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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Mar 01. 2024

불량품들의 사계

이승을 건너는 눈송이 73

이승을 건너는 눈송이



                                  

폭설이다. 눈송이들이 이승을 건너고 있다. 집집의 문이 흔들린다. 참새 발자국 하나 없는 순한 빛깔 위, 적설의 깊이를 모르는 바람만 슬쩍 걸어간다. 처마 밑에서 손을 내민다. 어쩐지 올해 마지막 눈일 것만 같다. 기상예보가 이번에는 적중했다.     


섬마을 바닷가 포구에 묶여 좌우로 흔들리는 돛대에서 갈매기들이 졸고 있다. 눈송이들이 바다로 뛰어든다. 일순 숨이 멈추고 마을과 마을이 겹쳐진다.

수도계량기 동파됐다는 마을 어른 전화받고 읍내 김 씨 오토바이가 시동을 건다. 검둥이는 따라나설 채비를 한다. 우체국 교환대에 전화를 걸어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밤마실 놀러 왔다가 갇힌 옆집 친구와 한 이불속에서 고구마를 깎아 먹고 놀다가 잠이 든다. 섬마을 겨울은 멀리서 보면 하얗고 가까이서 보면 어둡지만 따뜻하다.      

그 옛날 여기저기 떠돌면서 놀고 있을 때 시골집에 내려갔었다. 오래전 혼자가 된 엄마를 부르면서 나는 현관으로 들어갔다.

누군가 두고 간 불어 터진 미역국이 마루를 덮치기 직전이었다. 엄마는 현관으로 다니기 불편해 부엌문으로 드나들어서 미역국을 미처 보지 못했다. 친구 지현이 올케가 갖다 놓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미역이 불어나 집을 칭칭 감아버렸으면 어쩔 뻔했을까. 난 밤새 엄마 옆에서 잠 못 들고 엄마는 이불을 끌어다 나를 덮어주느라 잠 못 들고 있었다. 그날 밤, 새들은 탱자나무 가시에 찔려도 비명조차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저녁 뉴스를 보다가 어렸을 때 섬마을과 저 쪽으로 넘어 간 엄마가 생각났.

처마 밑에서 내민 손바닥을 가만히 쥐어본다. 한밤중 눈송이들이 사람과 나무사이를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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