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보낸 아버지로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겨울날

by 카이로스

프롤로그


11월 16일. 겨울이 슬슬 여물어 가는 시간이었다. 약 20년 전 젊은 시절 혼자로서 가벼운 마음으로 첫 직장을 나왔을 때와는 달리, 가족을 부양하는 중 잠시 삶의 쉼표를 찍고 있던 시기였다. 가족들의 응원으로 가장으로서의 그 무게가 무색하던 시간이 수개월 흐르고 있었고, 새로운 시작을 그리며 수년간 어머니와 동생이 도 맡던 아버지 병간호에 같이하던 짧은 시간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새벽에 전화가 울리고, 아버지를 뵈러 달려가는 도로는 여전히 같은 모습이었으나 한 번씩 망울져 볼을 타고 떨어져 내렸다. 지난날의 추억들이 많지 않았는지 아니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인지 담담한 눈물이었다.

병실에 들어섰을 땐 이미 하얀 천이 아버지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조심스레 천을 내렸을 땐 이미 숨을 거두신 상태였으나 한쪽 눈을 뜨고 나와 나의 식구들을 기다기로 계셨다. 그제야 봇물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동안 서툰 표현이지만 따뜻하게 식구들을 담고 계셨던 눈을 감겨 드리고, 장례를 치르고 봉안당에 모시고 어느덧 한 달이 되어 간다.

나의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시고 외롭게 힘들게 세상을 헤쳐나가셨다. 그 외로움과 고됨을 아내와 두 자녀가 경험하지 않도록 달려 나가셨다. 그동안의 노고를 이제 막 보상받고 계셨는데 몹쓸 병마는 그렇게 아버지를 데려갔다.


1. 내가 경험한 아버지

아버지는 히브리어로 אב, 알레프(א) + 벧(ב)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알레프는 원래 소를 형상하는 글자였다. 그리고 벧은 본디 집을 뜻하는 글자였다. 소는 전통적으로 '힘'을 뜻하기도 하였으니 אב는 '한 집의 힘'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다.

아버지께서 마지막에 계셨던 병원의 창문너머는 내가 국민학교시절 눈이 내린 어느 날 같이 사진을 찍었던 곳이었다. 동생과 같이 활짝 웃고 있던 아버지는 물리적 힘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강하셨던 분이셨다. 이복형제들과 우리 가족사이에서 많은 어려움을 묵묵히 이겨내셨다. 힘든 세상 그렇게 우리 집의 기둥이셨다. 돌이켜 생각하면 내가 그 시간 동안 부족함도 어려움도 없이 여기까지 살아온 것은 내게는 아버지가 선물해 주신 큰 축복이고 은혜였다. 하지만 이를 위해 아버진 얼마나 애를 쓰셨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스쳐간다. 지금 잠시 창문을 열면 내 빰 위로 몰아치는 한 겨울의 바람, 뉴스를 켜면 들려오는 어려운 가정사들이 모두 남들의 이야기 만이었던 것은 내가 경험한 아버지의 위대하심이란 생각을 한다. 아버지의 유년시절부터의 환경을 생각하면, 식구들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막아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셨을 것을 생각하면 한참 먹먹해진다.

2011년 11월 11일. 내 머릿속의 종양을 제거하고 편마비의 후유증에서 회복하던 11월의 어느 날 밤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모두가 잠든 한 밤중의 병실에서 잠시 깨어난 내 눈앞에 아버지는 마비된 나의 다리와 팔을 주무르고 계셨다. 일터에서 돌아오셔서 그 새벽시간까지 그렇게 계셨던 것 같다. 날 발견하고 멋쩍게 웃으시던 그 눈빛은 말씀하셨다. 아들아. 내가 미안하다. 항상 말로 표현을 잘하지는 못하셨지만, 그날 밤도 그렇게 눈으로 말씀하셨다. 미안하다, 아프진 않니..

2024년 11월 16일. 돌아가신 날짜도 아버진 주변사람들을 배려하신 것 같다. 그렇게 많은 분들의 위로를 받으며 하나님의 품으로 떠나셨다. 이제 11월 달력에는 우리 가족이 기억할 4번째 날짜가 새겨졌다.


2. 내 자녀가 경험할 아버지

아버지께서 소천하신 지 3개월 넘어간다. 봉안당 안치 후 한 번씩 찾아뵈면서 생각을 한다. 돌아가신 후 더 불러보는 이름이 아버지라는 것을.. 이미 나도 두 아들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가진 지 17년이 되어간다. 이제는 그 무게가 더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받은 사랑이 컸다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지금, 그 책임이 더해진다.

과연 나는 그 책임을 잘하고 있을까? 이제는 청소년이 된 아이들 앞에서 아버지라는 이름표만 앞세우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는 이 질문들은 항상 가지고만 있었다. 이제는 나도 정답, 아니 최소한 내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틀을 가지고 실천할 때이다. 그리고 난 이미 틀이 아닌 정답을 가지고 있다. 나의 아버지가 보여주신..

이제 그 결심을 새롭게 한다. 내가 기억할 것은 내가 받은 사랑이다. 난 그런 집에서 성장했다. 사랑을 포장으로 사용하지 말자. 나의 어설픔이 너를 위한 것이라 강요하지 말자. 내가 아버지께 누리고 느꼈던 것 같이 그저 그렇게 하자. 훌륭한 교과서를 난 머릿속에 이미 그리고 이제는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 그 앎을 그저 실행하자.


에필로그

내일, 2011년 수술 후 있는 정기 검진을 위해 아버지와의 추억이 있었던 그 병원으로 간다. 그리고 지근거리에 있는 봉안당에 가서 날 내 아이들의 아버지로 다시 새워 주신 나의 아버지께 인사드리려 간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직장생활 20년을 되돌아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