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20년을 되돌아보며

45년의 인생에서

by 카이로스

프롤로그


40대의 반환점을 지나는 지금에서 돌아보면 다 할 수 있었고,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할 수 없는 것이 많아진다는 생각이 짖게 드리워진다. 그리고 오늘 정말 오래간만에, 바쁘다는 핑계로 숨겨 두었던 ‘왜’라는 생각을 꺼내보려는 순간, 중학교에 들어간 작은 아이가 수학 문제를 들고 와 질문을 한다. ‘어떻게’ 정답으로 갈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잠시 ‘왜’를 넣어두고 ‘어떻게’로 들어가 보지만 이도 잠시, 곧장 아이가 말한다. ‘아~ 이렇게 하는 거였구나!’ 그런데, 난 아무것도 도와준 것이 없었다. 옆에서 같이 연필을 맞대고 끄적거렸을 뿐, 내 아이가 먼저 정답을 꺼내 들었다.

이제는 질문이 2개가 되어 버렸다.


질문 두 가지


1. ‘’ - 할 수 없는 것이 많아 질까?

물리적 관성은 물체가 외부에서 그것의 운동 상태, 즉 운동의 방향이나 속력에 변화를 주려고 하는 작용에 대해 저항하려고 하는 물체의 속성을 의미한다. 변화에 대한 저항, 관성(inertia)은 라틴어로‘idleness’ 또는 ‘laziness’, 즉 게으름의 뜻을 갖고 있다. 이는 사람의 정신세계에도 적용이 되며, 이를 지적 관성(intellectual inertia)이라 부른다. 할 수 없는 것이 많아진다는 나의 생각도 게으름만의 문제 일까?


2. ‘어떻게’ - 정답을 찾아갈까?

방법을 찾기 위해선 방향을 정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을 한다. 정해진 방향으로 방법을 만들고 힘을 쏟는 것. 그러면 방향은 어디에서 올까? 신앙을 가진 사람은 산앙자체가 방향일 것이다. 조금 더 보편적으로 접근한다면 철학이라 할 수 있겠다. 철학의 영어 명칭 'philosophy'는 고전 그리스어 필레인(Φιλιν, 사랑하다)와 소피아(σοφία, 지혜)가 합쳐서 된 'φιλοσοφία'라는 단어가 변한 'philosophia'라는 라틴어 단어에서 변한 영단어로, 직역하자면 지혜를 사랑한다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지혜를 사랑하면 방향이 보이게 되고, 그 간의 경험해 온 지식들을 엮여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꼬리를 문 질문 두 가지


1. 게으름

일과를 마치고, 일주일에 최소 한 권씩 책을 보고, 지식을 쌓았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많은 책을 읽는 부지런함 뒤에는 내 생각을 투영하여 해석하지 않은 또 다른 게으름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으려면 충분한 이해와 나만의 해석이 필요한데 말이다. 학교에서 우등생으로 그랬던 것 같이, 책 속에서 발췌한 여과 없는 지식은 당장의 시험과 발표에는 나를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점에서는 당시의 노력의 파편을 융합하여 다음단계로의 발전을 지향하지 않았던 자기만족이 보인다.


2. 지혜지식

지식은 외부와 접촉하고 그것에 대한 이해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것이고, 지혜는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그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직간접으로 얻은 지식은 많아도 스스로 정화시킨 지혜가 없다면 ‘헛똑똑’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경험 없이 단지 안다는 것은 나의 재산이 될 수 없다. 얼마나 많은 경험이 쌓이면 바른 방향의 방법으로 힘을 쏟을 수 있을까? 그리고 바른 방법을 위해 얼마나 많은 지식이 필요할까?


지금까지의 질문에 대한 결론은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과정에서 배움을 통해 얻은 충분한 지식들 간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지혜가 인생에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것의 우선순위를 정해 하나하나 진행하다 보면 인생의 종점으로 가는 여정이 효과적(efficient)이고 그 결과도 효율적(effective)이 될 것이라 감히 예상해 본다. 그래서 먼저 지난 20년 동안의 방향, 지식 그리고 지혜를 지금의 시점에서 되돌아보고자 한다.


1. 지난 20년의 시간


‘안녕? 나야!’라는 TV드라마가 있었다. 단순히 나의 최애 배우가 출연했던 것이 관심의 시작이었다. 여주인공이 20년 전의 당찼던 나를 마주 본 후 현재의 내가 회복(recovery)된다는 것으로, 나도 20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대학교 4학년이었다. 산학협력 프로그램으로 졸업 전 취직을 했던 것이 20년의 사회생활의 시작이었다. 방향도 없이 지식만을 억지로 구겨 넣으며, 단지 기대와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의 시작과도 같은 순수함만을 기억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짧은 지식은 말했다. 첫 직장에서 열심히 달려가다 보면 그 끝에는 매슬로우가 말하는 궁극적 욕구 단계인 자아실현이 당연한 선물로 주어질 것이라고.


1. 대기업 #1

2004년 11월. 모두가 다 아는 회사에서의 시작이었다. 어머님이 사주신 양복을 뒤집어쓰고, 넥타이에 목을 걸친 기분으로 면접이라는 것을 처음 본 후 집으로 돌아왔다. 합격이 되고 그룹의 계열사들이 모여 진행되었던 연수는 1등이라는 영광의 배지를 선물해 줬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연수 후 그동안 지내온 대도시가 아닌 처음 가보는 작은 도시에서 실무가 시작되면서 현실이 시작되었다. 학창 시절 새벽까지 공부하던 시절은 행복이었다. 매일 되는 야근, 혹은 이틀씩 일하고 잠시 기숙사에 다녀오는 생활의 반복은 점점 날 지치게 만들었다. 특공대라는 특별한 군대 경험을 했던 것이 이런 힘든 상황을 달래 줬지만, 결혼 후의 상황을 그릴 때면, 더 이상 이 젊은 날의 경험에 좋은 색깔을 입힐 수 없었기에 안녕을 고했다.


2. 대기업 #2

2005년 8월. 지금생각해도 좋았던 회사에 운 좋게 들어가고 긴 동행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의 회사 업무에서의 방향이 만들어졌다. 입사하고 몇 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공장의 지속적인 개선활동을 위한 새로운 동력으로 한 가지 혁신 활동이 외부컨설턴트와 시작이 되었고, 유사한 활동과 인증을 경험했던 것이 나의 지난 20년 커리어의 mainstream의 시작이었다. 지속적 개선 업무와 공장 내 주요 function들의 실무를 병행하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진행하면서 specialist가 아닌 generalist로 방향을 잡은 것은 지금 돌이키면 시간이 가면서 지속개선 쪽으로 수렴하는 의도였다. 앞으로의 회사생활의 지속 개선 업무로 방향이 만들어졌다. 그 방향에서의 지식도 17년여 동안 쌓았다.


3. 대기업 #3

이제는 자녀의 교육환경을 걱정할 시간이 되었다. 중학교에 막 올라간 첫째에게 교육 관련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이 농후해지는 찰나 좋은 기회가 서울에서 왔고, 결심을 했다. 개인적 커리어에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지속적 개선 업무를 지금까지 경험해 온 제조가 아닌 비즈니스로 확대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회사를 떠나 집을 새 직장 근처로 옮기고, 새로운 시작에 설렘 있었다. 제조에 더하여 비즈니스 관련 개선업무까지. 나의 업무경험 방향에 지식이 더욱 더해져서 탄탄해지는 기분이었다.


4. 대기업 #4

세 번째 직장에 자리가 잡혀 갈 무렵, 프로모션이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거리가 멀어 고사했지만 추가 제안이 네 번째 직장으로의 결심을 세웠다. 두 번째 직장에서 APAC의 여러 공장들을 경험해 봤지만, 이번에는 한국과 일본의 7 공장들의 개선활동을 진행하는 것으로 어려움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전 회사들과는 다른 분위기, 개선활동이 반드시 돈으로 연결이 되어야 하는 부분이 많은 사람들의 동기부여차원에서 큰 장벽으로 만들어졌다. 개선 금액 달성을 위해 사람을 내보내야 하는 악역의 총알받이가 되는 기분은 첫째로 직원에게 미안한 마음이었고, 둘째로 나 자신의 업무에 대한 희의 감도 너무 컸다. 지난 20년 정도의 노력이 갑자기 시간 낭비가 돼버린 느낌에 좌절이 컸다. 개선이 돈으로 연결될 여지가 없으니 사람을 내보내라.. 내가 나가기로 했다. 그 회사는 단기적으로 큰 인건비 절약으로 좋겠지.. 장기적론 같은 상황이 반복일 텐데..


2. 앞으로의 20년

내가 결정한 방향에서, 나의 경험과 이성으로 만들어진 지식들을 나만의 그리고 상급자의 이익을 만드는 지혜로 포장해라? 양심이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나의 지식의 관계를 묶기 싫다.

나의 지난 20년의 노력이 모두가 행복할 지혜로 만들어질, 그래서 앞으로 나의 20년도 행복할 방법이 필요하다. 5번째 회사일 수도, 아니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험일 수도 있다.

네 번째 회사에의 퇴직한 지 수개월이 지나간다. 충분히 쉬었으니 슬슬 나만의 노력에 더해 절대자의 인도에 따른 새로운 시작을 기대한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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