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름으로 웃어보자

by 물오름달

이십 대 초반, 내가 간절히 원한 건 소속감이었다.


흐지부지 시간 죽이기 바빴던 학창 시절이 끝나고 찾아온 불쾌한 공허함은 애써 무시했다. 그때까지는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각오가 충분했으니까.


대학은, 원할 때 천천히 준비해서 가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런 계획 없이 새해를 맞았다.


처음에는 편하고 좋았다. 꿈에 부풀어 이것저것 노력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평소 좋지 않았던 몸은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더 망가지기 시작했고, 따라온 고통은 결국 마음까지 지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내 청춘은 집 안에 묶였다.


적당히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 웃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고 생각할 무렵에는 어느덧 4년이 흘러 있었다. 사람이 그리워졌지만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돈이 없었고, 연고지를 바꿔 아는 사람도 없었다. 전화기록부에는 이미 예전에 연락이 끊겨 어색한 이름들만 공연히 남아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 다움'을 잃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반짝이던 나는 분명 어려운 일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힘든 일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만 아파도 겁이 나고, 작은 고비에도 일상이 멈췄다. 그렇게 흔들렸다.


내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저 밝아오는 아침 햇살을 한참을 서서 바라본다거나, 눈을 감고 같은 노래를 한 시간도 더 넘게 듣는다거나, 길을 걸으며 미친 사람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즈음 남들 다 쉰다며 좋아하는 주말이 무서워지기 시작했고,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공휴일도 지겨웠다. 무능력한 내가 더 초라하게 느껴져서였다.

앞서나간 이들과 벌어진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막막했다.


하루 중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은 먹을 때뿐이었다. 입에 뭐라도 넣으면 좀 살 것 같았다. 스케줄이 아침, 점심, 저녁. 뭐 먹을지 정하는 것이 다인 하루. 혈기왕성한 스무 살에 한 곳에만 붙박여 있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 경험해 보기 전까진 알지 못했다.


과거에 얽매여 있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알면서도 매일 돌아가고 싶은 때를 떠올렸다. 그마저도 얼마 없는 짧은 인생. 세상이 모질게 구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바쁘게 알바라도 하며 지냈을 텐데.' 하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여놓을 때가 돼서야 현실을 자각했다.


사람마다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가 다 다르고, 행복의 타이밍도 다르다는 걸 알지만, 전까지는 그냥 억울했다. 모두가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하는 20대 초반. 나는 아무런 경험도 해 보지 못했기에 예쁜 나이가 이렇게 허무하게 지나가는 게 마냥 아쉽고 마음이 아팠다.

지금이 끝일까 봐, 좋은 날이 내게는 오지 않고 끝날까 봐 무서웠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안일한 믿음 하나로 내다 버린 시간. 돌아보니 매일이 전쟁이었지만, 정작 나를 위해 무언가 열심히 해 본 기억은 없었다. 시도하고 포기하는 게 밥 먹기보다 쉬웠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바라본 세상은 동화가 아니었다. 그 정도 각오로는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악순환을 끊고 싶다면, 움츠려들지 말고 움직여야 했다. 내가 벽을 세우면 그나마 할 수 있었던 일도 기회조차 만날 수 없게 될지 모르니까.


일단 아무렇게나 짐을 싸서 밖으로 나왔다. 갈 곳이 없는 건 여전했다. 그래도 무작정 걸었다. 걷다가 지치면 저렴한 카페에 들어갔다. 앉아서 사람 구경을 하고 향이 좋은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그제야 사람 사는 맛이 났다.


다음 날은 하늘이 뚫린 듯 심하게 비가 쏟아졌지만 그래도 나갔다. 동네 문구점에 들어가 3천 원짜리 노트와 2천 원짜리 볼펜을 하나 샀다. 그리고 앉을 곳을 찾아서 이런저런 글을 끄적였다.

그때 계획했던 게 묵혀두었던 브런치를 다시 꺼내어 써보자는 거였다. 그리고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게 나를 지탱하는 새로운 힘이 되어 결국 내가 하루를 잘 살아가게끔 만들 거라고.


발버둥 치는 사이사이 따라온 후회의 시간도 피할 수는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한참 생각해 봤지만, 결국엔 이렇게 될 것을 막을 수는 없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때그때. 충분히 최선이었으니까.


달력은 수십 장 넘어갔지만 나아진 사정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앞길이 어두워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더 이상 시들어가는 나를 모른 척할 수가 없다.

지금이라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들어찼다.


지금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은, 어쩌면 안개 같은 거다. 걷히면 선명히 보일 예전 그대로의 나.

바뀐 건 아무것도 없으니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


걱정과 불안 대신 다른 이름으로, 내게 주어진 행복을 찾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 여정을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


어차피 사람은 결국 혼자야. 너뿐만이 아니라 알고 보면 누구나 다 외로워.

그냥 그게 괜찮은 날이 있고, 힘들게 느껴지는 날이 있을 뿐이지, 다 똑같아.

하지만 넌 심지가 굳은 아이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분명 이겨낼 거야.

- 혼자가 어려운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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