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둘째를 위한 서시
둘째야, 너는 형과 네 살 터울이지만 실제로는 세 살 넉 달 차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너는 우리가 기다려 얻은 아이였다. 1996년 4월, 너는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너는 어릴 적부터 예측하기 어려운 아이였다. 분명 우리의 아들이었지만 어딘가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다. 생후 일곱 달 만에 걸었고 누구보다 빨리 뛰었다. 자전거도 거칠게 몰았다. 마치 세상 밖으로 서둘러 나가고 싶은 아이 같았다. 그 이유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지금은 한결 느긋해졌지만, 그 시절의 너는 무엇이든 빠르게 지나가려 했다. 한 번쯤 스스로의 시간을 돌아보면 좋겠다.
고등학교 1학년 3월, 너는 자퇴를 말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반대했다. 결과는 동의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 너도 그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연구년이었던 나는 너와 많은 시간을 보냈고, 함께 여행도 했다. 그 시간은 내게는 선물이었다. 하지만 너에게는 외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활동적인 네가 도서관과 집을 오가며 혼자 공부를 이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너는 끝까지 해냈다. 검정고시와 대학입시를 스스로 준비했고, 삶을 개척하는 힘을 그때 길렀다. 자퇴 후 2년이 지나 너는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받아 들었다. 국립사범대 두 곳에 합격했다. 농업교육과와 환경교육과였다. 너는 말했다. 미래는 스마트 농업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그 믿음으로 농업교육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삶은 곧장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그 여름이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여름. 너는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때 우리의 선택은 틀렸고, 너의 선택은 옳았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우리는 같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부모라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형과 너를 키우며 결혼 23년 만에 처음으로 떠난 유럽 여행이었다.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고,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여행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뜻밖의 소식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독립한 너에게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스무 살, 대학 1학년이던 너에게 아이 생명이 찾아왔다는 소식이었다. 믿기 어려웠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분노가 먼저 올라왔다. 그러나 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일체유심조’를 되뇌었다. 평생 너에게 크게 화를 내지 않았던 나는 이 상황에서도 길을 찾아야 했다. 너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충격으로 몸져누웠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 충격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다. 너는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학교를 그만두고라도 책임지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도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너의 인생이 먼저 떠올랐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을 나이였다. 세상을 경험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내려놓고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우리는 허락하지 못했다.
머뭇거리는 사이, 너는 짐을 싸서 집을 나갔다. 그 여름, 엄마는 자주 울었고 나 역시 버티기 힘들었다. 시간은 흘렀다. 가을이 오기 전, 너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문자로 이어져 있었다. 그 사실이 다행이었다. 아이가 태어날 시간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더 이상 등을 돌릴 수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였다. 상견례를 했고, 혼인신고를 먼저 하기로 했다.
이듬해 봄 3월 16일, 손자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원으로 갔다. 며느리를 격려하고 신생아실 앞에 섰다. 유리 너머, 작은 천사가 잠들어 있었다.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올라왔다. 스무 해 전 너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뜨거운 감정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우리가 늦게 허락했다는 것을. 그리고 기도했다. 이 아이가 우리 가족이 되어 준 것에 감사한다고.
2026년, 그 아이는 열 살이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다. 둘째야, 고생 많았다. 상근예비역으로 군 복무를 하며 아이를 키웠고, 대학을 졸업한 해에 지방공무원이 되었다. 참으로 대견하다.
10년의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 안에는 긴장도 있었고 불안도 있었다. 그러나 더 많은 순간이 행복으로 채워졌다. 이제야 말한다. 우리 가족이 된 며느리에게 고맙다. 두 아이를 사랑으로 키워줘서 고맙다. 그날의 선택 앞에서 망설였던 우리를 이해해 주길 바란다. 미안했다. 그리고 사랑한다. 앞으로의 10년도 함께 잘 살아내 보자. 그때는 지금보다 더 평안해져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너를 따뜻하게 품어주셨던 순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잊지 말아라. 그리고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광주의 장인, 장모님 은혜도 기억해라. 너는 우리에게 기쁨과 사랑을 가득 안겨 준 아이였다. 그래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너를 믿는다.
어둡고 길었던 그 여름을 지나, 우리는 결국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며 한 가족으로 단단히 이어졌고, 나는 오늘도 그 선택과 사랑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랑스럽게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