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고 싶은 비밀

by 물오름달

땀이 언제부터 나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뛰어놀던 땅꼬마 시절에도 내 손은 언제나 축축했으니까.


친구들과 함께 모래 장난을 칠 때면, 난 뒤돌아 새 모래를 퍼오기 바빴다. 내가 만진 모래는 어느새 짙은 갈색으로 변해 자기네들끼리 엉겨 붙었다. 어린 마음에 젖은 모래를 자꾸 숨긴 데에는 우리 아파트를 둘러싼 환경도 빼놓을 수 없었다.


좁은 단지 안에 유독 까치들이 많이 살아서 고초를 겪은 어른들이었다. 한겨울에도 비어있는 가지를 볼 수 없을 만큼 온 나무에 빽빽이 들어찬 까치들은 시도 때도 없이 똥을 싸댔다.


“어두운 모래는 진짜 더러운 거야?”

“그래, 까치가 똥 싸고 간 자리니까 만지면 안 돼.”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까치들은 길을 더럽히는 눈엣가시였고, 더러운 모래를 만지지 말라는 부모님들의 잔소리에, 젖은 모래알이 옮겨 붙은 내 손은 배설물만큼 지저분한 것이었다.


냉방도 잘되지 않는 교실에서 마를 줄을 모르고 흐르는 땀은 감추고 싶은 비밀이 되었다. 혹시 옆자리 짝꿍이 알게 될까 두려워 서랍 속에 손을 넣고 수업을 들은 적도 있었다.


좋아하는 상대가 생기고 나서는 더 예민해졌다. 어쩌면 손에 고인 물기를 보고 더럽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 화장실이나 수돗가에서 보란 듯이 손을 씻고 또 씻었다. 그래봤자 땀이 배어 나오는 걸 막을 수는 없었지만, 양손이 미끄러운 이유가 물 때문이라는 걸 어렴풋이 어필하고 싶었다.


급식실에서도 고민은 이어졌다. 들고 있는 식판을 배식 당번에게 전해주면 각자 맡은 구역을 채워주는 식이었다. 밥, 반찬, 국, 후식까지 받아야 할 게 많았다. 잘 건조된 스테인리스 식판 가장자리에 미끄럽게 묻은 땀은, 꼭 이상한 사람이라는 낙인처럼 느껴져 부끄러웠다. 동급생들에게 그 부분을 잡으라고 넘겨줘야 하는데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루는 좋아하는 애가 급식 당번을 맡았다.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아이가 담당한 음식만큼은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확고한 거절 의사에도 손에 들려 있던 식판은 힘없이 그에게로 넘어갔다. 거절한다고 안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급식 먹으러 내려온 사람이 밥을 안 받을 리는 없을 테니까.


왜 항상 교과서는 젖기 쉬운 재질의 종이로 만드는 걸까? 왜 유인물은 항상 물자국이 선명히 보이는 재생지를 쓰는 걸까? 어렸을 때의 나는 이런 것 하나하나에 의문을 가지며 불만을 토로했다.


다한증이 심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땀이 나는 순간 손에서는 쇠비린내가 진동한다.

땀 속 성분과 피부에 있는 세균, 그리고 원래부터 손에 존재하는 미세한 철. 구리 성분이 만나서 찝찝한 금속성 냄새를 만드는 것이다. 더러운 걸 만지지 않았어도, 이미 더러워진 것 같은 기분. 그 기분은 언제나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친구들과 손을 잡는 일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고, 가볍게 손뼉을 부딪치는 일조차 더는 못 하겠다 싶을 때 엄마에게 달려가 하소연을 했다. 마음의 얼룩이 자신마저 가려버린 때였다.


“나는 왜 이래? 해도 해도 땀이 너무 나잖아. 어떡해, 엄마?”


발을 동동 구르며 지겹다고 말하는 내게 엄마는 작은 손수건 하나를 내밀었다.


“땀이 나면 닦으면 되지. 뭐가 속상해. 다한증은 나쁜 게 아니야. 괜찮아.”


나를 일으키는 엄마만의 방식이었다. 들여다본 손수건에는 내가 좋아하는 산딸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새콤달콤한 산딸기를 닮은 열매가 군데군데 피어난 모습으로.


다음 날부터, 책가방 앞주머니엔 늘 손수건이 들어있었다. 땀이 날 때마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짜증 나는 건 여전했지만, 그래도 예쁜 손수건을 보고 있자니 그늘진 마음이 위로받는 듯했다. 본래의 내 모습이 지켜지는 기분이었다.


땀 때문에 고생한 날이면 참지 않고 엄마에게 속에 든 이야기들을 다 털어냈다. 수업 시간에 필기한 게 전부 번져서 알아볼 수 없게 됐다고, 미술 시간에 색종이로 작품을 만들려는 데 몽땅 젖어버려서 덕지덕지 아주 엉망이 됐다고. 엄마는 그런 날마다 손수건을 한 장씩 사주었다.

고르는 데에 재미가 붙고 나니 나한테 나쁜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도 더는 하지 않게 됐다. 좋아하는 마음이 어려움을 이겨낸 순간이었다.


손때 묻어 더 이상 쓸 수 없을 만큼 해진 손수건은 깨끗하게 빨아 보관했다. 올이 풀어지고 그림이 지워진 것들은 일부를 도려내서라도 빠짐없이 모았다.

생각해 보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었지만, 아꼈던 것이기에 함부로 버릴 수 없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나를 위해 애써준 마음들 같아서 고마웠다.


그렇게 학창 시절 내내 조금씩 모아 온 손수건 조각들은 여전히 서랍 안에 고이 잠들어 있다. 소중한 물건들은 때론 사라지지 않고 자리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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