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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레나 May 31. 2022

이런 나라서 다행이야

어느 날은 10 정거장이 넘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지 않고 펑펑 울면서 길에서 집까지 걸어온 적이 있다. 회사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그 당시에는 말도 못 하고 '내가 한 거 아니에요! 시키셔서 그거에 맞게 수정했잖아요!' 이 한 마디를 못해서 모든 책임을 욕과 함께 뒤집어쓰고 나와서 할 수 있는 게 뒤에서 이렇게 펑펑  우는 것 밖에 없다니. 처음에는 책임자를 비난하고 화가 나서 울다가 5 정거장 7 정거장을 지나면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내일 또 아무 일 없듯이 출근하는 내가 등신 같아 나에게 화가 나서 울기 시작했다.  


이런 거 하나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내가 특별나게 잘하는 일이 있을까? 항상 뒤에서 그림자처럼 일을 하고 그늘에 가려 프로젝트 공은 다른 사람에게 주고 이런 나에게도 별도 달도 반짝반짝 뜰 날이 오기는 할까. 그렇게 자책하며 자는 날이 늘어갔다. 이러다 정말 내려앉겠구나 싶어서 주말마다 이것저것 하기 시작했다. 약속이 특별히 없는데도 준비하고 우선 밖으로 나갔다. 무작정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연락 온 메신저 확인도 안 하면서 그저 핸드폰만 만지작 거린다. 또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니 속이 후련해진 것 같기도 하다. 


자책을 하고 혼자만의 합의점을 찾으려고 하다가 마지막으로 마침표를 찍고 돌아오는 생각은 '이런 나라서 다행이구나'였다. 모든 일은 항상 내 마음 같지 않고 일어나면 안 되는 일도 일어나는데 그래도 이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돌아오니까. 바보같이 내가 하지 않은 잘못에 변명조차 하지 못하는 나지만 상대방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나처럼 상대방을 보호하려는 사람이 있으니 이렇게 해서 세상은 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다 나와 같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나와 다른 행동을 하고 다른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피해도 감정을 건드리고 싶지 않아 이렇게 행동을 했다. 물론 시원하게 드라마에서 보듯이 책상에 있는 서류들을 집어던져 책상을 뒤집어엎고 욕을 퍼붓고 '이 빌어먹을 세상!' 하면 속이나마 시원하겠지만 그저 상상만 해도 시원해 혼자 씩 하고 웃는 내가 바보 같지만 이런 생각조차도 즐거워하고 소소하게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는 모습, 살아가는 모습에 또다시 기운을 얻어 살아가는 나여서 참 다행이다.  


물론 뭐 하나 딱 특별하게 잘하는 게 없지만 나는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그중 하나로 살아가고 있고, 내가 행동을 하고 말을 하는 이 작은 일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큰 기쁨을 줄 수도 있고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만들어 줄 수 있듯이 그 사람들에게 나는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구나를 느꼈다. 사소한 행동도 마찬가지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는데 내가 따뜻한 태도로 주문을 하고 '감사합니다'라는 말 하나가 그 일하는 사람의 분위기와 그 일하는 사람으로 인한 가게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가끔 내가 작아지거나 무언가 절망감에 빠졌을 때 항상 나에게 마음으로 주문처럼 이야기를 한다.

'이런 나라서 다행이야, 너는 더 큰 세상을 만들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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