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경험담
올해 상반기에 취업 시장이 엄청 핫해서 나도 이직을 준비하고 면접도 보고 상당히 진행된 건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이직을 포기했는데 일단 진행된 건들이 타주였고 아이들의 지금 상황이 우리가 타주로 이사를 가기는 무리라고 가족들과 상의해 판단했다.
조건들은 현재에 비해 훨씬 좋았고 또 내가 커리어를 바꾸려고 하는 부분을 이해하고 충분한 시간을 주기로 했었지만 도저히 우리가 무리해서 이주할 만한 지역이 아니었기에 고심 끝에 포기했다.
그리고 하반기에 현재 회사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상당히 바빠졌다. 일단 연초에 조직개편이 있어서 내가 소속되어 있던 팀이 박살 나서 공중분해됐고 나는 새로운 팀의 팀장으로 발령이 났지만 내 책임과 권한이 상당히 축소됐었다. (솔직히 말하면 한직으로 몰림) 그리고 새로운 팀을 맡게 되었음에도 실질적으로 회사에서 지원을 받지 못했고 굉장히 어려운 상황까지 몰렸었다. 그게 사실은 이직을 고려한 가장 큰 이유였는데 사람도 떠나고 팀도 없어졌지만 업무는 남았기에 결국 업무를 알고 있는 나에게 많은 일들이 돌아왔고 거기에 새로운 팀의 업무까지 더해졌다. 거기에 다시 조직 개편이 이루어져서 내 위에 포지션을 하나 만들게 되었는데 덕분에 본의 아니게 강등이 되는 것 같은 미묘한 상황이 이루어졌고 드디어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내가 직접 뽑았던 내 팀원이 팀이 없어지면서 다른 팀으로 가 그 팀을 리드하게 됨) 그래도 다행인 게 묵묵히 일하던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새로 내 위에 오게 된 보스, 내 전 보스, 심지어 사장까지 나에게 찾아와서 내 기분이 어떤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앞으로 이 회사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여러 차례 물어보고 면담을 갖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전 보스에게 업무 관련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할 시 전액은 아니지만 회사에서 지원을 해주는 것을 승인받았고, 현 보스에게는 내가 추진하는 비지니스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 (실제적으로는 의미 없는) 받았고, 사장에게는 립서비스를 좀 받았다. (너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향후 다른 기회가 있을 것이다 따위의... 역시 의미 없는)
그리고 새로운 보스가 좀 빠르게 움직이면서 나에게도 지원이 좀 이루어졌고 내가 속해 있는 그룹에 현재 여러 명의 채용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몇 달 동안 면접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글은 면접을 본 경험이 아니라 면접을 한 경험담을 조금 공유해 보려고 한다.
우리 회사는 대기업도 아니고 전형적인 제조업체 + 외국계 회사이기 때문에 아이비 리그나 석박사 출신을 고용할 일은 없다. 물론 management에는 MBA는 꽤 있고 또 변호사, 회계사도 있지만 그것 역시 해당 포지션의 qualification이 그런 것이라 그런 거지 일반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종종 석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뽑고 보니 석사 학위가 있었던 것이지 석사 학위자를 뽑은 것은 아니다.
이번 채용 시 지원자의 대부분은 학사 학위 소지자이고 www.usnews.com 기준으로 상위권 지원자는 랭킹 50 - 100위권 대학을 졸업한 것 같다. 지원자 중에 석사 학위자가 없는 것은 아니고 박사 학위자도 여럿 있었다. 이번에 내가 참여한 채용 기준 phone screening까지도 가지 못한 지원자들은 다음과 같다.
미국 외에서 지원한 지원자 (대부분이 인도, 파키스탄인데 진짜 엄청 많은 지원자가 있었음)
H1B나 기타 비자 지원이 필요한 지원자
AS + 경력으로 지원한 지원자
비관련 전공자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인데 IT 기업이 아닌 우리 같은 제조업 회사에서 비자를 지원하면서까지 뽑아야 할 정도로 구인란인 것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뽑을 수 있는 지원자는 널려 있기 때문에 일단 일말의 희망이라도 걸었던 위의 지원자들의 이력서들은 안타깝게도 나에게 도착하지 못한다. 비자 지원이 필요한 지원자의 특징 중 하나는 박사를 졸업하고 급하게 비자 지원이 필요해서 여기저기 지원한 것 같은 케이스들이었는데 우리 같은 회사 입장에선 실무 경험이 전무한데 생각은 어렵게 하고 거기에 높은 연봉을 요구하며 비자 문제만 해결되면 바로 떠날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실 탈락 순위 0순위다. AS 학위와 경력이 있는 지원자가 가장 안타까운 부류인데 일단 학사 학위 소지가 지원자격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다음으로 phone screening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아래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스케쥴링을 하고 사라진 인간들 (당연히 탈락)
무성의하고 열정이 없어 보이는 대답을 한 지원자들
개념이 없어 보이는 (또는 눈치가 없어 보이는) 지원자들
조건이 맞지 않는 지원자들
고백할 것이 있는데 오랜 사회생활에도 불고하고 내 업무의 특성상 이번에 대학을 막 졸업하거나 졸업 예정자인 찐신입의 면접에 처음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에 Gen Z와의 세대 차이, 문화 차이, 또 군대 문화가 없어서 지원자의 나이가 훨씬 어림에서 오는 그 특유의 미성숙함이 더해져서 면접자인 내가 당황하게 되는 순간이 많았는데 첫 번째는 메신저 스타일의 이메일들이다. 캐주얼함을 넘어서 단 한 줄씩 오고 감을 반복해야 되는 이메일들. 현재 한국 서점에 있는 영어 이메일 적는 법 따위의 책은 갖다 버려라. 그냥 카카오톡으로 이야기하는 식이다. 뭐 이 부분은 더 이상 꼰대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 패스. 그러나 무성의하고 열정이 없어 보이는 대답을 하는 지원자들에게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원을 했는지 묻고 싶었다. 마치 phone screening에서 상대도 나를 screening 하고 태도를 결정하는데 그게 굉장히 빠르고 또 그 후의 태세 변환 역시 사회생활의 예의 따위는 밥 말아먹은 정도? 개념이 없어 보이는 또는 눈치가 없어 보이는 지원자들은 아마 면접 경험이 적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보는데 그건 어디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당히 맘에 든 지원자가 있었는데 어떤 쪽에서 일하고 싶냐는 질문에 당당히 신재생 에너지라고 답변을 했다. 그렇지만 지원한 포지션의 업무는 마음에 들고 배울게 많을 것 같다고 했다. 우리 회사는 신재생 에너지와는 조금의 관련도 없는데 결국 우리 회사에 와서 배운 후 신재생 에너지 쪽으로 가고 싶다는 이야기나 다름이 없었다. 회사는 학교나 학원이 아니다.
조건이 맞지 않는 지원자 중에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았는데 솔직히 우리 회사의 연봉 체계가 현재 인플레이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서 원하는 조건을 맞추기가 어려웠던 경우들이다. 물론 그중에는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듯한 지원자들도 있었는데 스스로는 좋은 커리어와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게 지원하는 포지션의 업무와 맞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경험상 좋지 못한 쿠세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아 사실 경력이 없느니만 못한 경우도 많다. 포스트 코비드 시대에 새로 생긴 조건 중 하나는 재택근무이다. 제조업은 재택근무가 어려워서 우리 회사는 기본적으로 onsite이다. 이것 때문에 지원을 포기한 지원자도 여럿 있었다.
다음 단계, 나에게는 기술 면접 (technical interview)에서 탈락한 지원자들은 다음과 같다.
경력이나 백그라운드가 채용하는 업무와 맞지 않는 지원자들
당연히 개뿔 아무것도 모르는 지원자들 (이력서 뻥튀기)
알지만 횡설수설 포인트를 못 잡는 지원자들
거짓말하는 지원자들
지원한 분야에 흥미가 없어 보이는 지원자들
전혀 뜬금없는 지원자가 올라와서 지원자와 면접자의 소중한 시간을 날리게 하는 것은 내부 프로세스의 문제이다. 엔지니어 포지션에 이런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프로세스의 문제도 있지만 아무래도 업무가 기술적이다 보니 HR에서 이해를 잘 못하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있어 사실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긴 하다. 이건 그냥 해프닝으로 끝나지만 시간이 아까운 경우. 어떤 지원자는 관련 분야 경력이 있었고 이력서에는 엄청 많은 업무를 담당하는 것처럼 써놓아서 질문을 했는데 결국 대답을 못하고 추궁 아닌 추궁을 해보니 사실은 특정 업무만 지원해서 전반적으로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물론 암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낫지만 일단 신뢰가 안 가는 경우는 거르는 게 상책이다. 업무를 맡겼을 때도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높다. 가끔은 아는 것 같은데 기술적인 질문에 횡설수설을 하거나 상관이 없는 분야의 지식까지 끌어와서 장황하게 답변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약간의 지식과 경험이 있지만 굉장히 얕은 레벨이라고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면 된다. 일단 다른 부분이 괜찮으면 향후 트레이닝을 통해 발전될 가능성은 있는 지원자들이다. 물론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대배분은 그 수준에 머물기도 한다. 극단적인 거짓말하는 지원자들은 이력서 뻥튀기에 일단 뭐든지 안다던지 경험이 있다던지 하는 지원자들이다. 어떤 지원자는 1차 기술 면접 때 그런 식으로 상당히 자신감이 있어했지만 대부분 답변을 못했는데 follow-up 이메일을 여러 차례 보냈다. 그래서 내가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보낼 테니 준비해서 2차 면접을 해보겠느냐 물어보니 바로 다음날 시간이 될 것 같다고 답변이 왔다. 그래서 세 가지 주제를 보냈더니 그 후 굉장히 무례한 답장 후 사라졌다. 지원 분야/업무에 흥미가 있는지는 사실 제일 중요한 요소이다. 나는 사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업무가 싫다. 그런데 하고 있다. 처자식이 있어서 하고 있는 것이지만 행복도가 떨어지고 오래갈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직이나 부서 이동을 고려하고 있는 거다. 어떤 지원자들은 자질을 갖추고 있었지만 나 스스로도 과연 이 사람이 이 일을 하면서 행복해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그들과 나를 위해 선택할 수 없었다.
나름 나의 "까다로운" 면접을 통과해 우리가 offer를 날린 지원자들은 미국이라고 특별하진 않다. 그들은 다른 면접자들에 비해 뛰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연봉도 다른 지원자들보다 많이 불렀다. 그럼에도 내부 회의를 통해 offer를 날린 이유는 단 하나였다. 지원자와 우리 모두 그들이 이곳에서 일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공감했고 또 그들이 열정과 비전을 보여주었다. 높은 연봉은 어떻게 보면 회사에서 어떻게든 뽑아낼 것이고 면접 과정을 통해 그것이 가능할 것 같다는 자본주의적 decision making이 가능했다.
패널 인터뷰를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엔지니어 포지션의 경우 그리고 우리 회사의 경우 해당 hiring manager가 필요에 의해 패널 인터뷰까지 올렸다면 패널 인터뷰에서 엄청난 결격 사유가 있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포지션의 경우 패널 인터뷰에서 까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끔은 그냥 이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이유로 까이기도 하는데 그 감은 미국에서도 대부분 맞는 편이라고 주변에 그러곤 한다. 엔지니어 포지션의 경우 안될 사람은 이미 기술 면접에서 다 까이기 때문에 패널 인터뷰에 올라오는 지원자 자체가 적기도 하다.
이번에 나도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 특히 이제 막 졸업한 친구들과 12월 졸업 예정자들을 면접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일단 어느덧 내가 어린 시절 들이박던 나의 상사들과 같은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들에게 약간 미안해졌다. 또 나 역시 일정 부분 꼰대성이 생긴 것 같았다. 그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대학 졸업을 한 친구들이 아니라 (라떼...)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들의 대학 생활은 재앙 수준으로 힘들었을 테고 그들 역시 입사 후 빠르게 적응하며 잘 해내겠지만. 내 안의 꼰대성 - 면접자와 지원자 간의 예의 따위 - 를 완전히 허물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것을 좋은 지원자를 골라내는 척도로 삼아야 할지가 숙제로 남았다.