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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Mar 08. 2024

불량품들의 사계

어쩌면 우리는 다른 별에서 왔을 수도 76

어쩌면 우리는 다른 별에서 왔을 수도   



       

“그게 무슨 말이에요?”

“큰일 났어, LH에서 우리 내쫓고 아파트 짓는데.”

“설마! 여기는 세계문화유산인데요?”

“LH가 그런 것 어디 신경 쓰는 사람들이야, 지금 마을 어른들 난리 났어!”

전화기 너머 흥분한 목소리는 동굴 속 겨울 끝자락을 흔들어버렸다.

    

국토부에서 교산 하남 3기 신도시 발표를 했다. 이 집을 소개해 준 카페 사장님이 전화했다. 그녀는 나보다 더 놀라고 황당해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나에게 전화로 알려준 것이다.

정말로 LH가 이곳 산 밑까지 쳐들어올 줄이야.     

이곳은 아파트를 도저히 지을 수 없는 곳이다. 직접 눈으로 보면 알 수 있다. 남한산성은  2013년,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란 존 던의  시가 떠오른다.

“사람이든 누구든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다”     


우리는 영원히 이곳에서 살 것처럼 아파트를 짓는다. 땅을 갈아엎고 산을 깎는다. 서로를 파먹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우리 설 자리를 돈을 들여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귀 가까이서 들리던 바람의 자국을 볼 수 없고, 나무에 세 살던 새집이 사라지고, 논에서 두꺼비 우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나도 이웃들도 새들도 마을을 떠나겠지만 내가 살았던 이곳 흔적은 바람의 갈피에 남을 것이다. 기억이 스쳐 가도 그뿐인 바람만은 알 텐데.  

    

벌써 마을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얼굴이 환해지고, 나이 든 어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할까! 그래도 어른들은 설마설마한다. 주인 성길씨 얼굴도 샛노래졌다. 풀치는 이 사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나도 더는 돌아갈 곳 없는 길손처럼 떠돌지 말자고 집도 고치고 맘 잡았는데......

이제 이곳에서도 갈라 치기가 시작되었다.

수십 년 전에 이사와 사는 사람들, 기존 집을 허물고 자기 취향에 맞추어 집을 지어 사는 토박이들.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나이 드신 이웃과 지겨워 떠나고 싶은 젊은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게 됐다.  

    

LH는  아파트가 모래주머니가 같아 싫다는 사람들을 위해 이곳을 재정비해서 그대로 살게 하면 된다. 그런데 도저히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이곳에 제2의 강남을 만들어준다고 온갖 구실을 만들어 거리도 풍경도 시장도 사람도 낯선 곳으로 굳이 이주시키려는지 모르겠다. 나이 들수록 익숙한 곳에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마을이 통째로 없어지고 쫓겨 갔다는 것을 뉴스로만 듣다가 나도 직접 당하니, 불안한 마음에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이 다.      

 

사업가 머스크는 달과 화성에 지구인들을 이주시킨다고 했다. 모든 것은 인간의 상상에서 실현됐으니까. 충분 가능하다. 요즈음 드는 생각이다. 화성에 주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좀 다소 엉뚱한 생각일 줄 모르나. LH라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우리 별을 파헤쳐 놓고 더는 못 살겠다고 이곳과 이별하고, 다른 별로 이사 가겠다고 한다.

지구 껍질을 쓱싹쓱싹 갉아먹는 지구인은 어느 별까지 습격할까! 궁금하다.

어쩌면 우리는 수많은 행성 하나에서 살다가 그 별이 망가져 지구라는 별로 이사 왔을 수도 있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동물과 인간과 어울려 사는 방법은 없을까.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하남 감일동에 아파트를 짓는다고 집들이 하나둘 사라질 때다. 갑자기 개와 고양이들이 떠돌고 있었다.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처음에는 개들이 무리 지어 다닌 것이 의아했다. 나중에 알았다. 주인이 이사 가면서 버리고 간 개라는 것을. 그들은 서서히 들개가 되고 길고양이가 되어갔다. 자기들이 살았던 집 근처를 벗어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다 공사장에서 던진 돌멩이를 피해 돌아다녔다. 나는 먹을 것을 차에 싣고 다니다가 개들을 보면 멀리서 던져주었다. 길들은 점점 사라져 갔다.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주인의 손길을 기억하면서 돌 틈에서, 어느 그늘진 구석에서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이 땅에서 저쪽으건너 가지 못하고  죽어 떠도는 세상 모든 것들을 위해 나는 '사자의 서'  경전이도 읽어주고 싶다.

고골 카페 여사장님 전화를 받은 후 버려질 개와 고양이와 베어질 나무들이 떠오르고, 나는 또 얼마저 별들과 멀어질까. 새벽 강가에 안개가 피어오른다. 갈대들이 물속으뛰어든다. 강물따라 흘러간다.

    

태초에 이 땅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무자비하게 자연 속으로 파고드는 끝이 없는 인간의 욕심을 어떻게 다 채우고 산다는 말인가. 이 땅으로 오기 전 ‘한 방울 물’이었던  우리는 어차피  물방울로 다시 돌아가고 말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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