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량품들의 사계 Mar 02.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별게 중독 74

별 게 중독   



          

까악 까악 까마귀 한 마리가 호두나무 가지에 앉아 울고 있다. 차 문, 손잡이에 손가락이 짝 달라붙는다. 이 바람 부는 날 나는 왜 풀치가 생각날까? 까마귀 우는 소리가 술에 취해 풀치가 울부짖는 것처럼 들린다.

다른 점이 있다면 까마귀는 목에서 나오는 소리, 풀치는 아랫배에서 힘을 주어 목구멍을 긁어대며 나오는 소리다. 어쩔 땐 풀치는 득음을 한 것 같다. 어쩌면 풀치는 세상 속에서 득도했는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풀치의 독특한 목소리에 중독된 것 같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본다. 하다 하다 할 게 없어 별 게 다 중독되네.

그렇게 스트레스와 웃음을 줬던 풀치가 보이지 않은 지 꽤 됐다.

마약중독, 알코올 중독, 게임 중독,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인간이 인간에게 중독되는 것이 제일 무섭다. 그 중독이란 나에게는 곧 정이고, 사는 일 그 자체가 중독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혹은 살만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산다는 일의 연속을 중단할 수 없어 그냥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뱃속 저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지만, 입 밖으로 뱉을 수 없는 소리, 그것이 어떤 말보다 입안을 찌르는 신음이라는 것을 슬프게도 알아버렸다.    

  

어쩌면 풀치는 영화나 드라마처럼 세상을 비켜서 살고 싶어 산밑으로 들어와 사는 사내가 아닐까. 아니면 공부를 많이 해 머리가 살짝 갔을까. 그래서 날마다 온몸으로 신음 소리를 내다 까마귀가 되어 훨훨 날아가 버린 것은 아닐까.    

 

어렸을 때 고향에 춘섭이라는 사내가 있었다. 마르고 눈이 크고 머리를 빡빡 밀고 다녔다. 그는 고시 공부를 하다 머리가 돌았다고 했다. 머리를 밀고 다녀 고시 공부를 한 사람처럼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스님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춘섭이는 어른들 심부름과 물지게로 물을 길어다 주고 돈을 몇 푼 받은 것 같았다. 애들은 그를 뒤따라 가면서 ‘춘섭아’ 불렀다. 그는 돌아서서 말없이 그냥 웃었다. 나는 애들이 집으로 가고 난 뒤에도 그를 따라다니다가 집으로 오곤 했다. 집으로 올 때면 슬펐다. 그게 바닷가로 떨어지는 노을 때문인지, 이름을 불러도 야단치지 않고 웃기만 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애들한테 ‘춘섭이’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말리지 못하는 것을 후회했다. 춘섭이가 정말로 고시 공부를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씩 웃는 춘섭 씨 얼굴이 선명하게 살아난다.   

   

술고래 풀치와 춘섭과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풀치도 마을 사람들이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 그나마 풀치는 컨테이너에서 웅크리고 있지 않고 풀씨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녀 다행이었다. 풀치가 술 취해 나에게 주정을 부릴 때마다 그에게 소리를 질렀었다. 그가 뒤돌아서서 비척거리고 갈 때면 곧바로 그에게 소리 지른 것을 후회했다.  

만약 풀치가 돈도 있고 배운 사람이라면 내가 혹시 맘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나의 이중성에 혼자 쓴웃음을 짓는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내가 뒤따라가던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사내 뒤로 아득히 해가 지고 있다.  

한없이 투명하고 가벼워 두렵기까지 한 인간에 대한 삶의 중독이 무섭다.

작가의 이전글 불량품들의 사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