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셋째 누나는 가깝고도 먼 사이입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by 할슈타트

어디서부터 우리가 가깝고도 먼 사이가 되어 서로 연락도 하지 않고 살게 되었을까요. 생각해 보면, 그 시작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짚어내기 어렵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해 고향을 떠나 마산에서 자취를 시작할 때였습니다. 누나는 제 옆에서 밥을 해주며 함께 지냈습니다. 세 누나 가운데 저와 나이 차가 가장 적었던 누나는, 어린 동생인 저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공부를 곧잘 하던 저를 보며 누나가 품었던 기대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한 학기 만에 자취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는 부산으로 일을 하러 떠났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각자의 길로 흩어졌습니다.


아마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더 어린 시절에는 누나가 저를 업어 키웠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아래 동생이었으니 더 애지중지했을 것입니다. 중학교를 겨우 마친 뒤 돈을 벌기 위해 산업체에서 일하며 야간 고등학교에 다녔다는 사실도 훗날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세 누나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체 부설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그 시절에는 여자가 안정된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큰형 일을 도우며 살다가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제 기억이 조금 틀렸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제가 결혼한 뒤, 누나의 부탁으로 채무보증을 서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세상 물정을 잘 몰랐던 저는 누나를 도와준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서로의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 일은 무엇보다도 아내를 힘들게 했던 과거라 저는 오랫동안 떠올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치 바닷속 깊은 곳에 돌을 묶어 가라앉혀 두듯, 기억 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두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그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으면 숨통이 트이곤 했습니다. 결국 저는 큰누나의 도움을 받아 채무보증 문제를 해결했고, 또 다른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한동안 큰누나 집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빚을 지고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찾아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설령 가더라도 마음 한구석이 늘 불편했습니다. 몇 년 후 빚을 청산하고, 지금은 세월이 흘러 기억이 많이 옅어졌지만, 오랜 시간 저를 괴롭히던 기억이었습니다.


사실 이 편지를 쓰는 지금도 마음이 완전히 편한 것은 아닙니다.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 자체가 오래된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그러더군요.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아가는 시간은 결국 자기 자신을 더 괴롭게 만드는 일이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누나를 원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기억도 많이 희미해졌습니다. 혹시 누나 마음속에도 저에 대한 서운함이나 원망이 남아 있다면, 그 또한 세월 속에 조금씩 내려놓아 주었으면 합니다.


아마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자주 연락드리지는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우리의 마음도 조금씩 부드러워질 것이라 믿습니다. 그때쯤에는 서로 더 편안한 마음으로 안부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까지 건강하시고, 누나의 삶에 평안한 날들이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과거를 조용히 돌아보는 동생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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