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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품들의 사계

자전거 바퀴를 굴리고 싶다 184

by 불량품들의 사계

자전거 바퀴를 굴리고 싶다



1

‘아따, 겁나게 춥네.’ 창문에 간간이 눈발이 달려든다.

핸드폰 화면에 ‘고골 전원주택’이 떴다. 집주인 성길씨다. 이사 오려고 집 보러 왔을 때였다. 좀 있어 보이려고 ‘고골 전원주택’이라고 핸드폰에 입력했었다. 이놈의 허세는 쥐뿔.

“잠깐 나와 보세요.”

“왜요?”

“자전거 샀어요.”


새삼스럽게 자전거여. 마당 가 새싹 돋은 단풍나무 아래 그가 서 있었다. 헬멧을 쓰고 다리를 살짝 흔들며 서 있었다. 자전거보다 그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 같았다. 선글라스를 굳이 실내까지 쓰고 들어와서 벗는 사람 (눈이 아픈 사람과 쌍꺼풀 수술 한 사람 제외하고)처럼 말이다. 나도 그런 적 있었다.

“아우! 멋있어요.”

그는 웃다 말고 어깨를 더 넓혔다.

“자전거 멋져부네요.”

성길씨는 이게 뭔 소리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하, 백만 원 줬어요.”

“그렇게 보이요. 바쿠가 열두 개 달린 트럭 바쿠만 허네요. 헬멧도 샀소?”

“그럼요.”

나는 얼마 전 집에서 지인들과 일일 포장마차를 했었다. 닭똥집, 홍어, 닭발, 계란말이, 연어 샐러드가 메뉴였 다. 말이 포장마차였지, 친목을 다지고 나에게 도움을 주고자 주변에서 제안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어제의 용사들이 뭉쳤다. 키 크고 랩을 잘하는 세용 동생, 속 깊은 서춘 동생과 스키를 기가 막히게 티는 친구가 헬멧 쓰고 잠실서 자전거 타고 왔었다. 남자 시인들도 자전거 타고 달려왔었다. 그때 평상서 모여 놀던 여자 동생들이 자전거로 몰려갔다. 동생들은 자전거 페달을 돌리면서 멋있다고 했다. 동생들이 시인들에게 평상에 앉으라면서 술을 권했다. 그날 성길씨가 유심히 그 광경을 봤다.


성길씨는 돈 없다고 날마다 죽는 소리해놓고 자전거를 샀다. 나는 눈발 속에서 자전거 바큇살을 앞뒤로 만져보고 페달 위로 발을 올려보았다. 자전거 옆에 앉아 있던 고양이 순둥이는 수돗가 물그릇을 핥고 있다.

성길씨는 내가 벌벌 떨든 말든 끝없이 자전거 자랑을 했다. 갑자기 나에게 미안했는지 옆집도 좋은 데로 이사 가게 될 거라고 위안 아닌 위안을 했다. 나는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전거 겁나게 잘 달리겄소.”

성길씨는 이사 가려고 맘먹고 나서부터는 LH 보상문제에 적극적이었다. 나에게 숨기는 것도 많아졌다. 나는 내 집도 아니고 재개발한다는 정부의 기습발표 후 전입신고를 했기 때문에 관심도 없다.

사람들 입 모양이 다르듯 주민들 이주에 관한 별의별 말들이 빙빙 돌아다녔다.

내가 역마살이 있는 게 아니라 주위에서 나를 어디론가 몰고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길씨는 자전거 자랑을 계속 늘어났다. 나는 건성으로 맞장구를 쳤다.

“아따. 먼 놈의 날이 이러고 춥대, 춘래불사춘이여.”

성길씨는 자전거 기름칠을 하다 말고 나를 쳐다보았다.

“눈 그치면 자전거 타고 양평 돌고 올라고요.”

“입 돌아가요.”

말을 하고 집으로 쌩 들어와버렸다.

나도 창고에 자전거를 처박아 놓았다. 자전거를 꺼내 바퀴에 바람 집어넣어 시장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만 먹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집 앞에 세워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배웠다. 도시에서는 사람만 보이면 안장에서 내려 끌고 가기 일쑤다.

그나저나 성길씨가 자전거 길 따라 양평 같이 가자고 하면 어떡하지. 떡 줄 사람 생각도 않는데 쓸데없는 없는 걱정 하고 있다.

내 차로 성길씨 시장 보러 갈 때나 막걸리 심부름해 주고 그에게 기름값을 받았었다. 이제 종 쳤구나, 생각하니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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