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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품들의 사계

자전거 바퀴를 굴리고 싶다 185

by 불량품들의 사계

자전거 바퀴를 굴리고 싶다



2

성길씨는 헬멧도 토시도 벗어던졌다. 그렇게 양수리를 리던 자전거 바퀴는 멈췄다. 그는 아침부터 수돗가에 골똘히 서 있다. 텃밭에 물을 주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기가 막힌 자전거를 봤는데 사 백만 원이래요. 깎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같이 가볼래요.”

“자전거가 왜 그리 비싸요? 글고 자전거 산 지가 얼마나 됐다고.”

“천만 원짜리도 있어요. 확실히 달라요. 언덕길도 엔진으로 올라가고.”

“그러먼 먼 운동이 된다요.”

“팔당댐 근처 하남 자전거 대리점 다 돌아다녔는데 그 집 것이 제일 좋아요.”

그는 자전거에 꽂혀 내 말은 떨어지는 벚꽃이었다.

그는 나를 볼 때마다 자전거 보러 가자고 졸랐다. 내가 지각시도 아니고 내가 사 줄 것도 아닌데. 하기야 내 돈 들어간 것도 아니고 소원이라는데.

“가요, 갑시다.”


집에서 4km 떨어진 자전거포였다. 건물 뒤에 차를 세우고 뒷문으로 들어갔다. 가게 밖에 빛바랜 자전거 몇 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그는 가게 안 자전거 한 대 앞으로 가서 멈추었다. 그가 멈춘 곳은 말로만 듣던 자전거였다. 집에 있는 자전거랑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뭐가 단단히 쓰였구만’

성길씨는 자전거를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블루투스도 있고, 에어브레이크도 달려있고, 자잘 한 짐을 담을 수 있는 가방, 물통은 서비스로 달아준다고 했다고. 애들이 장난감 가게 가서 엄마한테 기능을 말하듯 나에게 설명했다.

그는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주인에게 불편하다고 했다. 3만 원에 손잡이를 바꾸어주라고 했다. ‘신났군, 신났어’ 나는 깎을 속셈으로 자전거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성길씨는 내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내게 허락하라는 듯이 안장 먼지를 손으로 털어내며 자전거 앞뒤를 돌면서 간곡하게 눈빛을 날렸다.

‘내가 사 주는 것도 아닌디 저 눈빛은 뭐여?’

주인은 성길씨에게 백칠십만 원에 가져가라고 했다. 나는 주인에게 물었다.

“사장님, 사백만 원짜리를 왜 이백삼십만 원이나 깎어 주요?”

“그것은 사 년 동안 디스플레이를 해 놔서요.”

“그럼, 밖에다 사 년 동안 세워 논 것을 백칠십만 원이나 받는다고요?”

“사기 싫으면 그만둬도 돼요. 내가 타면 되니까. 어제도 내가 팔당댐까지 타고 갔다 왔어요.”

“옴매. 타 불기까지.”

‘날강도가 따로 없네’ 한마디 하려고 주인에게 바짝 다가섰다.

나는 참다가 도저히 아니다 싶으면 그 자리를 조용히 떠나든가, 전화번호를 지우든가, 안 볼 생각을 하고 조목조목 따진다. 따지는 일은 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오늘 한 번 질러버리려고 했는데 성길씨가 철벽처럼 가로막고 섰다.

“돈 찾아올 거예요.” 성길씨는 나에게 눈을 깜박거렸다.

“어디 아프요?”

나는 깜박거리는 그의 눈을 보며 신경질을 부렸다.

주인은 나와 성길씨 관계를 몰라 입을 닫았다. 서로 부르는 호칭이 부부도 아니고 늙은 애인 관계도 아니고 근래 보기 드문 관계? 주인은 힐끔힐끔 나를 보았다. 현금을 쥐고 있는 실권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성길씨는 주인이 자전거를 안 판다고 할까 봐, 내 소매를 잡아당기며 밖으로 끌고 나왔다. “가게 안에 절대 들어가지 마세요.”

간절한 눈빛을 날리며 애원하듯 신신당부하였다. 그는 현금 찾으러 경보하듯 걸어갔다.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따지려다 참았다. 성길씨 처지가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나이 먹도록 노모 모신다고 술 마시고 노래방 한 번 제대로 가기를 해, 남들 다 가는 여행 가서 자고 오기를 해, 그렇다고 차가 있어. 그래, 맘에 드는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스트레스 푸쑈!’ 어째 꼭 내가 사 주는 거 같다.

그의 말대로 시멘트 바닥에 앉아 착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성길씨. ‘아따, 지겹네’ 하던 참에 그는 이마를 닦으며 걸어왔다.

“왜 이리 늦었어요?”

“걸어갔다 오느라요.”

성길씨 말을 듣다 놀랐다. 걸어서 가기는 꽤 먼 거리에 농협이 있었다. 나는 성길씨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인은 신사임당을 받들고 있었다. 성길씨는 자전거 앞에만 서면 작아졌다. 종 쳤다.


자전거를 끌고 나와 셋이 차에 실었다. 성길씨는 집으로 오는 길 차 안에서 말했다.

“며칠 전 자전거를 사 차로 싣고 오기로 맘먹었어요.”

“돈도 쪼들리면서 어째 일을 저질러부렀소.”

“집에 있는 자전거는 아는 형님한테 살 때 가격 그대로 백만 원에 팔기로 했어요”.

“탔잖어요?”

“형님이 그 가격에 그런 자전거 못 산다고 백만 원 준대요.”

형님이 전립선암에 걸려 운동을 해야 하는데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백만 원 확보하고 또 사백만 원짜리 자전거를 백칠십만 원에 샀으니까, 칠십만 원 주고 산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내 계산으로는 백칠십만 원 주고 산 것 같은디...

두 못난 짱돌끼리 머리 맞대 봐야 거기서 거기. 그래도 내 계산이 맞는 거 같은데.

그는 자전거를 사면 싣고 집에까지 오는 게 걱정이 태산이었다고 했다. 내 차가 짚 차라 나에게 가자고 졸랐던 것을 알았다.

“차비로 삼만 원 줄께요.”

“됐어요. 오늘 돈도 많이 썼는디.”

“어차피 차 불러도 돈 줘야 해요.”

“고마워요.”

나는 만원을 확 빼주었다.

그는 날마다 자전거에 기름을 바르며 광을 냈다. 얼마 안 가 자전거는 그의 집 앞에 서 있다. 벌써 싫증이 난 거 같다. 여자도 저렇게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일까. 그래서 장가를 안 가는 건지 못 가는 건지,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성길씨는 자전거를 타고 오면 되는데 굳이 나를 데려갔을까.

성길씨는 밀차를 끌고 밭에 가다 말고 말했다.

“어제 엔진 바꾸러 그 집에 갔어요, 엔진값이 엄청 비싸요.”

“얼만디요? 30만 원요?”

“그것보다 더 비싸요.”

“50만 원요?”

“아니요, 80만 원요.”

“예? 그 돈 주고 바꿨소?”

“설마, 내가 짱돌입니까. 그 돈 주고 바꾸게.”

그는 특유의 눈꼬리를 내리면서 웃었다. 성길씨는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기어이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이번에는 신중하게 행동을 하는 것 같았다.


성길씨는 자전거 주인이 솔직하게 말했다고 했다. 자전거 원가는 80만 원이고 어떤 사람이 할부로 사 갔는데, 돈을 갚지 못해 자전거를 들고 와버렸다고. 나는 자전거 주인이 솔직하게 말한 게 오히려 그날 점포에서 했던 말들과 행동이 변명과 거짓말처럼 들렸고, 성길씨는 그의 말을 고백처럼 받아들여 그에게 감동 먹은 것 같았다. 성길 씨는 자전거에 관한 것이라면 무조건 그 집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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