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돌멩이 172
수상한 돌멩이
나는 구름보다 먼저 도착했다.
이곳 산밑으로 이사 온 해 초여름이었다. 10년 훨씬 넘게 일한 가게 문을 닫고 쉬고 있었다. 얼마나 쉬었다고 불안했다. 무엇을 먹어도 땡감 같았다. 무작정 시동을 걸었다. 나도 모르게 만리포바닷가로 달리고 있었다.
식당 앞에 차를 세웠다. 칼국수를 먹은 후 모래 위를 걸었다. 파도는 바위를 때리고 올라와 내 발을 씻어주었다. 맨발을 적신 물은 서서히 물러났다. 검은 돌멩이가 햇빛에 반짝거렸다. 나는 돌멩이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돌멩이를 내려다보다가 백사장 끝까지 걸었다. 발이 멈춘 곳에 동글동글한 돌들이 흩어져 있었다. 입고 있던 티를 배꼽 위로 걷어 올려 일곱 살짜리 주먹만 한 돌멩이를 주워 담았다.
집에 돌아와 물에 씻은 돌들을 수건으로 닦았다. 나는 평상에 오롯이 앉아 있는 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판기 갖다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커피 팔면 어때?”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맞다. 돌멩이에 시를 적자.’
봄, 반신욕
내 몸에 이렇게 많은 눈이 있는 줄 몰랐다
그러나 눈물은 나지 않았다
내가 쓴 반신욕 시다. 이 시를 필두로 검은 돌, 흰 돌들에 사인펜으로 시를 썼다.
'천지가 돌팎인디 돈 벌일 만 남았구만.'
나는 들떴다.
아파트에서 주워온 나무로 만든 장의자가 평상 옆에 있었다. 등받이가 없는 장의자에 화분이 올려져 있었다. 화분을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해당화가 핀 마당 입구 쪽으로 장의자를 들고 가 앉혔다. 의자에 차돌멩이를 나란히 진열했다. ‘한 개에 천 원’ 에이포 용지에 써서 돌 옆에 놓았다.
다음 날 정오 나는 돌멩이 자세를 수시로 바꾸고 있었다. 산밑에 사는 나를 갑갑하게 생각하는 친구가 놀러 왔다. 친구는 마당으로 텃밭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말했다.
“이거 천 원이야?”
“응,... 아니. 그냥 가져가.”
나는 무슨 잘못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물끄러미 돌을 내려다보며 그늘처럼 웃었다.
돌멩이에 시를 입혔지만, 돌은 돌일 뿐인데, 시 하나 적었다고 돌멩이가 마치 꽃집에 꽃이라도 되는 양 생각했다. 에이포 용지를 슬쩍 치웠다.
그래 봤자 내 빈 주머니를 이미 보여 줬다. 돌멩이와 나는 주먹 하나 들어갈 틈이 없었다. 몽돌 이마에 햇살이 붉게 내려앉았다.
친구와 수다를 떨었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도 이가 아리듯 돌이 신경 쓰였다. 땅거미가 지고 친구가 갔다.
나는 배웅하고 돌아오다 감나무 이파리를 따 손으로 비볐다. 짓물러진 이파리를 던졌다. 하필 이파리가 의자에 떨어졌다. 잎이 떨어진 자리에 눈이 멈췄다. 돌멩이가 세종대왕 두 장을 깔고 앉아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돌을 판 건지 시를 판 건지. 꽃은 서서 피고 나는 돌아서서 구겨지고 말았다.
그날 밤 발등을 무는 모기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바깥으로 나갔다. 나는 의자를 들어다 처마 밑으로 옮겨놓았다. 돌들을 평상 귀퉁이에 갖다 놓았다. 화분을 의자에 올려놓았다.
나는 하루만에 종치고 막내렸다.
언제였던가. 돌 속으로 번지며 스며든 시를 데리고 돌멩이는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