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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Feb 23. 2024

불량품들의 사계

새가 된 계량기 71

새가 된 계량기



         

나는 온풍기를 최고로 약하게 켰다.

“계량기 날아가네, 날아가!”

성길씨 목소리가 마당을 흔들었다.    

 

텃밭 끝에 서서 계곡 물소리를 듣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저녁 뉴스를 보기 위해 티비를 켰다. 넥타이를 반듯하게 맨 남자 아나운서가 일기예보를 전하고 있다. 휴대폰에 대설주의보 안내가 떴다. 내일 새벽부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고 한다.

‘가만있어 봐라, 찜질방으로 가야 허나, 어라, 찜질방도 만원이 넘네?’     

난로에 들어가는 석유 한 말에 2만 원이다. 내가 아껴 쓰면 2만 원으로 일주일은 거뜬히 지낼 수 있다. 차 키를 내려놓았다.


2월은 예상보다 추웠다. 그래 봐야 한겨울만 하겠나 싶었는데. 세상에! 난방 텐트 안에서 패딩 잠바를 껴입고 잤는데도 입이 돌아가는 줄 알았다. 추위의 강펀치에 돌아가 버린 것은 머리통이었다. 마루 온도계가 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삼발이 밀차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성길씨가 비닐하우스 연탄창고에서 보일러실로 연탄을 나르고 있다.

“성길씨는 어젯밤 따뜻하게 잤겄재.”

나는 괜히 신경질이 났다. 얼마나 추웠는지 말해주고 싶어 나는 밖으로 나갔다. 그는 자기 집 마당만 눈을 쓸어놨다. 내 집 마당과는 자기 손으로 한 뼘만 뻗으면 는데. 하기야 나는 눈을  쓸어버리는 것을 싫어하니까 그래도 그렇지, 저 밴댕이’ 내 속을 알 턱없는 그가 말을 건다. 

“추운데 어떻게 잤어요?”

“말도 마세요, 집안 온도가 5도에 화장실은 아예 얼어 버립디다.”

나는 잘 들으라고 성질을 섞어 말했다.

“곧 녹겠죠, 뭐.”

성길씨는 영혼 없이 대답했다. 아, 깊은 데서 욱하며 치고 올라오는 국수발들.   

  

작년 봄 이사 와서 연탄보일러를 썼다. 그러나 도저히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번개탄 피워 연탄불 살릴 때 불이 죽었나 살았나 수없이 들여다보고, 집게를 연탄구멍에 정확하게 맞추고 꺼내는 일부터, 연탄재를 꺼내다가 떨어지면 그것 치워야지, 시간 잘 못 맞추면 새벽에 나와서 갈아야 하지, 밖에서 술잔을 들다가도 멈추고 연탄 갈러 날아와야지. 이 정성이면 고시에도 붙겠다. 하는 수없이 대대적인 난방공사를 벌였다. 며칠 동안 날 밤을 새우면서 인터넷을 파서 고민 끝에 중고 가스보일러를 들였다. 물론 사비였다. 내 돈이 50만 원이나 들어갔다.      

가스보일러로 교체하고 나니 몸은 편안해졌다. 그러나 LPG 가스값이 한 통에 오만 원이다. 그런데 방 전체를 따듯하게 하려면 추울 때는 일주일이면 가스가 다 떨어졌다. 그것도 아침저녁으로만 켜도 그렇다. 그래서 비용 절감으로 8도로 고정시켰다. 어느 정도 지내자 나만의 노하우가 생겼다. 절약하면서 집을 따뜻하게 하려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주방 가스레인지를 켠다. 그다음 석유난로를 켠다. 방 안 온도가 어느 정도 올라가면 주방 가스레인지 불을 끈다. 한참 있다가 석유 난롯불도 끄고 가스레인지 불을 약하게 켜 놓는다. 이렇게 하면 집안에 훈훈한 온기가 돈다. 비용이 무서워 가스보일러는 온수 사용할 때만 켠다. 한낮에는 자연 햇빛으로 난방을 해결한다. 대신 나는 양말, 내의, 티, 조끼, 목도리, 패딩 잠바까지 북방에서 온 손님처럼 몇 겹이나 껴입고 앉아있다. 추위는 가난뱅이에게 강도만큼이나 혹독한 손님이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난방에 철저해진다. 우선 주방 가스레인지를 켠다. 무조건이다. 나는 이것을 하나의 놀이로 생각했다.

최대한 난방비를 절약하려고 이용하는 수단인데 이만한 게 없다. 남들은 가스라도 누출되면 어떡하려고 그러냐고 걱정한다. 그러나 그건 걱정일 뿐. 그래서 집에서는 술을 적당히 마신다.

혹시 켜놓고 잠들었다가 통닭구이가 될지 몰라. 잠들기 전 가스레인지 불과 석유 난롯불을 확인한다.

이렇게 애를 쓰면서 생존을 무시하고 아끼고 아꼈는데 하필 더럽게 추운 날 가스 한 통이 떨어졌다. 하기야 가스 한 통을 시켜 6개월 썼으면 오래 쓴 거다. 정말 놀란 것은 1 월 쓴 전기세였다.

이런 핵폭탄을 맞게 될 줄이야.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그가 마당에서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가 보여준 전기계산서 종이 떼기를 보고 뒤로 자빠질 뻔했다. 전기세가 무려 12만 원이나 나왔다. 정확히 말하면 119600원이었다. 온풍기를 켜 둔 것이 화근이 되었다. 지금껏 혼자 살면서 최고로 많은 전기세였다

“사장님! 나도 아낀다고 아끼는 사람인디, 지금까지 이렇게 전기세로 폭탄 맞은 적이 없었어요.”

내 목소리는 밀가루 반죽을 방망이로 눌러 놓듯 납작하게 새어 나왔다.

“나도 지금까지 전기세가 이렇게 나온 적이 없었어요. 그건 그렇고요. 에~.”    

  

한 번은 샤워하려고 욕실에 온풍기와 온수 보일러를 분명히 켰다. 갑자기 찬물이 나왔다. ‘왜 찬물이 나오냐’ 온몸에 거품을 수건으로 대충 닦고, 입술을 떨며 머리에 수건을 감고 옷을 주워 입고 나가 물었다. 성길 씨 말은 차단기가 내려갔다나 뭐라나. 뭘 제대로 해 놓고 저런 말을 하든지. 성길 씨는 별생각 없다는 듯 대답했다.      


내가 사는 집은 주인집에 딸린 별채라서 전기세가 분리되지 않고 합산되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매달 뒷방 할매랑 이렇게 각자의 집 계량기를 확인하고 전기요금을 계산해야 한다. 참말로 갑갑한 일이다.

     

“젠장! 이렇게 되면 내가 을이재?”

갑-을 관계에서 내가 ‘을’이라는 위치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그의 손에 들려져 있는 종이를 보며 내가 말했다

“이거 정확하게 계산한 거는 맞지요?”

나는 밥을 삼키고 목소리를 살짝 죽여 물었다.

“여기 있잖아요, 여기.”

그는 수기로 작성한 전기요금 종이를 출입문 안쪽에 서 있는 내게 바짝 들이밀었다.

나는 미심쩍었지만, 그가 주인이니 더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다음에 또 많이 나오면 누진세 혼자 다 물어야 합니다.”

“그래, 저 사람의 인성을 믿어보자. 믿어.”

나는 지금껏 전기 요금고지서를 한 번도 본 적 없다. 전기세와 수도세를 달라면 달라는 대로 줬다. 전기세 때문에 성길씨 와 뒷방 할매랑 자주 다투는 것을 봤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 나는 주라는 대로 줬다. 내가 고지서를 안 봤으니 믿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안 믿기도 그렇고. 사람에게서 상처받아 이 산 밑까지 들어왔는데 여기에서까지 사람을 못 믿으면 안 되지. 나는 열받은 표정을 숨기며 종이를 받아 들었다.

그는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쌩 돌아서 집으로 갔다.


“그래. 내가 새끼가 있냐. 부모가 있냐. 내가 비록 인구절벽에 일조해 국가에 충성은 못 했지만, 전기세와 석유값 아끼다가 전사했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뉴스에 ‘남한산성 밑 혼자 사는 여인 동사’라고 나올라치면 무슨 창피냐?’

나는 마음을 다잡았지만. 이놈의 열 통은 식을 줄 몰랐다.

“그래. 그래도 내가 누구냐. 얼어 죽을란다. 얼어 죽어.”

나는 입술을 깨물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따 춥네. 이렇게까지 궁색을 떠는 내가 추접허다.”     

나는 온풍기를 1단으로 켰다. 십 초 지났을까.

“계량기 날아가네” 성길씨 목소리였다.

 ‘염병헌다’ 나는 열이 뻗쳐 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멈칫하다 말했다.

“지나가다 우연히 계량기를 봤어요”

‘이 깜깜한 밤에. 에라, 이 모기 눈깔보다 못한 성길아’

계량기는 발뒤꿈치를 들여야 볼 수 있고 일부러 가서 봐야 한다. 우연히 봤다는데 어쩔 수 없어 온풍기를 주방에 처박아 놨다. 우리 집 계량기는 새다.

나는 성길씨를 떠올렸다. 그의 잔소리가 싫기도 했고 그보다도 전기세 그것이 더 무서웠다. 내가 진즉 이렇게 절약하고 살았으면.

‘아니여. 나는 돈이 있으면 옆으로 새드라.’

혼자 구시렁거렸다.

‘그래도 그것 아낀다고 뭐 되디? 삘딩 살 것도 아니면서.’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말했다. 감기 걸려 병원 다니는 것보다 낫지 않겄냐? 나는 할 수 없이 보일러를 소심하게 삥아리 눈물만큼 켰다.    

명희가 해남에 얼음새꽃 피었다고 소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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