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점박이와 순둥이를 중성화 수술하기로 했다고 주인집 성길씨에 통보했다. 길고양이가 성길씨 집에서 살다가 눌러앉았다. 순둥이와 점박이도 길고양이 도도가 성길씨네 까불이랑 이러쿵저러쿵해서 연탄보일러실에 태어났다. 그런데 참말로 이상한 것은 까불이는 중성화 수술을 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병원 실수인가. 그렇지만 까불이랑 붙어 다녔지, 성길씨 연탄보일러실에서 새끼를 출산했지, 이것은 빼도 박도 못한 극명한 성길씨 고양이다.
동물병원에서 철망을 갖고 저녁 7시까지 우리 집으로 오기로 했다. 나는 5시부터 마당에서 강아지풀로 고양이 배를 간지럽히면 놀았다. 어디 못 가게 잡아놓기 위해서였다. 나비들에게 츄르를 주며 시간을 끌었다. 다행히 6시쯤에 주인 성길 씨가 마당으로 나왔다.
“좀 있다가, 새끼들 중성화 수술허러 동물병원에서 온다고 했어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요?”
“새끼들 어디 못 가게 잡고 있어야 해요.”
“알았어요.”
성길씨는 30분이 지나자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갈고 다니는 새끼들을 따라다녔다. 계속 강아지풀을 흔들었다.
그새 얘들은 싫증 났는지 점박이가 다리를 건너 남의 밭으로 갔다. 내 애를 태웠다. ‘애만 태우는 소양강 배도 아니고’ 나는 따라가서 잡아 보듬고 왔다. 두 마리를 한 곳에 앉혀 놓고 이파리 달린 나뭇가지를 마구 흔들었다. 애들은 이파리를 잡으려고 앞발을 젓다 말고 이번에는 순둥이 혼자 다리를 건넜다.
“야, 사람 미치게 헐래?”
7시가 넘었다.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8시 넘어서 동물병원 아줌마가 철망을 가지고 왔다. 순둥이가 내 옆으로 왔다. 나는 순둥이를 안았다. 철망에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발버둥을 쳤다. 점박이는 그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하고 도망갔다. 순둥이는 내 새끼손가락을 긁었다. 피가 났다. 그만 순둥이를 놓쳤다. 종 치고 막 내렸다.
“남의 집 고양인디, 내가 몇 시간 동안이나 이게 뭐람!”
성길씨는 사룟값 때문에 고양이가 새끼를 밸까 봐 구박했다. 그래서 내가 나섰지만, 아무리 내가 오지랖이라지만 신경질이 났다.
나는 방에서 나비들이 철망 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밖에서 빗소리와 함께 요란한 소리가 났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이고 잡혔네.”‘
천을 덮어 순둥이를 진정시켰다. 동물병원 그분한테 연락했더니 금세 왔다. 그분은 다시 철망을 치고 다른 곳에 들른다고 내려갔다.
다음 날 아침 철망이 부서질 것처럼 큰 소리가 들렸다. 나는 튀어나가 검정 천을 들어 올렸다. 아이고, 이번에는 깡패 노랭이였다. 노랭이는 고양이들 밥 뺏어 먹고 할퀴고 마을을 휘젓고 다녔다. 나비들이 밥을 먹다가도 깡패 눈치 보느라 부스럭 소리가 조금만 들려도 도망갔다.
한 번은 순둥이 꼬리가 잘려나갈 뻔했다. 나도 사료를 사다 주니까, 고양이들이 마당으로 몰려들었다. 집 주변에서 진을 치고 있는 깡패 노랭이가 보일 때마다 나는 할 수 없이 돌멩이를 들었다. 이러고 있는 내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어차피 새끼들도 내 고양이가 아닌데 누구는 밥을 주고 누구는 돌멩이를 던지면서 쫓고. 새끼를 지키는 게 결국은 다른 애를 쫓는다는 거였나? 성길씨가 사룟값 들어간다고 새끼 밴 어미 삼색이와 도도를 돌멩이로 쫓았었다. 그것을 보고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지금 내가 이 짓을 하고 있으니. 그래서 깡패랑 협상을 시도했다.
“어이, 깡패! 내가 시간 정해 너에게 밥을 따로 줄 텐께, 제발 애들 것 뺏어 먹지 말어라.”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한 깡패는 여전히 애들을 괴롭혔다. 깡패는 눈이 쭉 찢어진 건장한 사내처럼 보였다. 우리 집 나비들은 쨉이 안되었다.
그런 깡패가 먹을 것을 탐내다가 철조망에 딱 걸렸다. 눈앞에 얼쩡거리는 점박이만 잡히지 않았다.
마당에서 서성거리는 성길씨에게 말했다.
“아저씨! 점박이가 잡히지를 않어요”
“그게 뭔 일이라고.”
성길씨는 자세를 낮췄다.
“나 아비야! 이리 와 나 아비야.”
성길씨가 달콤한 목소리로 점박이를 불렀다. 마치 솜사탕이 입안에서 녹는 것 같았다. 나는 저 사람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 새삼 놀랐다. 나비들은 나랑 놀다가도 그가 나타나면 재빨리 그의 발뒤꿈치를 따라다녔는데 이유가 있었다. 점박이는 영문도 모른 채 성길씨에게 다가갔다. 성길씨는 쪼그리고 앉아 점박이에게 팔을 벌렸다. 마치 아기를 안으려는 듯. 점박이는 발을 크게 들고 그에게 안겼다.
성길씨는 나비를 꼭 안아 철망에 넣었다. 저렇게 쉽다니! 그런데 나는 이틀 동안 생쇼를 했다. 참으로 허망했다.
나나 성길씨나 속을 들여다보면 다 외로운 사람들이다. 사람한테 채울 수 없는 허전함을 강아지나 고양이한테 얻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것들이 우리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저들에게 기대어 사는 것이다.
중성화 수술 끝나고 돌아올 녀석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이틀 동안 외출하지 않고 기다렸다. 새끼를 낳는다는 이유로 빗자루나 돌멩이로 쫓기는 악순환을 끊어야 했다.
나비들아! 미안하다. 갔다 오면 맛있는 거 해줄게. 일부러 고자를 만들어 사내구실도 못하게 하고 그 옛날 같으면 궁에 들어가 왕이라도 떠받들며 살았을 텐데, 나비들아! 잘 끝내고 와라.
수술이 끝난 나비들이 철망을 열어주자 밭으로 달려갔다. 수놈은 오른쪽 귀 암컷은 왼쪽 귀가 잘렸다.
해가 지자 바람이 쌀쌀했다. 새끼들 중성화 수술도 끝내고 홀가분한 맘으로 평상에 앉아있었다. 산밑에서 혼자 사는 나를 자주 들여다보는 미선이가 레드와인을 들고 왔다. 멀리서 고양이가 할퀸 불빛이 초병처럼 군데군데 서 있다.
“아따, 레드와인이 우리 집 분위기 허고 안 어울린다야.”’
미선이는 글라스에 와인을 따르며 말했다.
“요새 애들이 결혼을 안 하려고 해. 결혼해서 애를 낳아야 하는데...”
“나, 미얀마 갔을 때 부러운 것은 꼬마들이 엄청 많았어야.”
“언니는 애를 낳은 적 없으니 할 말이 없는 사람이잖아.”
나는 픽 웃었다. 미선이는 딸이 결혼할 생각을 안 한다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집값은 오르지 교육비 지출은 장난 아니지, 젊은 애들이 뭘 믿고 애를 낳겠어.”
“요새 대학행 신입생환영회 헐 때 술 마시기 싫은 사람은 검정 팔찌를 찬대, 마시고 싶은 사람은 하늘색 팔찌를 차고, 사람도 결혼해서 애 낳기 싫은 사람은 빨강 팔찌를 차고, 애 낳고 싶은 사람은 노랑 팔찌를 차면 쓰겄네. 미리 알려주고 서로 선택하는 거여.”
산 뒤로 노을이 물들어가고 와인병이 거의 비워져 갔다.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집 불빛만 환하다. 고양이들이 지붕 위에서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