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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품들의 사계

그들의 우정은 오줌발보다 세다 173

by 불량품들의 사계

그들의 우정은 오줌발보다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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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0도, 컨테이너에서 풀치가 걸어 나왔다. 그는 마당에 입구에 들어서면서 얼굴까지 칭칭 감은 목도리를 풀었다. 입을 닭똥구멍처럼 오므렸다. 휘파람을 불었다. 입술 주름 사이로 쇳소리만 새어 나왔다. 담배 연기처럼 새어 나온 입김은 허공에 흩어졌다. 휘파람 대신 기침만 해댔다. 어쨌든 뜨거운 입김이 새어 나온다는 것은 산자만 할 수 있다. 다행이다.

“이렇게 추울 때는 성길씨에게 잘 보여 방에서 들어가서 자라.”

나는 말을 끝내고 방에 들어왔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풀치는 입김을 내뿜고 마당에 그대로 서 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두유를 가지고 나갔다. 풀치 손에 두유를 들려줬다. 잠시 후 두유를 든 손은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고양이 똥통을 들고나갔다. 처마 아래 물그릇은 아이스팩처럼 굳었다. 성길씨는 패딩 잠바에 레옹 모자를 쓰고, 풀치는 귀마개가 달린 모자를 쓰고 수돗가에 비척거리며 서 있다. 시베리아벌판에서 온 차림이었다. ‘얼어 죽지는 않고 싶나 보군’ 성길씨가 담배를 손끝으로 비벼 끄며 어정어정 나에게 걸어왔다. 풀치는 비틀거리며 뒤따라왔다. 풀치는 무슨 수를 썼는지, 성길씨 집에서 먹고 자고 술도 마셨다.

‘꼴좋다, 구신들아.’

속으로 말하고 있는데 성길씨가 한 발짝 다가와 말을 툭 던졌다.

“올 사월까지 집 다 비워주래요.”

“무슨 소리예요? 사람이 살고 있는디.”

“LH에서 서류 날아왔어요.”

“나헌테는 집 나가라고 했니 마니 이런 말 허지 말래잖아요? 불안허다고, 글고 말 나왔다고 하루아침에 마을을 통째로 부수겄어요?”

“그쪽은 내가 말을 하면 씹어요.”

“그쪽이든 저쪽이든, 내가 언제 씹었어요? 순서를 말허는 거지.”

“지금 그러잖아요.”

“아저씨 말대로 허자면 LH에서 진즉 다 나가라고 프랑카드 마을 입구에 걸어놨는디, 왜 이사 안 갔어요.”

“...... 그거야 뭐.”

“그리고 아저씨는 곧 이사 간다먼서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성길씨는 곧바로 얼굴이 찌그러졌다. 풀치에게 고개를 돌렸다. 싸했다. 여름날 작달비라도 퍼부을 표정이었다. ‘어쩌 이상허다’ 성길씨와 눈이 마주친 풀치는 불안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더는 말 하기 싫어 집으로 들어왔다. 문을 닫자마자 갑자기 성길씨 목소리가 마당을 휘몰아쳤다.

“야, 이이새끼야 내에가 어언제 이이사 가아안댔어, 새에애앵각 해에보온다아고 해앴지. 이 씨이파알할 새애끼가 너어 주우글래?”

성길씨는 흥분하면 말을 더듬는다.

나는 급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성길씨는 짝퉁 아디다스 슬리빠를 벗어 풀치에게 던졌다. 풀치 가슴에 정통으로 맞았다. 하기야 저 정도 거리면 파리도 맞히겠다. 성길씨는 그것으로 분이 안 풀렸는지, 빛바랜 하늘색 플라스틱 빗자루를 집어던졌다. 닥치는 대로 집어던졌다. 풀치는 ‘취권’ 영화에서 코 빨간 ‘성룡’ 스승처럼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면서 피했다. 그래도 맞을 건 다 맞고 앉아 있었다. 풀치가 개도 아니고 이건 너무 심하다 싶었다. 나는 성길씨 가 던진 빗자루를 들고 말했다. “내 빗자루가 뭐 하고 그럽디까” 나는 소심하게 풀치 편을 들었다.

성길씨가 저렇게 더 날뛴 것은, 어제저녁 우유와 감자를 풀치가 내 집 문 앞에서 먹고 있었다. 그것을 성길씨가 보았다. 성길씨는 나를 이러지도 못한 것에 더 열이 났다. 날마다 술에 취해 평상에서 소리 지르고, 텃밭에 오줌 싸고, 트로트 틀어놓고 온갖 지랄을 떨어도 내가 풀치에 관대한 것에 화가 났다. 성길씨는 술 마실 때마다 나에게 한 말 또 하고 또 하고 밤새 전화를 하지만 그게 주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술 마실 때마다 주사가 없다고 나에게 누누이 각인시킨다. 그래서 집주인으로서 체면을 지켰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알아주지 못한 것과 풀치를 어떻게 하지 못한 것에 자신에 뿔따구 난 것이다. 풀치는 겸사겸사 폭발한 성길씨에게 날벼락을 맞았다. 풀치는 취권 놀이 멈추고 비틀거리면서 컨테이너로 도망갔다.

성길씨는 나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풀치 뒤에 대고 쌍욕을 했다.

“너어 우우리지입 바알도 디이지마 씨파알새애끼야.”

나한테 퍼부을 욕을 어째 풀치에게 하는 것 같았다.

“너어 나아랑 수울 마아실 새앵각 하아지도 마, 주우겨버어릴테에니이까아.”

만만한 게 홍어 뭐라고, 성길씨는 만만한 게 풀치였다.

며칠 전 성길씨는 풀치에게 술 마시면서 말했다. “나도 곧 이사 갈 거야” 하면서 연탄창고에서 돈 될 만한 거 풀치에게 가져가라고 했다. 그날 풀치는 나에게 “누님도 대비하세요”라는 뜻으로 성길씨 비밀을 말해줬다.

성길씨는 풀치가 말했다고 단정 짓고 풀 한 포기 없는 마당을 뒤집은 것이다.

다음날 날 아침 풀치가 성길씨 마당에서 왔다 갔다 했다. 머리 꼴을 보니 둘이 술 마시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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