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회하는 몽마의 그림자
※ 이 소설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재창조된 픽션입니다.
2007년 4월 30일 독일 키르쉬하임
‘그녀는 도대체 누굴까? 아니.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세상 누구보다 명백하게. 하지만 누구인지 모른다. 너무나도 명백했기 때문에.’
5일 전 키르쉬하임에서 순찰 중이던 23세의 여성경찰관 셀린과 27세의 남성경찰관 플로리안이 순찰 중 총격을 당했다. 셀린은 뒤통수에 총알이 박혀 사망했고, 플로리안도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생존했다. 이후 진술에 의하면 그는 용의자를 목격하지 못했다. 순찰차 내부에서 검출된 결정적인 DNA 정보는, 14년간의 43건의 크고 작은 사건에서 검출된 의문의 여성의 DNA 정보와 일치했다. 하지만 사건 현장을 스쳐간 이들 중 DNA 정보가 일치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자취를 감춘 것이다. 정체불명의 연쇄살인범이 세상을 활보한다는 사실은 대중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충분했다. 추측이 난무하고 망상은 실체를 획득했다. 이른바 ‘키르쉬하임의 악마’였다.
이번 연쇄살인 사건의 총괄 책임자인 독일 연방경찰청 과학수사팀 선임반장 마르셀 폴머는 14년째 그녀의 뒤를 쫓고 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범인의 뒤를. 그는 악마라는 이름이 과하다고 여겼다. 설명할 수 없는 간극을 비합리성, 판타지로 메우는 것은 사건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범인을 쫓는 것이 아니었다. 과학수사의 미래, 자기 존재를 지탱하는 합리성에 대한 신념, 그리고 세상을 들쑤시는 비합리적 망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의 사무실에는 그동안의 관련 사건 파일들이 찾아보기 쉽게 회색 파일철에 순서대로 정리되어 꽂혀있었다. 벽면에 펼쳐진 독일 남서부 바덴-뷔템베르크와 팔츠, 오스트리아 북부까지의 지도에는 사건 현장마다 빨간 핀이 꽂혀 있었다. 그 옆에는 현장의 폴라로이드 사진과 간략한 메모들이 붙어있다. 구식 커피메이커에서 내린 지 한참 된 커피를, 갈색 자국이 남아있는 종이컵에 다시 채웠다. 향미는 잃었지만 보온기능 덕에 따뜻해 마실만 했다. 조심스레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면서도 그의 시선은 지도에, 아니 그녀에게 고정돼 있었다. '무언가 놓치고 있는 걸까. 어떻게 잡히지 않을 만큼만 흔적을 남기는 걸까. 하지만 그녀의 행동이 과감해졌다. 경찰살해는 욕망이 절정에 달했단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명예욕에 사로잡힌 지능범. 그녀는 경찰들이 헤매는 꼴을 보려 설레는 마음으로 뉴스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반장님, 기자들이 와있습니다.”
마르셀은 흐물해진 종이컵을 구겨 휴지통에 던져버리고 사무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