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에서 집으로 오는 길가에 흰 수국이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이른 아침이었다. 수국꽃을 본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꽃이 길가에 외롭게 피어서도 아니고, 흰 빚이 고와서도 아니었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속이 쓰렸다. 골목을 돌아 나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 앉아 있었다. 눈물이 나와 물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속이 불편해 생수를 들이켰다. 집에 도착해 연자방아 옆에 피어있는 흰 수국을 바라보다 방으로 들어갔다. 동물농장 티브이를 켜놓고 소파에 누웠다. 배가 고팠다. 먹다 남은 소금빵을 먹고 찬물을 마셨다.
페키니즈 강아지 ‘산’ 이를 하늘로 보낸 뒤 눈에 밟히는 것들이 많아졌다. 햇살 아래 하늘거리는 환한 꽃마저 깜깜해 보였다. 바람이 헐떡거려도 내 안쪽은 텅 빈 듯 쓸쓸했다. 내 앞에서 웃는 모든 것에게 나는 거리를 두었다. 떠난 가버린 것에 무심해지려고 노력했지만, 꽃들 너머 그 너머에 눈이 자주 간다.
‘산’ 이를 보내고 한 달 동안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맘을 잡지 못하고 가게에서 잠을 자고 친구들 집으로 흘러 다녔다. 맘 붙일 곳을 찾다가 나는 마당 가에 수국을 심었다. 해가 바뀌자 수국은 꽃이 피었다. 너무 탐스러워 길가는 사람들이 꽃을 몰래 꺾어 가기도 했다.
회오리치는 봄날 오후 석촌호수 나무에 묶여있던 산이를 데려와 나는 13년을 산이와 함께 했다. 산이는 내가 혼자 얼렁뚱땅 살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었다. 나는 아무리 늦어도 꼭 집에 들어갔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매일 산이와 산책을 했다. 내가 마음 상할 때면 산이를 앞에 앉혀놓고 넋두리를 했다. 누구든 욕을 해주고 싶어질 때면 산이 앞에서 그 사람 흉을 보며 맘을 털어냈다. 산이는 내 맘을 다 알고 언제나 내 편이었다.
내가 산이에게 “산이 기도해야지” 하면 산이는 엉덩이를 빼고 내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와 내 두 손위에 털 뭉치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짧은 다리를 뒤로 쭉 펴고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려 눈을 말똥말똥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하나님! 산이랑 이모랑 산 밑에서 오래오래 살게 도와주세요.” 우리의 기도는 짧고 명료했다.
산이를 보낸 후 나는 봄이 오면 혼자 꽃을 보러 나섰고, 나무 아래로 그늘을 찾아들었다. 서리가 내리면 울었고, 눈이 오면 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산이가 떠나고 난 뒤에 알았다. 나의 적적함을 산이가 채워주었다는 것을, 산이가 남기고 간 구멍은 쉬이 메꾸어지지 않을 것이다.
잠이 안 와 마당 가 수국 앞으로 다가갔다. 더운 밤바람은 식을 줄 몰랐다. 산이가 막사 뒤 옥수수밭에서 연자방아 쪽으로 뛰어오는 것 같았다. 나는 바람에 살랑대는 수국꽃을 가슴에 꼭 껴안고 쓰다듬었다. 산이가 내 발아래 벌러덩 누워 배를 내민다. 손으로 산이의 배를 따뜻이 만져주었다. 한참을 만지다가 수국에 가만히 입을 맞추었다. 까닭 없이 눈 가장자리가 또 시큰거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덥수룩한 흰 수국은 내가 말할 때 못 알아듣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산이와 닮았다. 산이 뼛가루를 여기 수국 밑에 묻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뼛가루에 뿌리를 내린 것들이 가지를 타고 올라와 꽃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 마당 가 수국뿐 아니라 길가에 수국을 봐도 산이를 본 것처럼 아프다.
사라지지 않는 기억은 언제나 쓸쓸하다. 마당에서 노는 고양이를 부를 때도 나도 모르게 나는 ‘산아’ 하고 부른다. 이럴 때면 산이가 어서 빨리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리길 바란다. 하지만 혀끝에 붙은 이 슬픈 덩어리가 녹아 시냇물처럼 정말 흘러가버린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릿해진다. 산이에게 받은 사랑을 생각하면 말이다. 오히려 나는 그 쓸쓸함을 쓸쓸함으로 채우니 행복하더라.
구름에 가려진 달 속을 산이와 걷고 있다.
‘이모 슬퍼하지 말아요, 나도 이모와 함께 한 모든 날을 잊을 수 없어요.’ 산이의 목소리가 가만히 들려오는 것 같다. 수국이 처음 피는 날 나는 산이가 내게 오는 날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