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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Oct 05.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모기와 불가침 협정을 맺은 것도 아니고 139

모기와 불가침 협정을 맺은 것도 아니고 139   


  

                                        

깻잎이 쳐지고 치커리와 시금치는 대가 생겼다. 열무는 꽃을 피웠다. 머리카락이 탈 정도로 덥다. 모기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극성이다. 마당에 서 있다가, 밭에 들어갔다가 수없이 달려드는 모기에 물렸다. 방역차가 마을을 한 바퀴 돌아도 소용없다. ‘여름은 우리 세상이야’ 모기들은 마치 피서를 즐기는 것 같다. 고추 한 개 따는데도 어느 틈에 까만 몸에 흰 줄 서너 개 그어진 ‘흰줄숲모기’는 발목을 찔러버린다. 악명을 떨치는 일명 ‘아디다스 모기’다. 미친년 산발한 토마토 가지를 묶고 있는데 모기들은 내 팔다리를 열방 넘게 물었다. 마당으로 나오자 가렵기 시작했다. 수돗물로 팔다리를 씻어냈다. 욕실에서 고무호스를 가져와 깻잎부터 물을 주었다. 하늘이 꾸물거렸다.

물을 주고 있는 동안 모기는 얼굴, 손등, 손목, 발목, 발등까지 융단 폭격을 해댔다. 모기는 끈질기게 달라붙어 피를 빨아댔다. 이십 방은 물린 것 같다. 손으로 이리저리 휘저으며 물을 줬다.

호스를 정리하고 버물리를 발랐다. 모기 물린 곳이 가려워 환장할 것 같았다. 버물리를 바르고 방에서 잠깐 누웠는데 비가 내렸다.

“내가 뻘짓을 해 부렀구만.”     

 

어디서 윙 소리가 들렸다. 흰줄숲모기는 우박만 한 빗방울을 맞고도 구멍 난 방충망으로 필사적으로 들어와 내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물어버렸다.

‘아까, 마당에서 내 피 많이 빨지 않았냐?’

이놈들은 오른쪽 엄지발가락도 모자라 내 눈두덩이를 물었다. 여기는 정말 가렵다. 짜증 난다. 저놈은 옷 속으로도 파고들어 물어버린다. 글이라서 저놈이라 쓰지만 나는 모기에게 마구 욕을 했다. 아디다스 모기한테 물리면 방울토마토만 하게 부풀어 오른다. 요즈음 소리소문 없이 눈에 보이지 않은 좀만 한 놈도 나타났다. 저놈들한테 물리면 ‘버물리’도 소용없다.     

 

저녁 먹고 뉴스를 보다가 곯아떨어졌다. 윙윙거리는 소리에 깨어나 뒤척인다. 아까 물린 엄지발가락이 가려워 왼쪽 발을 갖다 대고 비볐다. 눈두덩이는 달걀만 혹이 붙어있는 것 같다. 아디다스 모기는 무엇이 부족한지 귀 옆까지 돌진해 나를 잠을 못 자게 하고 있다.

‘저걸 일어나서 죽여 말어.’ 생각만 하다가 베갯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내피를 빨아먹었으니 너와 피를 나눈 형제자매라고 생각하자. 일어나기가 싫어 핑계를 댔다.

‘그러니 그냥 너를 살려주마.’

‘네가 안 살려주면 어쩔 건데?’ 모기는 귀 옆에서 엥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일초에 한 번씩 귀 옆에서 공격하고 있다.

전자매트 약이 닳았나 들여다보았지만, 아직 남아있다.

‘흰줄숲모기’는 끈질기게 달려드는 게 특기다. 애써 참으려 했지만, ‘너를 죽여야 내가 자겄다’ 내 참을성은 여기까지다. 벌떡 일어났다. 천장에 붙어있는 모기를 조준하여 신문지를 말아 던져버렸다. 잽싸게 도망갔다.

‘아니 왜 이래? 언제는 피를 나눴느니, 형제자매니 해 놓고’ 모기가 바람벽에 달라붙었다가 스피커에 앉을까 말까 하고 있다.

기어이 너를 죽이고야 말겠다. ‘야, 그 정도 피를 뽑았으면 됐지, 니가 사채업자도 아니고 말이여’ 그때 바람벽에 모기 녀석이 사뿐히 앉았다. 나는 뒤꿈치를 들고 살살 기다시피 왼쪽 얼굴을 벽에 붙였다. 모기는 지가 더 빠르다고 생각하는지 꼼짝 않고 벽에 붙어있다. 모기가 날아오를 각도로 조준하여 날아올 곳을 신문지로 내리쳤다. 벽에 피가 모기와 함께 퍼졌다. 짜릿했다. 핏자국을 물휴지로 닦았다. 번졌다. 손으로 문질러 닦았다. 희미하게 남은 얼룩. 그 피는 내 피였다.   

  

말이 형제자매지, 시절이 좋을 때는 무슨 말을 못 허냐. ‘믿고 까부는 니가 문제지’ 의형제를 맺으면서 피를 나눠 마셔도 서로 불리해지면 떨쳐내고 밀어내는 것이 인간 세상이다. ‘너랑 불가침 협정을 맺은 것도 아니고 알겄냐? 모기야.’   

  

곧 모기와 전쟁이 끝나는 계절이 올 것이다. 그러면 모기를 까마득하게 잊고 산밑 이곳을 맘껏 즐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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