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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Jun 09. 2024

불량품들의 사계

테스형 세상이 왜 그래 107

테스 형 세상이 왜 그래



              

연자방아 앞에서 택시가 멈추었다. 차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따, 꽃망울 다 떨어지겄네’ 나는 평상에 앉아 까불이 털을 빗겨주다 뒤를 돌아봤다. 까불이도 눈을 떴다. 성길씨는 휴대폰으로 택시 꽁무니를 찍고 있었다. 성길씨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손에는 검정비닐 봉지가 들려있었다. 그의 걸음은 빠르고 정면을 향했다. 나 있는 쪽이었다. 평소 같으면 집으로 들어갈 텐데 그는 평상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는 입술을 천리 길만큼 뚱하게 내밀었다. 나에게 할 말이 있는 거 같다.

“나아 참, 내에가 왜 이이런 누우명을 써어야 해요?”

성길씨는 분노에 차 있었다. 입 근육이 실룩거렸다. 그의 목소리가 역대급으로 컸다. 바람 잘 날 없는 마당, 또 한 건 터졌구나, 직감으로 알았다. 까불이는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눈동자를 세로로 뜨고 누웠다.

“내에가 사알다 살다 이이런 이일은 처어음 다앙해요.”

“왜요?”

“내에가 지인짜 저 새에끼 수울 주저엉뱅이 때무문에 나아까지 지인짜 어억굴해서.”

성길씨는 흥분하면 말을 더듬었다. 언제부턴가 흥분해도 안 그러더니 오늘은 예전처럼 버벅거리며 분절된 말이 쏟아졌다.  

“뭐가 그리 억울해요? 뻔한 말 허시면 나 안 들으래요.”

“아아니라니까요 저엉말 저 저새에끼때문에 내에가 지인짜.

성길씨는 생각대로 말은 안 나오지, 숨은 차지, 듣고 있는 나도 답답했다.
 “아따, 말이 숨차서 죽게 생게부렀네. 숨을 고르고 말을 해봐요.”

성길씨는 침을 꼴딱 삼켰다.

“내에가 그으제 바암중에 자암이 아안 와 마아걸리를 사아려고 태액시를 부울렀어요.”

“그런디요”

“편으저엄에 가았어요. 기이사를 바아케서 기이다리라고 하고 마악걸리를 사서 그 태엑시를 타고 지입 아페서 내에에렸지요.”

“그래서요.”

“아아까 태엑에시를 부을러 타아고 지이입 오느는데 기이사아가 이이사앙한 마아를 하아는 거어예요.”

“뭔 말을요?”

나는 까불이를 밀치고 성길씨를 내려다봤다. 까불이도 덩달아 일어나 앉았다.

“태엑에시기이사가 그으러는 거에예요 나아참, 기이가 마악켜서 다 수울 고래 저 새에끼 때에문이라고요.”

“아따, 무슨 일인디요? 뜸 그만 들이고 말허세요.”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검정 비닐봉지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내에가 지인짜 저 새에끼를 가아만히 두지 아안겠어요.”

“옴매 죄 없는 비닐봉지를 왜 던져 불까!”   

   

나는 검정 비닐봉지를 좋아한다. 시장 볼 때 주인이 비닐봉지를 쫘악 떼어 비싸든 싸든 한꺼번에 담는다. 검정 비닐봉지 안으로 들어가면 다 똑같다. 남에게 보여 주기 싫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친구가 준 갈치를 검정 비닐봉지 속에 담아 오다 골목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쳤다. 얼마 되지 않은 갈치를 꺼내 주기가 그랬었다. 사람들은 검정 비닐봉지 속을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도 성길씨가 던져버린 검정 비닐봉지 속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데 검정 비닐봉지 속에서 막걸리병이 ‘한잔 하실래요.?’ 하면서 고개를 쏙 내밀었다. 나는 막걸리병을 보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그는 하남 교산 3기 신도시 재개발로 인해 이사 가기 싫어 요즈음 술을 몰아 마시고 있다. 술을 마신 후유증으로 성길씨 볼은 쏙 들어갔지요, 머리에 새집은 몇 채나 지었지요. 날마다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지요, 눈가에 굵은 주름이 점점 깊어지고 있지요, 그의 몰골은 곧 저승을 갈 것 같았다. 그래서 그제 낮에 잔가지로 시멘트 바닥을 긁고 있는 성길씨에게. “아저씨, 곧 죽을 같어요” 하면서 검지로 하늘을 가리켰었다.

성길씨는 풀치 때문에 알코올 중독자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래서 나 몰래 술을 사러 간 것이다. 그렇지만 왕복 콜 택시비가 15 천이고 막걸리 한 병에 2천 원쯤이면 비싼 막걸리다.     

“저 씨이팔 새에끼 때에문에 나아까지 저어런말을 들어야허냐고!”

“아따, 진짜 먼 놈의 도입부가 이리 길다요. 나도 한계가 있다고요!”

“기이사가 그러어는 거어예요. ‘이 마으을에 수울주우정뱅이가 두우 명 사아는데 하안 명은 태엑시 타아고 오오면 태엑시비도 아안 주운다고’ 마알을 하아느는데, 두우 명 주웅 하안 명은 저 어 새에끼이잔아요!”

성길씨는 말을 끊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고 그의 얼굴을 보았다.

누가 보아도 ‘그럼 한 사람은 성길씨!’

성길씨는 눈가에 주름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내에가 기이사한테 마마알했죠. 이이 도동동네에는 수울주우정엉뱅이는 하안 명 바에케에 어업는데에요.”

“그랬더니요.”

“기이사가 그으러는 거어예요. ‘아아니에요. 또오 하안 명 이있어요’ 이이러는 거어예요.”

성길씨가 말을 끊고 담배를 태웠다. 나는 웃어버렸다. 웃음을 참다가 병 생길 것 같았다. 성길씨도 따라 웃었다. 그는 담배를 발로 비벼 껐다.

“기이사는 무우슨 즈응거라도 대에겠다는 드읏이, 며어칠 전 여연자방아서 태액시를 부울러 타아고 가안 나암자가 편으으점에 태엑시를 대에기 시이켜어노오코 마악걸리를 사아 드을고 다시 여언자아방아에서 내에려었다아고 서얼명을 하아며언서, 배액미일러로 나아를 보오면서도 모옷 알아보오오고 씨이부렁 거어리이는거어예요. ”

나는 도저히 평상에 앉아 들을 수 없어서 마당으로 내려갔다. 까불이도 마당으로 내려왔다.

“그으럼 저어잖아요. 마악걸리 사아러 가안 나알은 바암이어었고 내에가 뒤이자아석에 아안자아 나아를 모못 아알아보오고 저어 따아위 마알을 하안 거어죠!”

성길씨는 누구보다 체면을 지키며 살려고 했다. 평소에 가까운 편의점 놔두고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로 마트까지 술을 사러 갔다. 성길씨는 자기를 술주정뱅이 취급한 거에 머리끝까지 화가 올라 와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누가 누군지 알고 그런 말을 함부로 헐까.”

기사의 경솔한 태도에 나도 화가 났다. 시골에 살면 말들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다.

“여엎집도 그으렇게 드을리죠?”

“네. 당연허죠. 술주정뱅이가 머에요. ‘술 애주가’ 같은 점잖은 말 놔두고, 그래서 기사헌테 한마디 했어요?”

“뒤통수를 한 대 갈길까 말까, 생각하다가 내릴 때 했죠.”

그는 다 쏟아내고 나니 분이 풀렸는지 말하는 게 수월했다.

“그 나머지 한 명이 저예요.”

나는 그 말을 듣자 대놓고 웃어버렸다. 성길씨도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아무 짓도 못 한 소심한 자기를 민망해하면서 열이 사그라들었다.

“기사가 깜짝 놀라더라고요.”

그는 통쾌해했다.

“차 번호랑 차종이랑 사진 찍었어요. 요새 일거리 없어 택시 세워놓고 줄 담배나 피고 있는데, 내가 돈 벌어 줬는데 이럴 수 있어요!”

성길씨가 찍은 사진은 차 뒤 번호판이었다. 그는 앞에서 찍을 자신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뭐라고 해야죠? 내가 당신한테 오늘 운전 그만허고 술을 마시자고 했냐. 앞집 저 술주뱅이처럼 택시비를 안 줬냐고 따지지 그랬어요?”

성길씨는 그 말을 못 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이제야 막걸리병을 보았다. 그는 비닐봉지를 들고 얼른 일어섰다. 까불이는 바람보다 빨리 사라졌다.

성길씨에 들려간 막걸리병은 ‘좀 있다 봐요.’ 나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는 성길씨 뒤에 대고 말했다.

“술 마시고 택시회사에 전화 허면 안돼요.”

“알았어요.”

오후 다섯시다. 호두나무 그림자가 평상을 덮었다. 건조대에 빨래를 걷고 있었다. 술이 거나하게 오른 성길씨가 마당으로 나왔다.  

“택시회사에 전화했어요. 앞으로 그 택시 이쪽에 발도 붙이지 말라고.”

“술 마시고 전화허지 말라고 허니까는. 그럼 술고래랑 머가 달라요!”

“조금 마시고 했어요. 술고래 저 새끼 잡히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하필 이때, 멀리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풀치 노랫소리가 들렸다. 좀 있으면 제 운명이 어떻게 될 줄도 모르고 찰지게 노래를 불렀다.

오늘 마당은 용호상박이 될지 일방적으로 성길씨 승리가 될지. 그렇지만 짐작은 할 수 있다. 성길씨 기세로 보아 풀치는 오늘 제삿날이 될 수도 있다. 풀치는 성길씨가 큰소리를 치면 수그러든다.  

    

나는 얼른 풀치 노랫소리 들리는 쪽으로 걸어갔다.

풀치는 플라스틱 소주병으로 나발을 불며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 헤벌쭉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디서 얻어 입었는지 다리에 꼭 낀 쫄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 저 다리로 오늘 버틸 수 있을까’ 하염없는 봄바람에도 그는 아직도 패딩 잠바를 입고 비니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나는 풀치에게 풀치 집으로 가는 샛길을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풀치는 내가 자기를 마중이라도 나온 줄 알고 나 있는 쪽으로 세차게 걸었다. 나는 성길씨 집을 손가락으로 가르키고 난후 풀치에게 주먹을 만들어 내보였다. 마당에 발 딛으며 성길씨에  오늘 죽는다 뜻이었다.

이 모습을 본 성길씨가 마당 입구로 걸어 나왔다. 나는 ‘될 대로 돼라’ 하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때 “야 씨이팔 새끼야! 너 오오늘 뒤이졌어.”

나는 풀치와 성길씨 가운데서 서서 성길씨를 보고 눈짓으로 그만하라고 했다. 풀치는 부르던 노래를 삼켰다. 성길씨는 잽싸게 달려가 풀치 어깨를 밀쳤다.

풀치 다리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끊어질 거 같았지만 그대로 서 있었다. 풀치는 플라스틱 소주병을 놓쳤다.

성길씨는 다시 풀치 어깨를 밀쳤지만, 힘껏 밀지 않았다. 풀치는 길가에 서 있는 에어 간판 풍선처럼 흔들거렸다. 풀치는 나를 보고 웃었다. 성길씨는 그것에 더 열 받았다. 슬리퍼를 벗어 던졌다. 풀치 머리통에 딱 맞았다.

“형님 왜 그러는 거예요?”

“아따 그만 헜쑈! 그놈이나 그 놈이나.”

나도 모르게 나와버렸다.

“그 성깔 택시기사에게 썼어야지.”

오 십 보 백 보, 똥 묻은 놈이 재 묻은 놈 뭐라고 한다는 꼴이었다.

기사에게는 쪼다같이 한마다 못하고 풀치에게 퍼붓는 성길씨에 나는 화가 났다. 성길씨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풀치에게도 신경질이 났다. 물론 풀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그 기사가 잘못 한 거지. 풀치가 뭐 그리 죽을 죄를 졌냐고. 내 눈에는 풀치나 성길씨나 부실이 중에서도 상 쪼다 같았다.      

이 광경을 말 많은 이웃 아줌마들이 멀리서 쳐다보고 있었다. 아줌마들은 누구 하나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다.

성길씨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급히 집 수돗가로 내려갔다. 풀치는 사태를 전혀 모르고 소주병을 주워들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나는 풀치에게 “얼른 니 집으로 가야” 말하고 돌아섰다. 풀치는 오늘 본인 신곡 발표했다.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노래는 길 건너 어둠 속으로 흘러갔다.  

    

성길씨도 집으로 들어갔다. 그의 집 입구에는 막걸리를 담았던 검정비닐 봉지가 펄럭거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검정 비닐봉지는 제자리에 있었다. 궁금했다. 비닐봉지를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 고양이 참치 캔 두 개가 들어있었다. 까불이 새끼들 주려고 산 것이었다.   

   

밤새 연자방아에서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노래가 들려왔다. 내 귀에는 ‘성길 형 세상이 왜 이래’로 들렸다.

한없이 너그러운 밤바람이 잎사귀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나저나 차린 것은 많지만 먹을 것 없는   읽느라 고생들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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