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침 소리에도 위로받는 밤이 가고 176
기침 소리에도 위로받는 밤이 가고
대설주의보가 핸드폰에 떴다. 그 위로 성길씨 번호가 떴다.
“영하로 떨어지니까 수돗물 틀어놓으세요.”
화가 잔뜩 난 목소리였다.
“틀어났어라이.”
“뒷방도 물을 틀어야 하는데 문이 잠겨서.”
“문 뚜드려봐요.”
“이사 갔어요.”
“뒷방 할매 이사 갔다고라이.”
“말도 없이 갔어요”
성길씨는 전화를 단번에 끊었다.
며칠 전 마당 입구에 쓰레기가 잔뜩 쌓아져 있었다. 나도 추워서 집 안에만 있었다.
오후에 성길씨랑 차를 타고 시장에 갔다. 그는 요새 술에 취하지 않아도 조수석에 탄다. 성길씨는 뒷집 할매가 간다는 말도 없이 온다는 말도 없이 가버려 섭섭함을 내비쳤다.
“내가 십수 년을 넘게 얼마나 참고 살았는데, 핸드폰 사건도 참았고.”
“아저씨가 참았다고요.”
“내가 참았지요.”
‘할매에게 푸닥거리한 거 내가 본 거 만해도 수십 번 인디.’
성길씨는 복잡한 감정을 토로 중 핸드폰 사건을 꺼냈다.
성길씨는 작년 여름 시내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 택시 타고 집에 왔다. 오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새벽에 일어났다. 핸드폰을 찾았다. 하늘로 솟았나. 핸드폰은 어디에도 없었다. 택시비 계산한 영수증은 바지 주머니에 있었다. 그는 핸드폰이 집에 있다고 단정했다. 카드를 핸드폰 케이스에 넣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는 아침 내내 이불 속, 풀 속을 이 잡듯 뒤지다가 나를 불렀다.
‘아침 일찍부터 또 뭔 일일까.’
“내 전화로 전화 좀 걸어주세요”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신호는 가는데 벨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는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마당 입구서부터 시작해 심지어 하수구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눈을 뒤집어 까고 찾아도 핸드폰은 없었다. 나도 같이 찾다가 집에 들어왔다. 귀신 곡할 노릇이었다.
핸드폰을 말하는 그의 분노 게이지는 차 안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그의 침은 내 오른쪽 얼굴로 튀었다. 침을 닦으며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성길씨는 엷게 웃으며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는 무용담을 시작했다.
“내에가 해앤드으폰을 차아아잖아요.”
그는 말을 더듬었다.
“아저씨, 천천히 숨을 쉬쑈. 그때 어떻게 찾았다고 했지요.”
“치인구 부울러 추적했더니 우리 집에서 핸드폰이 떴어요.”
“그래서라이.”
“친구랑 밥 먹고 전화 걸었는데 신호가 시내에서 잡히는 거예요.”
“이건 또 뭔 일이래요. 근디 신호가 어떻게 잡혔어요.”
“그거는 알 필요가 없고요.”
“경찰한테 연락했구나.”
“경찰한테 연락을 왜 합니까. 특수 절도도 아니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데.”
성길씨 웃음은 경찰한테 도움 얻지 않고 혼자 해결했다는 뿌듯함이었다.
“아따, 그래서 잡았소 못 잡았소?”
“덕풍시장 쪽으로 신호를 따라갔지요.”
“따라가서 잡았다는 뜻이지라이?”
“신호가 핸드폰 가게에 옆 약국에서 딱 멈추는 거예요.”
“누구였어요?”
“나, 참 기가 막혀서.”
그는 말을 할 듯 말 듯 입술을 딸싹거렸다.
“아따, 누구냐고요?”
“나를 보고 깜짝 놀라더니 핸드폰을 얼른 주는 거예요.”
“근께 누구냐고요?”
무슨 뜸을 저렇게 들이는지,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뒷방이요.”
“뭐라고라이, 그런께 우리 집 뒷방 할매요?”
“예, 깜짝 놀라더라니까요. 뻔뻔하게 말이야.”
“할매가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왔으까 허고 더 놀라지 않았으까요.”
나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카드도 달라고 했죠.”
“카드요?”
“어젯밤 택시비를 카드로 긁고 핸드폰 케이스에 카드를 반사적으로 집어넣었겠죠.”
“할매 대단허다. 카드까지.”
“카드는 없다는 거예요. 즉시 정지시키고 농협에서 카드 발급받아왔죠.”
다음 날 새벽 할매는 성길씨 집 입구에 카드를 놔두었다. 성길씨 말에 의하면 핸드폰을 팔려고 시내로 나갔다. 할매는 핸드폰 대리점 가기 전 약국에 잠깐 들렀다. 핸드폰을 꺼버렸으면 할매는 추적을 당하지 않았다. 벨 소리만 줄여서 들켰다.
그는 이일도 경찰에 신고 안 했는데 말없이 갔다고 더 서운해했다. 성길씨는 나에게도 말 안 했었다.
성길씨는 할매 이사 가는 날, 외출하지 않고 집 안에 있었다. 마당이 조용해 밖으로 나갔다. 어느 틈에 갔는지 할매 집 문이 잠겨있었다. 하기야 할매 짐이라고 해봐야 몸 하나였으니.
성길씨는 수돗물을 틀어야 얼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섭섭함의 핑계였다. 아침저녁으로 성길씨, 성길씨 노모, 할매 셋이 마당에서 말벗하다가 싸우다가 할매랑18년을살았다.
나는 할매가 나보고 쌀 포대를 가져갔다고 하는 날부터 거리를 두었었다.
성길씨는 차에서 내릴 때까지 쉬지 않고 할매 이야기를 했다.
“몇 달 치 월세를 밀려 내보려고 경찰까지 동원한 적도 있었어요.”
성길씨 말을 가만히 듣고 있는데, 할매에게 월세를 받을 수 없는 아쉬움이 더 큰 거 같았다.
하루아침에 정을 베고 간 할매를 그리워하는 줄 알았는데. 에라 이......
작년 가을이었다. 할매 TV가 고장 났다. 성길씨랑 할매랑 고장신고 번호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고장신고 번호를 알아내려 처음으로 뒷방에 들어갔었다. 창문이 없었다.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쓰레기 같은 물건이 사방에 흩어져 발 둘 곳이 없었다.
그 뒤로 문 앞에 과일이면 음식을 갖다 놓았다. 할매는 어느 날 수제비를 가져왔다. 며칠을 싱크대에 두었다. 할매 방이 생각나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죄를 지었다.
할매 방이랑 내 방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벽이라 해봐야 합판이다. 한집에 살듯 할매 기침 소리가 들렸다. TV 소리가 내방까지 밤새 들렸다. 새벽이면 더 크게 들렸다. 성길씨는 나에게 TV 소리 괜찮냐고 묻곤 했었다. 나는 시끄럽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 천장에 고양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더 컸다.
그동안 뒷방의 온기로 내 방 온도가 1도는 올라가지 않았었을까.
텃밭 끝에 야외 이동식 화장실이 있다. 이사 온 지 며칠 지났을 때였다.
“화장실 보기 싫은디 뜯어버릿쑈.”
“뒷방 할머니가 사용해요”
성길씨는 창피해하며 말했었다.
눈을 맞으며 색 바랜 화장실이 덩그러니 서 있다. 열쇠를 들고 마당을 살피며 화장실 가던 할매. 기침 소리에도 위로받던 밤이 지나가고 있다. 눈이 그치고 싹이 올라오면 주름진 꽃도 말벗을 찾아 나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