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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Jun 06. 2024

불량품들의 사계

짜장면이 불기 전에 106

짜장면이 불기 전에



           

성길 씨가 수돗가에서 쪼그리고 앉아 시멘트 바닥을 막대기로 긁고 있었다. 나는 상추밭에 물을 주다가 밭에서 나왔다.

“사장님 뭐 허요?”

“지붕 고치는 값 견적 냈는데 3백만 원이래요.”

“그래서 지붕 고쳐줄라고요?”

“그래도 아가씨가 사는데 이쁘게 해주려 했는데”

내 나이가 몇 개인데 결혼을 안 했다는 이유로 그는 나를 아가씨라 불렀다. 성길 씨는 본인도 결혼을 안 해서인지 결혼에 실감이 없는 것 같았다. 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 집에 놀러 온 지인들을 통틀어서 여자들을 그는 아가씨라고 부른다. 나도 굳이 누구는 결혼을 했고, 누구는 안 했고 말을 할 이유가 없기도 했다.

성길 씨 표정이 어두웠다. 돈 걱정 때문이다.

“사장님 언제 쫓겨나갈지 모르는디 뭐 헐라고 돈을 써요? 이쁜 천막 사다 쳐요.”

“그래도 되겠어요?”

“그럼요. 내가 말 안 했소. 나나 친구들이나 지붕이 특이해서 이 집을 더 좋아헌다고.”

“아, 그럼 우리 짜장면 시켜 먹을까요.”

성길 씨는 내 말이 그렇게 좋았는지 난데없이 짜장면을 시키자고 했다.

“나는 잡채밥!”

내가 짜장면보다 비싼 잡채밥을 고를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내가 사는 집은 산 밑이라 중화요리 집에서 짜장이든 짬뽕이든 하나를 시키면 기름값도 안 나온다고 배달을 해주지 않는다.     

작년 가을날이었다.

“짜장면 먹을래요?”

성길 씨가 점심시간에 평상에 앉아 앞산을 멍하니 보고 있는 나에게 말을 했다.

“나는 이따 밥 먹을래요.”

“혼자 먹기 그래서요.”

성길 씨는 굳이 짜장면을 같이 먹자고 했다.

“새삼스럽게 왜 그러세요. 뒷방 할머니한테 먹자고 해 보던가.”

나도 오늘은 밥을 먹고 싶었다. 그리고 혼자 있고 싶었다. 그래서 평상시와 다르게 내가 고집을 피웠다.

“뒷방 할머니 어디 갔고. 짜장면 하나는 배달이 안 돼요.”

그럼 나에게 지금껏 짜장을 시켜준 이유가 주인이 세 든 사람 짜장면을 시켜준 게 아니었네. 진즉 말했으면 내가 먹고 싶은 걸 골랐을 텐데. 나 원 참 비밀도 아닌 비밀을 알게 되었다.      

이 일을 알기 전에는 ‘성길 씨는 친절해’ 하면서 성길씨 방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 정도는 침을 튀기면서 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짜장면을 먹었다. 진짜 머위대로 얼굴을 가려야 할 판이었다.

성길 씨는 꼭 짜장면을 먹고 싶어 그러는 게 아니다. 술 생각나면 짜장면을 시켰다. 이 사정을 알고 나서 이제는 메뉴도 장소도 내가 결정한다.

오늘 남한산성 고골 하늘은 근심 하나 없이 깨끗하다. 평상에 짜장 하나 잡채밥 하나 소주 한 병을 깔아놓았다. 나와 성길씨는 나무젓가락을 뜯어 비볐다. 스티로폼 용기에 덮여 있는 비닐을 나는 젓가락으로 비벼 벗겨냈다. 그는 소주부터 한 잔 마셨다. 나는 국물을 성길 씨 앞으로 밀어줬다. 잡채밥 양이 너무 많아 덜어냈다. 덜어낸 잡채밥이 뭐 어쨌다고 나는 풀치가 생각날까. 병도 가지가지한다.

“이렇게 둘이 먹는 걸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뭐라 할까 걱정스럽네요.”

성길 씨가 술잔을 들고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그걸 왜 신경 쓰요? 말이 났다 쳐요. 주인이 세 든 사람 밥 한 끼 사는 게 뭐가 잘 못 됐소? 또 처녀 총각(들릴까 말까 모기 간만 한 소리로 말했다)이 밥 좀 먹겠다는디 즈그들이 뭐 도와준 거 있소? 글고 불리하면 내가 불리허지.”     

성길 씨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듣고 짜장면에 손도 대지 않고 술만 마셨다. 성길 씨 푸념을 듣는 동안 잡채밥이 바닥이 났다. 나도 한잔 따라 마시고 쓰레기봉투를 찾았다. 성길씨는 막 잔을 손에 들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나한테 고맙다고 했다.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자리를 일어서려는데.

“기분 좋아 한 잔 더 하고 싶어서요. 혹시 집에 소주 사다 놓은 거 있으면 한 병 주세요.”

“오늘은 여그까지 허세요, 해 질라먼 아직 몰랐소.”     

아무래도 성길씨와 풀치를 위해 마당에 좌판을 깔고 소주와 안주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 만으로도 집세를 벌 수 있을 거 같다.


며칠 후 성길씨는 사람 사서 지붕을 새 천막으로 바꿨다. 그래도 이발 한 성길 씨처럼 잘생기고 깨끗해 보였다. 까불이는 젖꼭지가 쪼그라든 도도랑 마당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

나는 얼른 방으로 들어와 멸치를 갖다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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