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헌터 인생, 그 실존적 철학과 욕망사이...

헤드헌터라는 직업을 단순히 '사람을 사고파는 중개업'으로 본다면 건조한 비즈니스에 불과하겠지만,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인간의 욕망, 운명, 그리고 실존적 선택이라는 깊은 서사가 담겨 있습니다.
헤드헌터로 사는 삶을 인문학적 세계로 바라본다면...


1.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을 낚는 어부

그리스어에는 시간을 뜻하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와, 결정적 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Kairos)입니다.
헤드헌터의 일상은 수많은 후보자의 이력서(크로노스)를 뒤지는 일로 시작되지만, 본질은 한 사람의 인생과 기업의 미래가 맞물리는 '결정적 찰나'를 포착하는 일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이직이 단순한 직장 변경이 아니라 자신의 소명을 재발견하는 순간이기에, 헤드헌터는 타인의 삶에 개입하여 '운명의 때'를 만들어내는 시간의 설계자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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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욕망의 중재자와 '미메시스(Mimesis)'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는 인간의 욕망이 모방에서 온다고 보았습니다.
기업은 최고의 인재를 원하고, 인재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최고의 무대를 원합니다.

헤드헌터는 이 양자의 욕망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습니다.
- 기업의 욕망 결핍을 채워줄 '구원자'로서의 인재를 갈구함
- 개인의 욕망 현재의 자아를 넘어 더 나은 사회적 지위와 보상을 꿈꿈

헤드헌터는 이 뜨거운 욕망들 사이에서 냉정한 관찰자가 되어야 합니다. 타인의 욕망을 읽어내고, 그것이 단순한 허영인지 진정한 성장을 위한 동력인지를 분별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심리 철학자'의 숙명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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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리(Bridge)의 고독과 실존

헤드헌터는 철저히 '경계인'으로 삽니다.
기업에 속해 있지도, 후보자의 편에 완전히 서지도 못하는 중간자적 존재입니다.

게오르그 짐멜은 인간을 '연결하는 존재(Bridge)'이자 '구분하는 존재(Door)'라고 표현했습니다. 헤드헌터는 끊임없이 사람과 조직을 연결하지만, 동시에 적합하지 않은 이들을 걸러내는 문지기 역할을 수행합니다. 연결의 희열과 거절의 비정함이 공존하는 이 경계에서의 삶은 깊은 고독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인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윤리를 실천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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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헤드헌팅은 종이 위의 스펙을 맞추는 게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서사와 한 기업의 역사가 만나 새로운 문장을 써 내려가게 돕는 인문학적 편집 과정입니다.

헤드헌터라는 삶은 타인의 삶을 빛나게 조각하면서 정작 자신의 내면은 깎여 나가는 '소모적 종합 예술가'의 숙명을 닮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겪는 번아웃과 실존적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인문학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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