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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Jun 04. 2024

불량품들의 사계

거미 똥구멍에서 나온 말은 쓸 때가 없다 105

거미 똥구멍에서 나온 말은 쓸 때가 없다


                

지난겨울이었다. 오래전에 알던 김시인과 일을 끝내고 소주 한잔하러 갔다. 그는 다리가 길다. 그의 잘생긴 얼굴을 보려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할 정도다.

그 날밤 칼바람은 아팠다. 잠깐 걸었는데도 얼마나 추운지 회칼로 살을 얇게 저미는 것 같았다. (물론 칼로 살을 에는 경험은 없지만)

추워도 너무 추워 우리는 주위를 둘러 보도 않고 “추울 때는 순댓국이 최고여” 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순댓국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집에 갈 일이 걱정이었다. 비록 구멍 숭숭 난 집이지만, 바람이 바람을 막는 마술을 부리는 집으로 가야 한다. 전철과 버스를 수차례 갈아타야 하기에 집에 가는 길이 바다를 건너는 거처럼 아득했다. 김시인에게는 내색하지 않았다.  

   

김시인은 순댓국과 순대 볶음을 시켰다. 언제 나왔는지 소주병은 테이블에 앉아 있다. 평소에는 말 없는 김시인이 취기가 오르자 말을 꺼냈다.

“내 주변에 안빈낙도하는 사람 중 가장 가까이 사는 사람이 누님이에요.”

“뭔 소리예요! 나 실은 돈 겁나게 좋아해! 돈이 나를 밀어내서 그게 쫌 문제지. 나도 한때는  돈을 좋아해 머리가 돌았었지. 내 땅 좀 있으먼 유기견 유기묘 키우고 싶은디. 돈이란 놈은 어쩌서 나를 저리도 안 좋아 헐까. 내가 저랑 원수 진일도 없는디, 저리도 나를 멀리 헐까. 내가 저하고 영원히 살자고 헌 것도 아니고. 왔다리 갔다리 지 맘대로 허먼서, 허기야 내가 돈을 좀 따라다녔었지.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을 집요허게 따라다니면 질려버리듯 돈도 그랬을 것 같기는 해. 그래도 누구는 돈복이 많아서 그렇게 돈이 저절로 따라다니고 그런다는디, 그나마 나는 끝까지 갈 인복은 있는 것 같고. 내게 돈이 안 따라서 허는 핑계가 아니라, 살다 보니 인복이 최고더라고. 그래서 돈이란 녀석을 싸랑 안 허고 보기만 헐라고.”

김시인은 술을 따라 마셨다. 식당 안이 조용해 나는 말을 멈췄다. 주인과 우리밖에 없었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내 말 듣고 있어요?”

고개만 끄덕이는 그에게 나는 거미 똥구멍에서 거미줄을 뽑았다.

“김시인, 돈도 다 알드라, 지가 아무리 세상을 쪼물딱 거리지만 묏등 속에서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그래서 돈이 지상에서 설치는 것이여. 땅속에 누워있을 때는 노잣돈을 쥐고라도 있지, 안 그래? 근디 하늘로 영혼이 올라갔을 때는 어쩔 것이여. 입던 수의도 벗고 갈 판인디. 장례식장 가봐 봐, 돈을 머헐라고 남겨놓아서 가족들끼리 맥살잡고 그러면 쓰겄어? 돈도 저를 두고 싸우는 꼴을 보기 싫어한단께. 돈도 지나치다 싶으면 도망치더라니까. 사람들이 너무 귀허게 받든 것도 문제고. 사람들은 옷도 밥도 사랑도 술도 질려허면서 왜 돈은 질려 허지 안 허까. 허기야, 이렇게 말 허고 있는 나도 그렇게 ‘돈 놈’ 허고 떨어져 살겄다고 해놓고도 늦가을 길가에 쌓이는 은행나무이파리를 보다가도, 배추이파리를 보다가도 돈이었으면 생각이 들기는 허지.

돈도 백여시촉딱구여서, 사람 맘을 얼렸다가 녹엤다가 지랄을허잖아. 나도 돈 놈 허고는 끝까지 같이 헐 생각 전혀 없고, 만약에 흙 속에서 돈이 필요허면 살살 달래서 데꼬 가겠지만. 상추 봐봐, 땅속에서 올라와 자라잖아? 나는 송장이 자라서 사람나무 본 적이 없슨게. 맞다 돈나무는 있네! 그렇다고 돈나무가 돈을 주렁주렁 열고 그러지 않잖아. 그래서 내가 따도 따도 자라는 상추를 좋아헌단께. 돈이 얼마나 무서운 놈인 줄 알어? 병들 게 허잖아. 마음의 병 말이여. 돈 따라다니는 사람들 봐봐,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눈치나 보고. 돈 눈치를 보는지 사람 눈치를 보는지 모르겄지만, 나도 한때는 둘 다 눈치를 봤슨께. 돈으로 얻은 마음은 어쩌 그리 쉽게  팍 쪼그라들까.”

한참 열변을 토하고 있는데 식당 안이 너무 썰렁했다. 나는 거미줄을 끊었다. 술잔을 내려놓은 그가 말했다.

“내가 말하는 것은 가난함 속에도 즐거움 있는 거 같다고요.”

김시인은 내가 사오정 같은 말을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는 답답한 듯이 술잔을 집어 들었다.  

나도 한잔 마시고 거미 똥구멍을 다시 열었다.

“김시인이 하는 공자님 말씀 알아들었단께. 팔방미인이 굶어 죽는다는 말이 맞는 거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본께, 돈 안 되는 것만 내가 쪼금씩 건드렸구만. 끝까지 헌 게 없네. 우리 엄마도 그랬어, ‘너는 어쩌 돈도 안 되는 것만 허냐, 취미도 참말로 별나다.’ 그중 쥐뿔 시를 쓴답시고 앉아 있으께, 다들 나를 철없는 민들레라고 허지. 요새는 민들레가 겨울에도 피드라고. 나이가 들어도 하는 짓거리가 이단 옆차기니 말이여. 근디 어쩌 나는 돈 안 되는 일만 즐거울까. 시가 돈 되는 것이었다면 이렇게 즐거워허며 욕먹으면서 글을 잡아당기고 앉아 있으까? 진작 때려치웠을 거여. 아니, 진작 시에 차여서 진눈깨비 달라드는 가로등아래서 입술은 시푸른댕댕 해갖고 길손만치 녹아내리겄지. 그러고 본께 사랑도 날 좋아허지 않은 거 같어. 언제부턴가 술도  입는 것도 사랑도 별로여. 근디 나에게 사랑은 입안에 신음 같은 것이랑께."

      

김시인은 말 한번 잘 못 꺼냈다가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내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큰소리로 술을 시켰다.

“여기 소주 한 병이요.”

“아따 혼자 겁나게 떠들어부렀네.”

지금 글을 쓰다 보니 참말로 혼자 많이도 떠들었다. 김시인이 참을성 대단했다. 겨울밤이 지겨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만만한 순대를 안주 삼아 막판에 소주를 무차별 연격 했다. 빈 소주병이 탁자 위에서 목을 가누지 못했다. 김시인은 말이 느려졌다. 나도 소주잔이 가물거렸다. 자동반사적으로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잔을 비우고 우리는 일어났다. 밖에 나가면 그 자리에서 속눈썹이 얼어버릴 것 같았다.

‘이 추위는 암끗 것도 아니여’ 혼자 주문을 외웠다. 그래서인지 코가 얼어버릴 것 같아도 추운 줄 몰랐다.

     

김시인이 택시비를 줬다.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는 오지 않았다. ‘택시 너도 언 거야’ 굳이 집에 가야만 할 이유가 없는데도 걷고 걸었다. 전철역이 보였다. 아까운 술도 다 깨 갔다. 오금역에서 내렸다. 걸었다. 손발이 뻣뻣했다. 밤바람이 아팠지만 나는 걸었다.

고양이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산이와 솔이, 나의 식솔 그릇들이 있는 집, 희미한 불이 켜진 집을 향해 긴 밤을 걸었다. 어쨌든 어찌어찌해서 집에 도착했다.

김시인 말처럼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즐기려 한다. 그래서 밤새 나를 데우려고 기다리는 집에 와야만 했다.


아침에 일어나 난방텐트 안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엄마가 하늘에서 이걸 보면 “아직도 돈 안 되는 거 허냐” 아니면 끝까지 해봐라 할까.


봄날  방바닥에서 거미가 돌아다녔다. 거미를 보는데 왜? 지난 겨울밤 풀었던 썰이 생각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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