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강수민
정말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어쩌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일까지 동시에 해내고 있기 때문일까
간호계에서 임상이라는 곳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험난한 곳이었다.
나는 학생 간호사 시절부터 취업 후 당하게 될 태움까지는 예상했었다. 친구들에게도 “간호계는 취업도 백 프로, 태움도 백 프로다”라 확신이 찬 상태로 말하고 다녔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나는 끝내 태움에 적응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하나는 출근 2일 차부터 선배 간호사들의 돌발 질문이 엄청나게 많이 쏟아졌다.
수첩에 메모를 열심히 하던 나를 보고는 중간 연차의 선배가 첫날 말했다.
“수민아, 여기서는 학생 간호사 때처럼 메모만 하지 말고 물어봐야 해”
나는 “아… 네 알겠습니다”라며 답했지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곳엔 무언가 물어보기 껄끄러운 기류가 느껴지는데? 여기는 부딪히며 크는 곳이란 걸 포장해서 말하는 건가?’
나는 이때부터 “모른다”라는 답으로 한 번 더 배우는 쪽을 선택하며 쌩 신규의 초창기를 보냈다.
갓 태어난 병아리가 걸음마를 배우듯, 내가 갓 태어난 간호사가 되어 출근하게 된 두 번째 날에 주사기를 뜯고, 잡고, 다루는 것을 배울 때 옆에서 봐주던 내 프리셉터 선생님은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민쌤, 주사기 지금보다 더 빨리 뜯어야 해요. 학생 때처럼 매뉴얼대로 하면 시간 안에 다 못해요”
이 외에도 약품, 의료 도구의 종류 등에 대한 돌발 질문도 그치질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일단 다 모른다고 답하고 한 번 더 배우는 쪽을 택했다. 나는 확실하게 잘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생각이 들었다
‘저 말을 왜 벌써부터 할까?’
‘저 예상치 못한 질문들을 왜 할까?’
그리고 결론이 났다.
“여기 사람들은 내가 아직은 처음 들어와서 그나마 잘해주겠지만, 언젠간 나를 태울 사람들이다.”
처음엔 내가 틀리는 것보다 틀리고 난 후 태워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보단 선배 간호사들이 사고를 안 낼 것 같아 무서운 마음에 알든 모르든 일단 “모른다”라는 쪽의 답을 매번 했다. 확실히 알 때 움직이고 싶었다. 당장의 답을 말하는 것보다 그 후 감당을 못할 정도의 태움과 무언의 사건이 일어날까 무서워서 계속 배우는 쪽을 택하며 피했다.
이 이야기를 주변에 한다면 다들 이렇게 물어본다.
“그렇게 한다고 태움을 피할 수 있었냐?”
당연하게도 아니다. 어느 날 선배 간호사가 나를 불러 호되게 꾸짖었다.
“왜 벌써부터 10년 차 된 고연차처럼 행동하냐?”
“여기선 니가 나서지 않는 걸 업무태만으로 본다.”
“너는 배우러 온 게 아니라 일하러 온 거다”
그날 나는 30분 넘게 혼났다.
그때부터 나는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느렸다. 남이 느리면 “신규니까”라는 납득이 되는데, 나 자신이 느린 건 용서가 되지 않았다.
연차가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들은 흔히 불리는 “차지 간호사”의 역할을 한다. 차지 간호사란, 주치의 오더 확인, 환자 상태 파악 후 EMR(병원 전산시스템을 말한다.)을 통한 차팅 그리고 노티, 인계 업무를 주로 맡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몸으로 움직이기보단 컴퓨터 앞에 앉아 병원의 전산을 다룬다.
나의 프리셉터, 차지 업무를 맡은 선배 간호사들을 보며 연차가 쌓일수록 책임의 무게는 가중되지만, 몸으로 하는 일은 줄어드는 걸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느껴졌다.
“여기는 오래 버틴 게 권력이자 덜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이구나”
병원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보통 병동에서는 신규 간호사, 저연차 간호사들은 한 듀티에 혼자서 혹은 단둘이서 “액팅 간호사”의 역할을 한다. 액팅 간호사란, 환자 돌보기, 인젝션(주사를 놓는 업무), 투약, 드레싱, 수술 전후 처치, 피검사 및 각종 검사, 환자 및 보호자에게 입퇴원 안내 등을 맡는다. 여기다 신규라면 추가로 막내의 일까지 다 해내야 한다.
신규가 다 해야 하는 막내의 일이라면 1시간 혹은 그 이상 일찍 출근해서 물품 카운트, EMR에 액팅 체크와 검사 결과 확인, 아침 간호기록 남기기 등을 인계 시간 전까지 다 해놓아야 하며 흔히 물품 하나가 없어졌을 때 찾는 일, 간혹 간호조무사 선생님들이 안 계실 때는 바이탈(체온, 혈압, 맥박, 호흡, 산소포화도) 측정, bst측정, 환의 갈아입히기 등의 역할도 해야 한다. 특히 신규는 선배들과 똑같은 시간이 주어진 상태에서 더 많은 일을 쳐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때마다 나는 항상 숨이 조금 가빴다.
느리다는 말이 붙는 날에는 하루가 유난히 길었다.
간혹 즉각 반응을 잘하고 상대적으로 일의 속도가 빠른 신규가 들어오더라도 빠른속도 이상으로 기준치를 올려 가슴이 답답할 정도의 업무량을 더 몰아주고 혼낸다. 나의 동기 중 한 명이 이에 부합한 사례다. 그렇게 태움을 피할 수 없게 한다.
제시간 안에 끝내지 못할 만한 양의 업무 몰이를 시켜서 빨리 해내지 못한다는 식의 압박을 주기도 한다. 나의 동기에겐 업무 몰이로 많이 시켰고 나 같은 경우에는 돌발 질문으로 신규교육책에 없는 케이스인 당일 입원환자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공부 안 했나?”, “책에 없어도 따로 적어 가서 찾아보고 공부했어야지” 식의 지식 압박을 많이 가했다.
필자는 동기보다 액팅 업무에 소질은 없었지만, 성장하는 만큼 선배들의 기대치와 몰아주는 업무량이 더 올라가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오전 내내 투약, 콜 벨, 보호자 질문, 선배 간호사들의 질문이 겹치는 동안 신규인 내게 주어진 시간은 ‘실수하지 말 것’ 뿐이었다.
속도 불문, 이 많은 걸 똑같은 시간 안에 해내야 하는 신규는 어떻게 느리다는 말을 안 들을 수가 있는가?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현장에 던져지고 학교 다닐 때 공부했던 것도 다 소용이 없어진 채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속도를 요구하니, 매번 느릴 수밖에 없는 신규들이 생겨난다.
연차가 쌓인다면 “제대로”를 강요하겠지만, 신규 때는 “빨리”와 “제대로”를 같이 요구한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느렸던 게 아니라 너무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무방비 상태는 벗어날 수 없었다.
신규 간호사가 느린 이유를 개인의 능력 문제로만 부르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시작 선에서 잃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