죽은 자식이 계곡에 버려진 것을 목도했을 수도 있다. 삼색이는 남은 자식 중 형아만 데리고 집을 나갔는데, 까불이는 예외였다. 어쩌면 까불이가 따라나서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어디에서든 잘 살겄지.’

나는 먼 곳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삼색이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다. 내가 찾아 나서야겠다는 생각도 버렸다. 어떻게 자식을 잃은 곳에서 살 것인가. 삼색이는 어디서 새끼를 무사히 낳았을까. 나는 처음으로 집을 나간 네발 달린 을 다시 찾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언제부턴가 두발 달린 것들도 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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