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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Feb 24.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봉긋  솟는 보름달 72

봉긋  솟는 보름달   

  


                      

산에 다녀왔다. 배가 고파 이른 저녁을 먹었다. 리모컨을 들고 가수 송가인이 나오는 TV 채널을 찾고 있었다. 그때 마당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겨울밤 이 외진 산 밑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윽고 문 두드리는 소리.

“누구요?”

나는 조금은 무서워 문 쪽을 경계했다.

“옆집이여.”

“옆집?”

내 옆집은 주인집인디?

누군가 해서 문을 열었다. 주인집 할머니가 서 계셨다. 구순이 다가오는데 할머니는 정정하다.

할머니는 내 집 오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들 성길 씨 때문에 자주 오지 못한다. 시청에서 운영하는 노인학교에 다니는 할머니는, 여름이면 더위를 먹을까 겨울에는 넘어질까 걱정이 많은 아들 때문에 바깥출입을 마음껏 못 한다. 그러니 담도 없는 마당 하나를 두고 옆집에 살지만 얼굴을 볼 기회가 많지 않은데 오늘은 용케 아들 눈을 피해 밖에 나왔다.


어쩌다가 할머니가 아들 몰래 우리 집에 오면 아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얼른 모시고 간다. 꼭 그래야만 하나? 자기 엄마가 뭐 그리 큰 중병에라도 걸렸다고 저러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껏 성길 씨의 행태로 보아 조금은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는 주변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말도 별로 없다. 심하게 방어적이랄까. 그 속을 다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기 엄마가 누군가에게 말실수라도 할까 봐 극도로 신경을 썼다.

나도 엄마 살아계셨을 때 저런 행동을 했었다. 친척들 모였을 때 엄마가 말을 좀 하려고 들면 옆구리를 찌르며 말실수하지 말라고 단속하곤 했었다. 엄마는 주눅이 들어 무슨 말을 하려면 내 눈치를 먼저 살피곤 했다. 지금 살아계시면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라고 하고 싶다.

아무튼 나는 오랜만에 얼굴을 뵙는 할머니가 반가웠다.


“아이고 무슨 일이시라요? 작년 11월 김장할 때 뵙고 처음이네요.”

“응 밥 먹었는가?”

“방금요.”

“좀 있다 아들 오면 삼겹살 구워 먹게.”

“정말요? 우와! 일단 가서 계셔요. 추은께”     

나는 할머니가 무척이나 고마워서 일단 대답했다. 처음에는 나를 경계했었다. 혹시 내가 아들  꼬셔서 땅문서라도 챙길까 봐 그런 것 같았다. 그때와는 달리 세든 여자를 살뜰히 챙기고 밥 한 숟가락이라도 나누려고 한다.

그런데 이 시간에 나랑 밥 먹자는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무래도 사람 정이 그리워 밤에 저렇게 사람을 찾아 건너온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TV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데 또 인기척이 들렸다.

“누구요?”

“......”

“설마 할머니?”     

 내가 사는 곳은 대문도 담도 울타리도 없는 집이다. 누구든지 마당으로 들어올 수 있고 사생활이 노출되기 쉽다. 나는 일단 밤중이고 산 밑이라 무서워서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이 집으로 이사 와서 들인 습관이다. 밤중에 나갈 때는 우선 처마 밑에 있는 엘이디 전등을 켜고 5초를 기다린다. 그런 연후에야 현관문을 연다. 혹시 밖에 있는 사람에게 경각심을 주고 집안에 사람이 있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다.

오늘처럼 노크 소리가 들려와도 아무 대답을 안 할 때도 있다. 집안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면 돌아서 가겠지? 가끔 호두나무 나뭇가지 그림자가 주방 벽에 비칠 때는 얼마나 으스스 하던지 가슴이 다 철렁해질 때가 있다.      

“누구세요?”

나는 다시 한번 외친다.

“옆집이여.”

주인집 할머니 목소리였다. 나는 안심이었다.

“보름달 떴어! 달 같이 보게.

할머니는 하늘을 가리켰다. 나는 마당으로 나갔다. 지붕 뒤쪽으로 강호동 머리통보다 더 큰 달덩이가 떠 있었다. 슈퍼 문이었다. 할머니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저 달을 보여주기 위해 이 밤중에 나에게 왔다.

“내일 아침에 밥 먹으러 와.”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가슴을 후벼 팠다.

“고마워요.”

나는 잇몸이 다 보이도록 활짝 웃었다.  

“할머니! 짱”

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할머니도 웃고 나도 웃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쩐 일로? 이렇게 돌아댕기다가 또 아들한테 잡혀가는 거 아닌가 모르겄네”

나는 농담 섞어 말했다.

“응, 갸 일하러 가서 아직 안 왔어.”

할머니는 걱정하지 말라면서도 마당 입구를 쳐다봤다.

이렇게 잠깐의 바깥바람을 좋아하실 줄이야. 사람이 뭐라고. 이렇게 다니고 싶을 때 다니고 만나고 싶을 때 만나면 되는 것을.

성길 씨는 자기 엄마가 치매라 하지만 내가 볼 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연세가 이제 구십 다 되셨지만 어쩔 수 없이 깜박거리시는 거지 내가 보기에는 절대 아니다.   

   

엄마 살아계셨을 때

“오늘 안 올래? 밥 먹으러 들르면 좋 것 구만, 바쁘면......”

특히 보름날이면 꼭 오곡밥을 먹으러 집에 들르라고 하셨다.

밥 먹으러. 그 소리가 밤하늘에 별처럼 촘촘히 박힌다.

    

할머니가 집에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 난 후 나는 호두나무 아래서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뒷방 할매 집 문으로 눈이 갔다. 이래저래 다 걸린다. 지붕 위에 떠 있는 보름달을 쳐다보았다. 콧구멍이 시큰거린다.

“엄마! 엄마는 그쪽에서 오곡밥이랑 나물이랑 먹었는가?”

나는 하늘에 묻는다. 소쩍새 소리가 멀리서 건너온다.     

 

그 시절 오봉 상보다 큰 보름달이 뜨면 우리는 집마다 마당에 차려 놓은 오곡밥과 나물을 걷어왔었다. 마을에서 외떨어져 있는 저수지 옆 순바우네 집에 걷어 온 음식을 갖다 주었다. 남은 음식은 친구 집에 모여 고추장 넣고 비벼 먹었었다.  

    

‘달 같이 보자’는 말을 세상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어렸을 적 시골에서 봤던 보름달 그와 똑같이 지금 머리 위를 비추는 보름달.

오늘 밤 저 달이 주인 할머니 방안에까지 따라 들어가 주무시고 있는 젖가슴 사이에서 봉긋 솟았으면 참말로 좋겠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여자와 백수를 바라보는 여자가 보름달을 사이에 두고 사람 냄새를 나눈다. 오직 보름달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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