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대추나무 뒤에 어린 대추나무 서 있다 218
아픈 대추나무 뒤에 어린 대추나무 서 있다
몇 년 전 초여름이었다.
“대추나무가 꼭 사철나무처럼 생겼네.”
박학다식한 지향 친구가 평상에 앉아 말했다. 성길씨는 친구 말을 수돗가에서 앉아 들었다
“주인아저씨는 말로는 암에 걸렸다나.”
친구는 일어나 대추나무로 다가갔다.
“나무도 암에 걸려?”
“꽃도 안 피고 몸통도 허연 것 본께 그런 거 같어.”
내가 심어놓은 호박 넌출과 나팔꽃 줄기가 다래나무와 대추나무 가지를 칭칭 감고 있었다. 실타래처럼 얽혀 살살 풀려했지만, 호박 넌출이 끊어져 버렸다.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두었다. 저 지경을 만들어버린 것이 꼭 내 탓 같았다.
‘그래, 사람도 암에 걸리는디 나무라고 별수 있겄냐.’
호박은 성길씨랑 같이 따서 먹으려고 심었고 나팔꽃은 할머니가 좋아해 심었다.
성길씨는 친구가 가고 난 후 가지를 낫으로 다 베었다. 대추나무 그늘은 상추를 가렸었다. 햇빛이 잘 들어와 좋지만, 마음이 좋지 않아 나는 대추나무 몸통을 문질렀다.
그는 수일 내로 대추나무 몸통도 베 걸라고 했다. 그러나 차마 베지 못했다. 혹시 새순이 올라올지 몰라, 미련이 남은 것이다. 그러나 봄마다 아무 소식이 없었다.
성길씨는 내 친구들만 오면 말했었다.
“이 동네에서 우리 집 대추가 사과만큼 크고 제일 달아요.”
나도 덩달아 집에 놀러 온 친구들에게 자랑했었다.
사과 대추는 몇 개 열리지 않아 따 먹으면 빈 곳이 생겼다. 나는 성길씨 몰래 가지 안쪽에서 따 친구들에게 따 줬었다.
올봄소식이 왔다. 대추나무에서 꽃이 피었다. 죽은 대추나무 뒤로 어린 대추나무 한주 서 있었다. 꽃도 없이 서 있었다.
비바람, 눈보라, 낙뢰를 맞고 서 있는 나무에게 ‘니가 은제 크겄냐’ 나는 의심했지만, 결실을 본 것이다.
아침에 돌 지난 아기 주먹 한 대추 한 개 땄다. 꽃님이 대추나무에 발톱을 갈고 있다.
그러고 보니 고양이들이 유독 대추나무에서만 발톱을 갈며 놀았다. 어쩌면 냥이들이 괴롭혀 고사되지 않았을까 싶다. 말 못 한 고양이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