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라이제이션 : 외국어 구사력과 차별금지
[우리는 인종차별의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이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나는 우리나라가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한국인은 항상 인종차별의 피해자였지, 가해자는 아니었다. 1999년 우리 회사에 영국인 임원 한 분이 있었고, 그는 태국인 아내와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저녁을 먹을 때 인종차별이 화두로 등장했다. 일 년에 몇 차례 둘이서 태국을 비롯한 해외여행을 하는데, 공항에 입국할 때 영국인 남편은 한 번도 짐 검색을 당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짐 검색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종차별이며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심한 편이라고 성토했다. 나는 처음 듣는 얘기지만 반박하기 어려웠다. 그 자리에서 결심했다. ‘나는 절대 출신국가나 인종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겠다’
그해 나는 독일에 한 달 반 장기출장을 갔었다. 연휴를 맞아 뉘른베르그에서 오스트리아를 경유하여 스위스까지 기차여행을 떠났다. 영화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 나온 것처럼 6인용 객실 <Compartment>에 앉아서 장거리 기차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중간중간 영국인, 미국인, 독일인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내가 앉아있던 객실을 오갔고, 나는 그들과 스몰토크 <Small Talk>를 하면서 여행의 재미를 만끽하고 있었다. 장거리 여행으로 인한 피로감이 몰려오면서 눈꺼풀이 천근만근 내려올 즈음에, 나 혼자 객실에 남았다. 그때 한 파키스탄 남자가 커다란 옷 보따리 (가방이 아니다. 정말로 보자기로 싼 큰 옷 보따리였다)를 들고 내 객실로 들어왔다. 이탈리아로 가는 중이란다. 그 순간, 나는 피곤하지만 더 이상 잠을 잘 수도, 졸 수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내 백팩을 오른손으로 강하게 틀어쥐고 엄숙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 친구가 언제 강도로 돌변하여 내 백팩을 뺏어갈지, 여권을 훔쳐갈지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아침에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잠 한숨자지 못하고 혼자서 불침번을 선 셈이다. 그날 오전 나는 문득 내 결심이 작심삼개월로 끝났음을 알아챘다. 중간에 내 객실을 오갔던 영국인, 미국인, 독일인이 강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않았을까. 그 파키스탄인이 선량한 시민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않았을까. 물론 맹자께서 항산항심 <恒産恒心>을 말씀하셨다. ‘재산 직업 등 경제적 안정이 있어야 꾸준한 마음 평온한 마음이 유지된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무항산 <無恒産>에 무항심 <無恒心> 일 수도 있다. 물론 무항산에 항심인 군자도 있을 것이고, 항산에 무항심인 소인배도 있을 것이다. 맹자의 말을 현실에 대입하자면 ‘가진 것이 많은 자들보다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 좀도둑이나 강도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해석이 가능하다. 그분들이 심성이 악해서가 아니고 환경이 그렇게 만드는 것을 어쩌랴. 그런데 이 대목에서 나도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에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백인은 잘 사니 좀도둑이나 강도가 없고, 유색인종은 못 사니 좀도둑이나 강도가 많다는 편견. 이것이 쌓이고 쌓여 ‘백인은 상종이 가능하나, 유색인종은 상종하기 곤란하다’는 일반화의 오류로 굳어진 건 아닐까. 나는 반성했다. 그리고 다시 결심했다. ‘출신국가나 인종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겠다.’
그 후 정확히 20년이 지난 2019년 나는 자칭 글로벌 비즈니스맨이라고 자부하고 있을 때였다. 남미 칠레에서 일요일 아침 경치 좋은 곳으로 바람이나 쐬러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차를 몰고 나섰다. 내 목적지는 7Km 정도 거리의 해수욕장이었다. 가는 도중에 큰 짐을 들고 가는 집시 <Gipsy> 부부가 차를 태워달란다. 4Km 만 가면 집시 마을이 있으니, 나의 공감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태웠다. 부부 두 명에 짐이 한가득이니 작은 차가 꽉 차서 출발했다. 1Km쯤 갔을까. 이유를 알 수 없는 불길한 상상이 고개를 들었다. ‘이 부부가 강도로 돌변하면 어떡하지’ 등골이 오싹해졌다. 차 뺏기고 터덜터덜 걸어서 돌아가는 내 모습이 상상되기도 했다. 실제로 1990년도 중반에 우리 회사 직원 한 명이 브라질에서 무장강도를 만나 차 뺏기고 혼자 수십 Km를 걸어온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 선배들이 지갑을 두 개씩 들고 다니라는 교육도 시켰다. 강도를 당하면 하나는 줘버리고, 깊숙이 숨겨놓은 다른 지갑을 이용해서 사무실로 돌아오라고.) 마음속으로 수십 번을 망설였다. ‘지금이라도 핸들을 꺾어 돌아갈까? 내려달라고 할까?’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던 사이에 차는 무사히 집시 마을에 도착했고, 그들의 고맙다는 인사를 서너 차례 받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목적지로 가는 길에 문득 깨달았다. 지난 20년간 공든 탑이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을. 지난 20년간 ‘출신국가나 인종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내 결심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공부와 행동은 왜 일치하지 않는 것일까?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으로 하루 종일 우울한 일요일을 보냈다. 이렇게 우리 머릿속에 박힌 고정관념은 빼내기가 몹시 어렵다. 자칭 글로벌 비즈니스맨,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나도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또다시 결심한다. "언어는 도구이고 문화는 타인을 이해하게 해 주는 렌즈일 뿐, 어떤 꼬리표로도 사람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14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