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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Mar 03.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말을 갈아탄 어묵집  75

말을 갈아탄 어묵집



         

깜박 잊고 충전을 시키지 않아 핸드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했다. 원래 아침을 안 먹는데 점심까지 놓쳤다. 12시 반 버스였다. 버스는 제시간에 탔다. 부여 터미널에 도착했다. 부여의 지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겨울 끝이라지만 날씨는 고약했다. 도착 한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배터리도 배고프고 나도 배가 고팠다. 터미널 안 슈퍼에서 천 원 주고 급히 충전을 시켰다. 주변을 돌다 보니 터미널 뒤쪽에 어묵집이 있었다.     


두 평 남짓 될까. 추위를 막기 위해 늘어뜨린 투명비닐을 제치고 미닫이문을 열었다. 문이 덜컹거렸다. 아줌마라고 하기는 젊고 할매라고 하기에 애매한 주인이 일어났다. 아줌마, 주인장, 사장님 호칭을 뭘로 할까. 나는 그녀를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사장님 순대하고 오뎅주세요.”

주인은 미닫이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순대와 간을 꺼내어 썰었다.  

TV 옆에 반들반들한 냄비, 그 아래 전자레인지, 정수기,  파란 바케스, 종이컵들이 꼭 껴안고 있다. 하나뿐인 탁자에는 아줌마가 먹다 남은 양촌리 믹스 커피, 양념간장, 깨소금, 앞 접시 몇 개가 줄 맞추고 있다.      


지인과 통화는 아직 못했다. 조심성 없는 나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서성거렸다. 어묵과 순대를 들고 오던 사장님이 전기선이 깔린 의자를 가리키며 안쪽으로 앉으라고 나에게 손짓을 했다. 늘어진 스웨터랑 둘이 나란히 앉아 TV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90년대 출생 TV를 봤다.

“아따, 옛날 티브인데 요새 배우들이 나오네요?”

나는 얼굴을 돌려 주인에게 말을 붙였다. 주인은 내 말을 못 알아듣는 표정이었다. 주인이 TV 속에 못된 며느리를 죽이니 살리니 흉을 보고 있다. 나도 저런 며느리는 당장 쫓아내야 한다고 주인 입을 거들었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간장도 안 찍고 어묵과 순대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계란도 먹고 싶었다.

 “계란 얼마예요?”

두우... 세 개에 천 원.”

주인이 더듬거리며 말을 갈아타자 나는 저 말을 못 들은 척 얼른 TV로 눈을 돌렸다. 여행객 같아 두 개라고 말하려고 하다가 순간 세 개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밖으로 나갔다. 말없이 종이컵에 어묵 국물을 퍼다 탁자 위로 쓱 밀었다. 그녀의 손은 젖은 낙엽 같았다.

드라마가 끝나자 그녀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다. 핸드폰 배터리는 드디어 나갔다. 계란 세 개를 싸서 일어났다.

“사장님, 여기 찜질방이 어디쯤 있으까요?”

“금방이어유, 밤이라 택실 타야 할 것 같아유”   

  

부여 밤하늘 둥근달이 뒷골목을 환하게 비추었다. 별도 총총했다. 터미널 앞에 줄 서 있는 택시를 타고 찜질방을 찾아갔다. 찜질방 아줌마들이 떠들어 잠이 오지 않고, 계란 두우 세 개’ 어묵집 사장님 말이 입속을 뱅뱅 맴돌았다.


내가 송파 방이동에서 카페 할 때다. 신상품이 나오면 메뉴판에 상품과 아직 가격이 적혀있지 않았다. 메뉴판에 가격을 기재할 때까지 사업하는 사람한테는 좀 더 받고 직장인들한테는 덜 받았었다. 그러다가 속으로 얼마 받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손님이 갑자기 가격을 물으면 말을 더듬거려 민망한 일이 있었다.   

 

지인과는  12시 넘어서야 통화가 됐다. 내 전화가 스팸으로 돼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어묵집은 지인의 단골집이었다. 그 후로 부여 가면 어묵집을 꼭 들렸다.

지금은 터미널 뒤 개발 때문에 어묵집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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