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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Jul 08.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누기 밀물이고 누가 썰물일까 115

누가 밀물이고 누가 썰물일까



         

마당을 쓰는 코끝에 벚꽃이 달려든다. 풀치 목소리가 들렸다. 빗질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술에 취해 있어야만 풀치 눈과 혀가 멀쩡하다. 빈 박스를 밀차에 싣고 연자방아 앞에 서서 풀치가 나를 보고 말했다.

“누님, 뭐 하세요?”

“보면 몰라. 마당 쓸잖아.”

그는 머쓱했는지 밀차를 밀었다 당겼다.

“담배 뭐어 피피어?”

이는 풀치가 빠졌는데 발음은 내가 새고 있었다.

“... 플러스요.”

“뭐라고?”

“아무거나 다 피워요.”


풀치는 내가 말을 붙여주자 앞니 빠진 입을 벌리며 헤헤 웃었다. 그는 패딩 잠바도 벗어던졌다. 그는 밀차를 세우고 마당으로 내려왔다. 나도 빗자루를 던져놓고 평상 끝에 걸터앉았다. 금방 앉기가 쑥스러웠을까. 풀치는 머뭇거리다가 빨래건조대를 접은 공간만큼 떨어져 앉았다. 나는 아르바이트하는 쑥을 플라스틱 통에 섞으면서 그가 묻는 말에 따박따박 답을 해줬다. 탄력을 받은 풀치는 갑자기 궁금한 게 많아졌다. 평상시 보다 서너 배 넘게 이것저것 물었다. 치즈 늘어나듯 늘어나는 그의 말을 나는 손을 저어 끊었다.

“술고래가 좋아하는 봄이 와 부렀네. ”

“누님 술고래라니요.”

“그래 오늘은 술 삥아리.”

나도 그도 앞산을 바라보며 엷게 웃었다. 봄바람은 마당을 연하게 만들었다. 물론 풀치가 술에 취하지 않아서였다.

풀치는 컨테이너에서 겨울을 났다. 꽃이 서성거리는 지금 풀치는 갯벌 위 짱뚱어였다. 나도 마찬가지다. 풀치랑 다정히 말을 한 거 보면 내 가슴팍도 봄바람 때문에 중심을 놓쳤다.

천지가 꽃이라, 나는 널브러져 있는 막대기에도 친절해질 판이다.

“누님 저 아래 개천에 벚꽃 날리는 거 봐요. 벚꽃에 대해 시 한 편 쓰세요.”

 “그래, 그러지 뭐.”

나는 평상에 앉은 채로 살며시 눈을 감았다.

“벚꽃에 베인 그 남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네. 어젯밤 마신 술 방울이 눈가에 뚝뚝, 떨어지네.”

나는 일어나 한 줄 더 허공에 날리려고 입을 벌렸다. 풀치는 그 순간.

“어젯밤 내가 천호동에서 술 마신 거 어떻게 알았어요? 오만 원어치 막걸리 마셨어요.”

“뭐, 가스가 한 통이네!”

‘지랄 옆차기를 했구만.’

풀치는 어젯밤 자기가 술 마신 것을 내가 어떻게 알았을까 놀라워했다.

‘그걸 말해서 알 것냐, 니 꼬라지를 보면 알지’

“미쳤군. 돈이 어디서 나가꼬?”

“고물 주워 팔아서요.”

“가지가지헌다!”

나는 신고 있던 짝 아디다스 슬리퍼 한쪽을 벗었다. 슬리퍼의 흙을 돌에 털었다. 풀치를 때려버리고 싶다는 시늉이었다.     

풀치는 언제 평상에서 내려갔는지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나를 힐끔 쳐다봤다. (이 동네 남자들은 왜 쪼그리고 앉는 걸 좋아하냐, 성길씨도 끄떡하면 쪼그리고 앉고) 사실 나는 다른 사람한텐 함부로 하지 않는다. 아무에게나 잘못 뱉었다가는 한 대 얻어터질 수 있다.  

    

바람 따라 꽃들이 마당으로 날아든다. 성길씨도 우리 앞으로 왔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우리는 멈칫했다. 나는 평상에 앉아 아르바이트하는 쑥 통을 뒤적거렸다. 풀치도 옷을 털고 일어났다.

풀치는 성길 씨한테 담배 한 대를 얻어 마당을 벗어났다. 더 있고 싶어도 성길씨 눈치가 보여 간 것이다. 성길씨도 계곡 쪽으로 걸어갔다. 나도 처마 밑으로 들어섰다. 썰물에 쓸려나가는 것 같았다. 풀치는 그렇다고 치고 ‘내가 왜 성길씨 눈치를 보고 있지?’ 그렇지. 성길씨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것이 무의식 속에 자리 집고 있었다.    


풀치가 가는 골목에 벚꽃이 날아들었다. 그는 밀차를 끌고 컨테이너 집으로 갔다. 성길 씨는 밭 끝 펜스에 기대선 채 나머지 담배를 피웠다.

밀차를 끌고 가는 풀치 뒤 목이 줄어들었다. 나는 풀치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처마 밑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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