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항은 눈을 감지 않은가 봐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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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바다에 빠진 지 오래다. 내 삼십 대 대포항에서 오징어를 토하도록 먹었다. 마을 청년들이랑 달달하고 그 아슬아슬 밤을 같이 새웠던 수경이와 미선이가 생각났다.
그 시절 냄새와 다르지만, 고향 친구들과 오니 그나마 항구가 달라 보였다.
우리는 일부러 허름한 튀김 가게에 들어가 모둠 튀김을 시켰다.
새까맣던 비바람이 이슬비로 바뀌었다. 나는 튀김집에서 혼자 나와 항구를 향해 걸었다. 어지간한 비는 우산 없이 걷는다. 나는 불안을 느낄 때 산을 찾고 답답할 때는 바다를 찾는다. 딱히 이유는 없다.
파도가 흰 거품을 뿜으며 항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너는 뭐가 그리 바쁘냐’
몇 년 전 바다에 내리 꽂히던 불빛과 지금 불빛이 머릿속에 겹쳐졌다. 그때 같이 왔던 얼굴들이 부유물처럼 바다에 떠오르며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껏 살아온 내 근간을 하루아침에 흔들어버린 그들. 우리는 이곳에 간혹 왔었다. 가장 가까웠던 그들로 인해 당시 나는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그때 내가 견뎌야 했던 ‘소문의 벽’은 혹독했다. 거짓과 진실이 뒤엉켜 어느덧 검은 바다처럼 혼돈의 덩어리가 되더니 아무 상관도 없는 나를 덮쳐버렸다. 나는 내 의지와 달리 소문의 중심이 되어버렸고 벗어날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 수도 있구나! 세상은 진위와 상관없이 소문만으로도 굴러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나는 십 년 넘게 운영한 카페 <집>을 버리고 남한산성 밑으로 들어왔다. 그 당시 거울 속에서 사나운 짐승 같이 변해 있던 내 얼굴을 잊을 수 없다. 내 전부였던 카페 <집>을 버림으로써 분하고 억울한 그 개미지옥 속에서 벗어났다.
‘잘잘못이 문제가 아니었어, 진실이란 언제나 다 밝혀지는 것도 아니야’ 망각과 기억 사이로 시간이 흘러 찌꺼기처럼 남은 회한마저 잊히길 바라던 것이 당시 나의 유일한 기도였다.
‘대포항은 여태 눈을 뜨고 있었네.’
머리카락에서 빗물이 얼굴로 흘러내렸다. 윗옷을 끌어다 얼굴을 훔쳐냈다. 물 묻은 손을 바지에 닦았다. 파도는 끊임없이 방파제를 때렸다. 손에 묻은 빗물을 닦아내듯 기억을 세탁기에 돌려 새파란 하늘 아래 말릴 수 있다면, 언제까지 싱싱할 것 같았던 내 주름진 손가락도 서글프지 않을 텐데. 바다는 추억도 한숨도 삼키지만, 모멸감은 생선 가시처럼 수면에 걸려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잊을 거야’ 이런 말은 이제 위로가 되지 않는다. 착한 척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던 주름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을까.
‘세상 별것 아니다, 뭐 이런 뜻이야 뭐야.’
“왜 혼자 궁상을 떨고 그래.”
나의 뒷모습을 보고 기분을 알아챘는지 영아가 다가와 우산을 받쳐주었다. 갑자기 나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바다는 때론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아픈 것들을 불러들이기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파도는 한계령 너머에서만 철썩이는 것은 아니었다.
인순이는 물치항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등대 불빛이 검은 바다 위에서 춤을 추듯 흔들렸다. 우리는 여느 방문자들이 그러하듯 모래밭까지 밀려오는 파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고 찍혔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이름을 바다를 향해 불러보기로 했다.
누구는 첫사랑을 누구는 자식 이름을 불렀다. 인순이는 두 손을 모으고 헤어진 남편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아니 그렇게 속을 썩앴다고 지랄 옆차기 했싸드만.”
내가 어이없다는 듯 한소리를 했다.
“그 개 쌔끼.”
진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만 가자.”
가까이서 노래가 들려왔다. 대형천막을 치고 무명가수들이 장구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모래밭 둥근 탁자 앞에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둘러앉아 철썩이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강원도 아리랑’에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소주잔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80년대 디스코 풍의 춤을 췄다. 나도 나이 든 늙은 가수의 목에 핏대가 올라올 때마다 뒤에서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렇게 한바탕 정체를 물을 필요가 없는 열정이 모래사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아홉 시가 되었다. 나는 ‘주중 숙박 6만 원’ 호텔 앞에서 또 바람을 잡았다. 과감하게 말을 깔았다.
“오늘 자고 갈까? 숙박 주중 6만 원.”
“뭐?”
약간 놀란 영아가 말했다.
“나는 무조건 오케이.”
누가 봐도 눈이 커 겁이 많게 생긴 진여가 말을 받았다.
“나는 안 돼! 내일 일한다.”
운전자가 가자는데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영아와 진여는 나보고 알아서 하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차 안으로 들어가 오이지처럼 찌그러졌다.
낮에 백숙을 먹을 때 요즈음 티브이면 영화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채 시인이 있었다. 밥을 먹다가 바다 보러 가자는 친구의 제안에 일사불란하게 팀워크 맞추는 것을 보고 신기했었다고.
‘어렸을 때부터 한 동네에서 함께 커서 그래요’
누구 집 굴뚝이 제일 높은지, 누구네 무화과가 제일 달고 맛있는지, 누구네 아부지가 바람이 났었는지, 누구네 숟가락이 몇 개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고향 친구들이라고 해서 서로 섭섭하고 삐질 일이 왜 없었겠으며 내색하지 않은 서운함이 왜 없었겠는가. 바닷가 시골 마을에서 서로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열다섯여섯까지 함께 커온 친구들은 숨길 어떤 것도 없다.
‘고향 친구들은 눈을 감아주고받아주는 바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