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핌의 정석

성장, 감사 그리고 성숙

by 카이로스

프롤로그

겨울의 한 복판을 지나고 있다. 집안의 따뜻한 훈기가 날 감싸 안고 있고, 아내가 준비한 식탁 위 음식들이 그 따스함을 더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 순간도 잠시, 아파트 단지의 스피커가 머금고 있던 기계적인 음성이 오늘 아침 이 작은 행복과 잠시 이별해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 전기공사로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전기도 물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알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승강기 안의 안내문이 말하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던 현대 문명의 편리함에서 아파트는 나를 잠시 보호할 수 없어요.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날 보살피기 위해 오랜만에 집을 나와 동네 도서관으로 향하는 것을 선택한다. 한 동안 잊고 있던 영하의 날씨가 최근 뉴스를 도배하고 있는 사회적 풍파와 같이 나와 사람들에게 달려들고 있다.

걷는 동안 두툼한 점퍼의 주머니가 추운 바깥바람에서 나의 떨림을 보살피고 있다. 내 양손을 주머니에 맡기며 문득 생각한다. 보살핀다는 것.


1. 내가 나를 보살핀 다는 것, 성장

내가 아이였을 때가 생각이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당신이 기뻤던 슬펐던 가슴을 쓸어내렸던 유년 시절이 나에게는 거의 없다. 친구들과 공을 차던 기억만 어렴풋이 스쳐간다. 청소년 시절도 별반 다를 게 없었지만 도서관을 나와 집으로 걸어가던 새벽의 공기 냄새가 짙게 남아있다. 대학을 가기 전까지는 그렇게 나를 보살폈다. 칭찬 듣는 나를 기분 좋게 생각하며 무난하게 학생으로의 나를 잘 보살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는 것 같았다. 계획이 나를 보살펴 주던 삶이었다. 원하는 대학에 실패하고, 원하지 않은 군대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말년 휴가를 나와서 지금의 아내를 우연찮게 만나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그 대학에서, 원하지 않았던 군대를 마무리하려는 그때 선물같이 아내가 다가왔고, 이전까지 없었던 용기가 생겨났다. 계획에서 벗어난 것이 실패나 좌절의 순간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헤쳐 나아가야 할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용기가 나를 보살피는 대 있어 '너와 나'를 알게 하고, 삶의 범위가 넓어지는 그 순간이었다. 유년 시절, 청소년 시절의 ‘우리‘가 누군가와 같이 했던 날들이 봄날 연두색으로 이제 막 피어오르던 나뭇잎 같았다면, 청년의 시절의 '우리'는 한여름의 나뭇잎같이 더욱 진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생겨난 또 다른 ‘우리‘는 처음에는 의무감이 더해져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얼마지 않아 삶에 더 큰 용기로 나를 보살펴 줬다.

둘째가 태어나기 한 달 전. 하루하루가 행복이었던 순간 아무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서는 몹쓸 것이 자라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악성 뇌종양진단을 받는 과정에서, 수술을 앞두고 어머니와 동네 뒷 산을 등산하면서 그저 덤덤했다. 그동안 나를 보살피던 용기가 작용했던 것 같다. 10시간 정도 수술 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회복을 하고 있었다. 큰 고비가 넘어갔다고 기쁨을 나누고 있을 가족과 지인들의 시간이 막 시작되고 있을 무렵,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내 침대가 마구 떨리는 느낌이, 어디론가 달려간 끝자락에 많은 의료진들의 부산함이 끊어지며 들리던 소리가. 뇌출혈이 내게 편마비 장애를 무겁게 내리꽂는 순간이었다. 오른쪽 신체의 육체적 기능이 리셋되었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나를 보살피며 성장하던 시간이 리셋되는 느낌이었다. 글자가 머릿속으로 읽히는 데, 말로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전과는 다른 순간이 시작됨을 알리고 있었다.


2. 남이 나를 보살핀 다는 것, 감사

아마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나의 삶에 대부분이 나, 아내, 자녀들, 친구였나 보다. 가깝지만 먼발치에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존재는 그동안 당연시 했던 가족이었고 습관적으로 다가갔던 종교였다. 이 깨달음이 있기 전까지는 불완전한 성장만 있었지 성숙하지 않았다. 겸손하려 노력했지만,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라는 거짓으로 날 드러내는 것이 내 맘속의 많은 부분이었다.

병실에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 모습 그대로가 나의 한 없이 부족한 성장의 모습이었다. 나의 우측 신체가 초기화된 것 같이 그동안의 생각했던 나의 성숙함이라는 것도 한없이 보잘것없는 정도의 무엇이었다. 깊은 수렁으로 아득히 떨어질 수 있었지만 가족들의 애씀과 주변인들의 기도가 나와 함께 했다.

수술 전 어머니와 담담히 산길을 걸었던 것처럼 현재의 나를 위해 재활하고 잘 쉬면서 미래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이 가능했다. 감사했고, 지금도 그 감사함을 놓지 않고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나를 지켜봐 주고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누군가를 더욱 성장하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것은 '감사'였다. 지식이 지혜로 다듬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에필로그

내가 너를 보살핀 다는 것, 성숙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나는 자녀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 성숙하고 있다. 나를 이끌어 주는 모두를 위해 기도하고 감사하며 다시 성장하며 성숙하고 있다. 자녀로서 부모님을 위해, 남편으로서 아내를 위해, 아빠로서 두 아이를 위해 성숙하기 위해 현재의 나를 돌이켜 세운 목표를 묵상으로 시작하는 하루하루의 루틴을 밟아 나아가고 있다. Non-procramination! 힘들 때도 있지만 이것이 나의 성숙을 위해 필요한 것임을 안다.

내가 너를 보살핀다는 것은 행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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