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뒤에 보이는 것

창문너머 항상 보이는 겨울 산이 건넨 이야기

by 카이로스

2월도 열흘이 지나간 아침, 짧은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따뜻한 식사를 마친다. 떡국위로 올라왔던 아지랑이같이 스믈스물 피어오르던 생각이 어느덧 거실의 걷기 운동기구에 서 있던 내게 다가온다. 여느 때와 달리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앞산의 물안개와 같이 더욱 짙어진 모습으로...

올해의 시작은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한 마디로 정리되지 않는 묘한 느낌이다. 충분한 비유가 아닐 것이라 생각하지만, 마치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과도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어느 때보다 다부진 계획이 있어 기대감에 들떠 있지만, 이륙 시 멍해지는 귀와 같은 예상되는 가벼운 도전의 순간을 넘어, 안전하게 목표하는 고도에 올라 갈지 나 스스로도 의구심에서 벋어나지 못하게 하는 불확실성이 창문 너머 보이는 물안개와 같이 축축하고 차갑게 다가온다. 거실의 온도를 약간 올리는 것으로 떨쳐지지 않는 것은 여느 해와는 달리, 관성과 같이 맞이했던 지난 해들과 다른 큰 환경 때문일 것이다.

심연으로 빠질 것 같았던 순간, 조용히 옷을 갖추고 아래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의 단추를 누른다. 그 산으로 향하는 마음을 산책 복장으로 감싸던 순간까지는 한 없이 내려갈 것 같았던 마음이 엘리베이터의 빠른 움직임으로 수 그러 들었다. 깊은 바다가 아닌 지층에 닿은 자신을 불현듯 확인하고 나의 시작을 확인하고자 발걸음을 앞산으로 옮긴다. 빨간 신호등이 바로 날 잡아 뒀지만, 생각할 틈도 없이 녹색의 걸음걸이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 새어가며 올라가 본 지 시간이 조금 흘렀던 산속에 자리 잡은 전망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곳이 시원하게 보여 줄 도시의 모습을 상상하며..

어느덧 접어든 산기슭 오솔길은 새해의 종소리같이 나의 머릿속을 깨끗이 일깨웠다. 작년에 정리했던 기도 제목들을 오늘 아침과 같이 마음속으로 고하면서 발걸음을 하나하나 떼어 나가 본다. 길 위에서 어머니를 생각한다. 아내와 아이들을, 동생 식구들을, 처갓집 식구들을.. 서늘하지만 상쾌한 아침의 향기 속에서 눈앞에 다가오는 나무와 바위에 하나하나 새겨본다. 창문 안에서 여러 생각으로 정리되지 않았던 내가 새롭게 새워지는 또 다른 아침이 길 위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깨닫는다. 멀리서 바라봤던 산이 물안개에 까마득히 숨어 있던 던 것은 나를 유혹한 하나의 선물이었다는 것을... 약간은 가파르지만 기분 좋은 숨을 몰아쉬게 하는 그 길은 또렸했다. 바닥의 작은 모래알까지 선명히 들어왔다. 선물이었다. 마음속의 조바심이 스스로를 옭아맸던 것들이 보듬어지기 시작한다.

도시가 발아래 펼쳐진다. 내가 사는 이곳을 상징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하나가 다시금 눈앞에 들어오고, 주변으로 옹기종기 일어난 아파트들이 산아래로 펼쳐진다. 그리고 작은 나를 본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산을 쳐다봤다. 시간이 꽤 지나갔는데 아직 물안개는 산의 온전한 모습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한 낮이 되면 안개의 어깨너머 보일 산임을 난 알고 있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고, 직접 나가 보면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 수 없는 생각으로 옮기지 않은 한 걸음이 없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길 위의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난 항상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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