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이름
동생과 나는 두 살 차이라 시골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래서 나는 동생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의 삶은 가까이 있어도 모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최근 동생이 회사 생활을 정리하며 책으로 남기고 싶다며 초고를 보내주었다.
25년이 넘는 대기업 백화점 생활의 경험과 비결을 담은 글이었다. 전문 직업인의 기록처럼 차분했지만, 그 문장 사이사이에서 나는 동생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다 보니 마음 한편이 먹먹해졌다. 어쩌면 내가 학교에서 33년 동안 겪었던 일들보다 더 거칠고 냉정한 세상을 견디며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 참 애썼다. 그리고 지금 여기까지 잘 왔다. 형으로서 조용히 등을 두드려 주고 싶다.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아직도 저녁 무렵의 바닷바람 냄새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부모님은 바닷일로 늦게 돌아오시는 날이 많았고, 우리는 배고픔을 달래며 서로를 바라보곤 했다. 고구마를 모닥불에 묻어 구워 먹기도 하고, 식은 보리밥에 몽고간장을 비벼 먹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소박하기 그지없는 식사였지만 그때는 무엇이든 맛있었다.
먹을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던 시절이었다.
요즘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가끔은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 보고 싶다고.
동생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해보고 싶은가.
나는 부모님이 돌아오실 시간에 맞춰 부엌에서 쌀을 씻고 싶다. 하얀 쌀밥을 짓고, 호박과 돼지고기를 넉넉히 넣은 김치찌개를 끓여 따뜻한 밥상을 차려 놓고 부모님을 기다려 보고 싶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평범한 저녁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어 반장을 맡았을 때를 동생도 기억할 것이다. 평소 말수가 적고 친구들 앞에서 말 한마디 크게 하지 못하던 형이 반장이 되었으니 동생 눈에는 꽤 낯설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 역시 내심 걱정이 많았다.
그 시절은 지금과 달리 담임선생님이 투표도 없이 성적순으로 반장을 정하던 때였다. 반에서 1등이라는 이유로 반장이 되었지만, 그 책임이 생각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오기로라도 1년을 버텨보겠다는 마음으로 앞뒤 가리지 않고 열심히 했다.
하지만 결국 10월이 되자 그 자리를 내려놓았다. 12월에 치러질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눈앞에 다가오자 공부에 집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반장을 중도에 내려놓았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때 동생이 형을 보며 공부에 대한 마음을 조금 품었다고 들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던 것도 기억난다. 물론 세월이 오래되어 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형에게는 꽤 자랑스러운 장면으로 남아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아무도 살지 않게 된 시골집을 떠올리면, 마당에 서 있던 감나무 두 그루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가을이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감나무에 올라가 홍시를 따 먹었다. 너무 높은 가지에 올라갈 때면 서로 조심하라고 소리치며 웃기도 했다.
큰 사고 없이 그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맙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집안 형편은 늘 넉넉하지 않았다. 빚을 갚기 위해 애쓰던 부모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그 현실이 싫어서 마음속으로 자주 동굴 속에 숨어들곤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대학에 가는 것이 과연 맞는 선택일까.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나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다 보니 수업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성적은 오르지 않고 늘 비슷한 자리에서 머물렀다.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다닐 만큼의 학력고사 성적이 나와야 했지만 모의고사 성적은 늘 부족했다.
1984년 12월, 결국 학력고사 성적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남해에서 P대학교에 합격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 시절에는 지방 국립대학의 위상이 지금과 달랐다. P대학교 역시 많은 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던 대학이었다. 물론 집안 형편이 조금만 더 넉넉했다면 서울의 대학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선택 역시 나의 길이었고, 그 길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다.
살아오면서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마음이 흔들린 적이 많았다. 동생도 비슷한 마음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사람의 길은 저마다 다르고, 그 길에서 성실히 걸어온 시간 자체가 결국 삶의 가치가 된다는 것을.
나는 교직 생활을 하며 학생들과 함께 성장했다. 교육부 표창과 교육감 표창, 모범공무원 국무총리 표창 등 여러 상을 받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보람 있었던 것은 학교와 학생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이다.
그 덕분에 연구년 기회도 얻었고 해외 연수도 다녀올 수 있었다. 건강을 이유로 승진을 포기하고 명예퇴직을 선택한 것도 지금 생각하면 참 잘한 결정이었다. 덕분에 지금은 새로운 삶을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동생도 이제 퇴직이 멀지 않았다. 준비하고 있는 책을 잘 마무리하여 세상에 내놓기를 바란다. 오랜 직장 생활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는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인기 강사로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평생학습관에서 시니어 그림책 강의를 시작했다. 교육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조금씩 만들어 가고 있다. 앞으로는 AI를 활용한 그림책 만들기 강좌도 열어 보고 싶다.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는 다시 삶의 또 다른 출발선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동생, 앞으로 가끔씩 안부를 나누며 살아가면 좋겠다. 서로의 길을 응원하고, 필요한 정보도 나누며, 남은 시간을 조금 더 따뜻하게 살아가면 좋겠다.
건강 잘 챙기고, 마음 편안한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동생의 삶을 늘 응원하는 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