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강수민
교육이라는 걸 명목으로 한 당연히 대답을 못 할 질문과 정해져 있듯 그에 따라오는 태움은,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닌, 환자의 안전에 위협이 되는 경우도 있다.
긴장을 많이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돌발 질문은 치명적이었다.
질문에 대답을 못 하는 날에는 꾸중을 듣고 나서 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실수를 하지 않은 날에는 나를 용서할 수 없는 순간만 수도 없이 늘어났다.
선배 간호사들은, 내가 어느 부분을 아는지, 어디까지 아는지를 귀신같이 잘 파악했다. 아는 게 많든 적든 모르는 부분을 어떻게든 알아내서 물어본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매번 혼났다. 아는 게 많아질수록 질문의 늪에 더욱더 깊게 빠지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같은 듀티의 고연차, 중간연차 차지 선생님들이 전부 먼저 퇴근한 후였다. 나는 나의 프리셉터와 조금 더 남아 다음 액팅 근무를 하는 저연차 선배 간호사분들께 무사히 인계를 마친 후 마음이 홀가분해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음 듀티의 중간연차 선배 간호사가 가방을 싸 들고 인사를 드린 후 퇴근하려던 나를 붙들고 돌발 질문을 던졌다.
“수민아, 이 약 무슨약이야?”
교육 책자에도 없고, 본원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약으로 당일 입원 환자가 타원에서 처방받아 온 약이었다.
학교 다닐 적에도 배운 적이 없었다.
당일 입원이고 학생 간호사 시절에도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알고 있을 리도 없었다.
그럼에도 선배 간호사들조차 먼저 알려주는 경우는 없다.
확인 후 드리러 가도 되는 상황임에도 “확인 후 환자분께 설명하러 가겠습니다”조차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너는 환자 앞에서 보고 설명할 거야?”라며 책잡고 물고 늘어질 게 뻔하다.
나는 학창 시절 같이 다녔던 친구가 주기적으로 복용했던 약과 비슷하게 생겼길래 그 약의 종류를 말했으나, 아니었다.
“야! 너 사고 낼 거야? 환자한테 가서 약주면서 그렇게 설명할 거야? 저 안에 들어가서 다 외우고 나와!”
“뭘 잘했다고 지금 가방까지 다 들고나와?”
저 말을 듣기엔 원래 퇴근 시간보다 1시간 넘게 오버타임 되었을 때다.
“죄송합니다”
“이거 다 외울 때까지 집에 못 간다? 어?”
“…네 알겠습니다”
임상에 나오면 신규는 항상 죄송할 일밖에 없을 거다. 누구나 그렇다.
원래 그런 걸 알면서도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늪에도 더 깊숙이 빠져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확인 후 환자에게 가져다줘도 되는 상황이어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처음에는 ‘뭐… 모르면 혼나고 정신 차려서 알게 하자’라며 자신을 굳혔다. 그러나 이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처음부터 중간연차의 선배들만큼 잘하고 싶었다. 내가 병원에서 받은 책자에 없는 약이라 모르는 건 당연했지만, 그래도 나라서 이해가 안 갔다. 나의 잘하고 싶은 욕심은 과했다.
문을 닫고 간호사실에서 환자의 약명과 종류, 기전을 외우고 있던 순간, 문이 쾅 하고 열렸다. 놀란 것도 잠시, 중간연차의 선배 간호사는 이상 부위가 표시된 검사지를 들고 들어와 또 다른 환자에 관한 질문을 쏟아냈다.
“수민아 너 이건 뭔지 알아?”
어디서부턴 가, 몰랐다. 내가 모르는 부분부터는 책자에 자세한 설명이 없던 거였다.
“여기에 이상 생기면 어디가 안 움직일까?”
처음엔 답했다.
“여기요”
무사히 답해서 몇 번 넘어갔다. 그러나 속으로 쉬고 있던 안도의 한숨도 오래가지 못했다.
답을 제대로 한다고 칭찬이란 건 절대 없다. 당연히 신규는 질문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 여기에 이상이 생기면 여기가 안 움직여?”
“…”
“왜?”에 대한 답이 눈을 비비고 봐도 책자에 없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책에 없어도 따로 적어 가서 공부했어야지”라는 말이 기본이고 어쩌면 “학생 때 뭐 배웠냐”라는 답변이 돌아오는 루프는 변하지 않았기에 어떻게 답하든 벗어날 수 없었다.
학생 때는 저렇게 배운 적이 정말로 없었으나, 사실대로 답해도 혼날지 두려워 말이 막혔다. 그 뒤론 아는 걸 물어도 대답을 못 했다. 말이 안 나왔다.
유독 긴장을 많이 하는 나는 점점 엉망이 되어가는 결과와 달리, 목표는 여전히 멀리 있었다. 신규이면서도 중간연차만큼은 해내고 싶었지만, 외울 것이 끝없이 쌓인 이곳에서 한 달 밤을 새운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대답을 못 한 일보다,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보다, 답답한 나 자신을 향한 자책이 더 컸다.
“야, 니 그냥 모른다고 해라”
“죄송합니다”
“수민아, 니 이정도면 나 괴롭히는 거 아니야?”
“죄송합니다”
“죄송 좀 그만하고 밤을 새서라도 공부해라. 니가 공부를 안 하니까 대답을 못 하지”
입사한 지 한 달 차 신규였고 한두 시간씩 오버타임 되며 근무했음에도 하루에 2시간에서 3시간씩만 자며 밤에는 끝없이 공부하고 아침 일찍 출근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외울 게 한두 개가 아닌데…’
내가 있었던 환경은 정말 거칠게 크는 곳이다. 매번 깨달았다.
간호사실 구석에 갇혀 공부하던 저 때까지만 해도 돌멩이처럼 갈고 닦이던 내가 언젠가 마모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음날 그 환자에게 수술 후 간호하러 가려는 나를 고연차 선생님이 붙들고 물었다.
“수민아, 어제 이브닝 쌤이 너 모른다던데 확인해도 될까?”
“네? 아 네…”
긴장이 되는 순간이 또 왔지만, 답은 “네”로 정해진 상황이다.
공부할 것이 너무 많아 다른 부분을 밤새워 익히는 데 집중하느라, 이 환자에 대해서는 충분히 살펴보지 못했다. 그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다.
두려움이 파도처럼 더 밀려오기 전에 고연차 선배 간호사가 연이어 물어봤다.
우습게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음에도 바로 답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해서 허탈했다.
책에 애매하게 나와 있는 부분을 중간연차 선배 간호사가 일부러 꼬아서 질문하곤 했다. 때로는 질문 자체를 알아듣기 어렵게 만들어 지적할 여지를 만들기도 했다.
“그래, 알고 있네. 갔다 와”
고연차 선배라고 해서 칭찬을 해주진 않는다.
답을 제대로 했음에도 상시 긴장 상태였던 나는 가슴이 답답했고, 머리가 조금 아팠다. 무사히 환자분께 수술 후 간호하고 상태 체크도 한 후 돌아와 내게 질문을 던졌던 고연차 선생님께 바로 노티를 했다.
다행히 고연차 선배들은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반면 중간연차 선배들은 매번 나를 쥐 잡듯 몰아붙였다. 병동에는 늘 두 연차가 함께 있었고, 중간연차를 유독 두려워했던 나는 노티가 필요할 때면 가능한 한 고연차 선배를 찾았다.
가끔은 온화한 중간연차 선배와 함께할 때는 숨을 돌릴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면 중간연차에게 노티하는 순간, 불변의 법칙처럼 내가 모르는 부분을 파고드는 질문이 따라왔다.
실수보다 무서운 건 질문으로 내가 모르는 게 많은 걸 깨달을 때 따라오는 혐오감이었다.
부딪히며 크는 것이 모두에게 옳은 걸까
부딪히며 크게 하는 튜토리얼은 수만 가지로 많은데 부딪히다 부서지는 사람들에 대한 완충장치는 왜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