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길 씨가 수돗가에서 쪼그리고 앉아 시멘트 바닥을 막대기로 긁고 있었다. 나는 상추밭에 물을 주다가 밭에서 나왔다.
“사장님 뭐 허요?”
“지붕 고치는 값 견적 냈는데 3백만 원이래요.”
“그래서 지붕 고쳐줄라고요?”
“그래도 아가씨가 사는데 이쁘게 해주려 했는데”
내 나이가 몇 개인데 결혼을 안 했다는 이유로 그는 나를 아가씨라 불렀다. 성길 씨는 본인도 결혼을 안 해서인지 결혼에 실감이 없는 것 같았다. 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 집에 놀러 온 지인들을 통틀어서 여자들을 그는 아가씨라고 부른다. 나도 굳이 누구는 결혼을 했고, 누구는 안 했고 말을 할 이유가 없기도 했다.
성길 씨 표정이 어두웠다. 돈 걱정 때문이다.
“사장님 언제 쫓겨나갈지 모르는디 뭐 헐라고 돈을 써요? 이쁜 천막 사다 쳐요.”
“그래도 되겠어요?”
“그럼요. 내가 말 안 했소. 나나 친구들이나 지붕이 특이해서 이 집을 더 좋아헌다고.”
“아, 그럼 우리 짜장면 시켜 먹을까요.”
성길 씨는 내 말이 그렇게 좋았는지 난데없이 짜장면을 시키자고 했다.
“나는 잡채밥!”
내가 짜장면보다 비싼 잡채밥을 고를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내가 사는 집은 산 밑이라 중화요리 집에서 짜장이든 짬뽕이든 하나를 시키면 기름값도 안 나온다고 배달을 해주지 않는다.
작년 가을날이었다.
“짜장면 먹을래요?”
성길 씨가 점심시간에 평상에 앉아 앞산을 멍하니 보고 있는 나에게 말을 했다.
“나는 이따 밥 먹을래요.”
“혼자 먹기 그래서요.”
성길 씨는 굳이 짜장면을 같이 먹자고 했다.
“새삼스럽게 왜 그러세요. 뒷방 할머니한테 먹자고 해 보던가.”
나도 오늘은 밥을 먹고 싶었다. 그리고 혼자 있고 싶었다. 그래서 평상시와 다르게 내가 고집을 피웠다.
“뒷방 할머니 어디 갔고. 짜장면 하나는 배달이 안 돼요.”
그럼 나에게 지금껏 짜장을 시켜준 이유가 주인이 세 든 사람 짜장면을 시켜준 게 아니었네. 진즉 말했으면 내가 먹고 싶은 걸 골랐을 텐데. 나 원 참 비밀도 아닌 비밀을 알게 되었다.
이 일을 알기 전에는 ‘성길 씨는 친절해’ 하면서 성길씨 방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 정도는 침을 튀기면서 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짜장면을 먹었다. 진짜 머위대로 얼굴을 가려야 할 판이었다.
성길 씨는 꼭 짜장면을 먹고 싶어 그러는 게 아니다. 술 생각나면 짜장면을 시켰다. 이 사정을 알고 나서 이제는 메뉴도 장소도 내가 결정한다.
오늘 남한산성 고골 하늘은 근심 하나 없이 깨끗하다. 평상에 짜장 하나 잡채밥 하나 소주 한 병을 깔아놓았다. 나와 성길씨는 나무젓가락을 뜯어 비볐다. 스티로폼 용기에 덮여 있는 비닐을 나는 젓가락으로 비벼 벗겨냈다. 그는 소주부터 한 잔 마셨다. 나는 국물을 성길 씨 앞으로 밀어줬다. 잡채밥 양이 너무 많아 덜어냈다. 덜어낸 잡채밥이 뭐 어쨌다고 나는 풀치가 생각날까. 병도 가지가지한다.
“이렇게 둘이 먹는 걸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뭐라 할까 걱정스럽네요.”
성길 씨가 술잔을 들고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그걸 왜 신경 쓰요? 말이 났다 쳐요. 주인이 세 든 사람 밥 한 끼 사는 게 뭐가 잘 못 됐소? 또 처녀 총각(들릴까 말까 모기 간만 한 소리로 말했다)이 밥 좀 먹겠다는디 즈그들이 뭐 도와준 거 있소? 글고 불리하면 내가 불리허지.”
성길 씨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듣고 짜장면에 손도 대지 않고 술만 마셨다. 성길 씨 푸념을 듣는 동안 잡채밥이 바닥이 났다. 나도 한잔 따라 마시고 쓰레기봉투를 찾았다. 성길씨는 막 잔을 손에 들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나한테 고맙다고 했다.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자리를 일어서려는데.
“기분 좋아한 잔 더 하고 싶어서요. 혹시 집에 소주 사다 놓은 거 있으면 한 병 주세요.”
“오늘은 여그까지 허세요, 해 질라먼 아직 몰랐소.”
아무래도 성길씨와 풀치를 위해 마당에 좌판을 깔고 소주와 안주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 만으로도 집세를 벌 수 있을 거 같다.
며칠 후 성길씨는 사람 사서 지붕을 새 천막으로 바꿨다. 그래도 이발 한 성길 씨처럼 잘생기고 깨끗해 보였다. 까불이는 젖꼭지가 쪼그라든 도도랑 마당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